정부가 5차 재정추계에 기반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 확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계에서는 정부의 연금개혁 방향에 대항하는 취지로 '소득보장 강화'에 무게를 둔 대안적 성격의 보고서가 나왔다.
정부 노선을 '재정안정론'으로 규정하며 보건복지부 산하 연금재정계산위원회에서 물러난 전문가들은 이른바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50%로 일시에 올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노인빈곤율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내는 돈'(보험료율)을 13%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할 경우, 기금 소진시점을 기존 전망보다 6년 더 늦출 수 있다는 추계도 내놨다.
민주노총·한국노총·참여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인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은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대안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본문만 167쪽에 달하는 이번 보고서 집필에는 연금재정계산위원회 위원직에서 자진사퇴한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한신대 강사인 제갈현숙 박사가 참여했다.
남 교수와 주 교수는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의 존재 목적은 국민들의 노후 보장에 있다며 소득대체율(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 인상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이들은 앞서 지난달 초 공청회 당시 공개된 재정계산위 보고서 초안에서 보장강화 시나리오가 전면 배제되자, 별도 보고서를 자체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연금행동은 먼저 국민연금을 '민간보험'처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인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매달 '부은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아가는 저축 개념으로 여기다 보니 연금의 수입·지출을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와 급여 간 관계로만 판단하게 된다는 의미다.
남찬섭 교수는 현재도 생산인구가 내는 보험료가 퇴직세대에 급여로 지급되는 식(부과방식)으로 국민연금이 운영되고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다만, 우리나라가 제도 설계 초기부터 인구 고령화에 대비한 완충기금으로 기금을 적립하도록 하다 보니 (연기금이) 거대한 규모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실 퇴직했을 때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건 실제로 소비생활을 할 수 있는 실물재화지, 화폐(기금) 자체가 아니다"라며 "기금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미래세대가 퇴직세대에게 배분해줄 수 있는 실물재화를 얼마나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생산성(의 문제)"이라고 부연했다.
1988년 최초 시행된 연금제도가 1998년·2007년 두 차례의 개혁을 거치면서 소득대체율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평균임금가입자 기준 회원국(평균치)의 73.9% 수준이다. 이마저도 최대가입기간(38년)을 가정한 결과란 점에서 '과대평가'된 데이터란 분석이다. 실(實) 가입기간은 20년에도 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고 연금행동은 설명했다.
현 국민연금 제도가 유지된단 가정 아래, 가입기간 26년 시 연금 급여는 66만원으로, 노후최소생활비(월 124만 3천 원)의 53.1%, 노후적정생활비(월 177만 3천원) 대비 37.2%에 불과하다. 2021년 기준 평균 기초연금액(월 26만 5천원)을 더해도 최소생활비의 80% 미만(74.5%)이다.
따라서, 중장기과제로 실질적 평균 소득대체율을 40%로 끌어올리고, 노후 최소생활비는 75% 이상을 보장하자는 게 연금행동의 주장이다.
남 교수 등은 오는 2028년 40%를 향해 하향 중인 소득대체율(올해 기준 42.5%)을 2025년 일시에 50%로 올리자고 제언했다. 또한 보험료율은 2025년부터 매년 0.5%p씩 올려 2033년 13%까지 인상하자고 밝혔다.
즉, 약 10년에 걸쳐 요율을 4%p 올리자는 계획이다.
이렇게 '내는 돈'과 '받는 돈'의 인상을 병행하면, 보장성을 지금보다 강화하더라도 수지적자 전환과 기금소진이 모두 5차 재정추계 시점보다 각각 6년씩 늦춰져 2047년, 2061년 발생한다는 재정전망도 내놨다.
물론 연금급여 지출은 현행보다 늘지만, 2040년 이후에 접어들어야 실제 차이가 벌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보고서 추계상 2053년 기준으로 보장성강화 시나리오(소득대체율 50%·보험료율 13%)의 급여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6%로 5차 재정추계(소득대체율 40%·보험료율 9%)에 비해 0.9%p 높았다.
같은 해 기금수익과 적립금 규모는 각각 GDP 대비 1.8% 및 37.4%로, 현행 제도를 전제한 5차 추계(GDP 대비 0.4%, 7.0%)보다 양호할 것으로 예상됐다.
다만, 2030년대 이후로는 기금 유지 등을 위해 재원기반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보험료 부과소득상한 초과소득분에 대한 부담금 부과, 보험료를 매기는 소득상한선의 조정, 국고 지원 등이 구체적 예시로 거론됐다.
더불어 출산율과 고용률, 건강수준을 제고하려는 국가 차원의 노력도 요구된다고 밝혔다. 사회투자를 통한 사회적 수익 실현, 정년연장 등과 연계된 '수급개시연령 추가 조정'도 과제로 꼽혔다.
주은선 교수는 "(이번 보고서에) 수급개시연령 조정을 확정적으로 넣지 않은 것은 2033년까지 이미 수급개시연령이 65세까지 오르게 돼있는 상황에서, 추가로 (연령을) 올리기엔 현 노동시장 상황의 문제가 명확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수급개시연령을 섣불리 늦추게 되면 '소득 크레바스'가 지나치게 길어져 또다시 연금급여가 삭감되는 효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그 연령을 늦추려면 중·고령자의 노동 참여와 고용의 질, 특히 소득수준이 올라가줘야 한다. 관련한 대규모 사회적 기획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재정안정론자들이 일종의 '공포 마케팅'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 교수는 "인구고령화 속에서 퇴직 후 '노후'란 터널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 터널을 지날) 버스의 크기를 키우고 엔진도 새로 갈아 끼우자는 게 저희의 주장"이라며 "크레딧 강화라든지 보험료 지원 강화 등은 버스에 탈 수 있는 출입문 크기를 키우고 (버스에) 오를 수 있는 경사로를 바꾸는 거라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의 주장은) 버스를 키우고 엔진을 갈면, 회사에 쌓아둔 돈이 소진될 테니 버스 크기도 못 키우고 엔진도 못 바꾸겠다고 하는 격인데, 그러면서 버스요금은 '더 내라'고 한다"며 "버스 키우기 등이 동시에 이뤄지면 탄 사람도, 탈 사람들도 필요 시 비용은 더 낼 용의가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금행동은 '70년'이라는 연금재정 추계기간이 지나치게 길고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 경제성장률 등의 변수가 상당히 보수적으로 적용된 전망치라는 한계도 짚었다.
한편, 복지부는 오는 27일 국회에 제출할 연금종합운영계획안을 심의·확정할 예정이다. 재정계산위 논의 등이 반영된 '연금개혁 정부안'이라 할 수 있다.
향후 보험료율 인상엔 대체로 공감대가 모였지만, 구체적 수치가 담긴 모수개혁 방안이 나오진 않으리란 관측도 있다. 재정계산위의 최종보고서 자체가 '24개'의 시나리오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계산위는 지난 19일 복지부에 전달한 최종보고서에 소득대체율 인상안(案)을 추가 반영했다. 현 9%인 보험료율을 각각 12%·15%·18%로 올리고, 올해 기준 63세인 수급개시연령을 66세·67세·68세로 늦추거나 연기금 운용 수익률을 0.5%p 또는 1%p씩 올리는 방안이 조합된 기존 18개 안에 6개 안(소득대체율↑)이 더해진 것이다.
다만, 위원회는 소득대체율 상향 시 재정부담 완화를 위한 '추가적 재정안정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적어 부정적 뉘앙스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