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대한항공 무자격 조종사' 진실 밝혀냈지만…그는 한국을 등졌다 ②'무자격 조종사' 대한항공은 어떻게 면죄부를 받았나 (계속) |
대한항공이 과거 무자격 조종사를 고용한 사실을 밝히는데 17년의 시간이 걸린 것은 검찰의 편파적인 기소와 법원의 불공정한 판결 때문이다.
검찰은 경찰의 의견과 각종 증거를 무시했고, 법원도 대한항공의 주장을 탄핵할 수 있는 내용을 사실조회로 확인해 놓고 엉뚱한 결론을 내렸다. 나중에 재심에서 대한항공의 무자격자 채용이 사실로 인정됐지만, 대한항공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경찰 "'무자격 조종사' 주장은 허위 아닌 사실 적시"
경찰은 지난 2003년 8월 '대한항공의 무자격 조종사 고용'을 폭로한 이채문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씨가 주장한 내용들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게 이유다. 당시 수사는 대한항공의 고소로 이뤄졌다.
경찰은 그러면서도 이씨가 주장한 '무자격 조종사 고용'이 허위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입사자들의 비행경력시간 내역, 항공법시행규칙, 참고인 진술서 등으로 보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결론은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사실의 적시로 판단"된다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적시한 이씨에 대해 기소의견을 낸 이유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씨가 대한항공에 합의금으로 돈을 요구한 사실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이씨는 공갈협박 혐의로도 피소된 상태였다.
(※이씨는 대한항공측에서 먼저 제안해 2억5000만원에 합의를 봤지만, 대한항공에서 말을 바꾸면서 화가나 협박 편지를 보냈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한항공은 이런 합의 자체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명예훼손 재심 재판에서 법원은 2019년 이씨가 '2500만원 합의'에 대해 허위사실을 적시했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대한항공 임원과 이씨와의 접촉 사실 등을 근거로 이씨로서는 2억5000만원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을 여지가 있었다고 판시했다. 이씨에 대한 손해배상 문제는 추후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검찰 "'무자격 조종사' 허위"…대한항공 면죄부의 단초
이씨의 명예훼손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넘기긴 했지만, 경찰이 인정한 '대한항공의 무자격 조종사 채용'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 뒤집혔다.대한항공의 불법을 인정하면서, 이씨를 명예훼손으로 기소하는 게 모순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대한항공의 무자격 조종사에 대해선 수사를 벌이지 않고 이씨에 대해서만 같은해 11월 약식기소했다. 당시 이씨는 검찰에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관련 자료를 모두 제출했다고 한다.
이씨는 "대한항공은 군으로부터 받은 비행시간 등에 대한 자료를 모두 가지고 있다"면서 "내가 자격이 미달하는 조종사 400여명에 대한 자료를 검찰 수사 단계에서 제출했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씨만 200만원의 벌금을 구하는 약식 기소를 했다. 대한항공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사에서 비켜섰다.
그가 제출한 자료들은 판결을 잘못한 기존 재판을 바로잡는 재심에서야 인정받았다.
이씨는 재심을 통해 사실 관계를 바로 잡은 후 자신을 기소했던 검사를 2010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현재 서울의 한 로펌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사건 담당 검사는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법원, 정부 사실조회와 다른 판결
이씨 사건을 처음 맡은 법원도 검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양측은 무자격자 채용을 놓고 팽팽하게 맞섰다. 쟁점은 헬기조종사 자격을 가진 사람이 비행기를 조종할 자격이 되느냐였다.
대한항공은 "당시에는 헬기 조종사도 비행기 조종사로 채용이 가능했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이씨는 "헬기 조종사 자격과 비행기 조종사 자격은 엄연히 분리돼 있었다"고 반박했다.
증인으로 나온 조종사 출신들은 헬기 조종사는 비행기를 몰수 없다는 취지로 대답했다.
이에 재판부는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에 사실 조회를 신청했다. 교통부는 '헬기조종 자격자가 비행기 부기장이 되기 위해서는 비행기 조종사 자격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씨의 주장과도 같은 맥락이다.
대한항공 측의 말처럼 헬기 조종사와 비행조종사가 구분이 없었다면, 회사 편에서 증언했던 김모씨가 비행시간 서류를 위조할 필요도 없었고, 또 모해위증으로 구속될 이유도 없었던 상황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문제의 기장들이 "적법하게 비행기 사업용 조종사 자격을 취득한 다음 비행기 부기장으로 탑승"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헬기와 비행기 조종사를 구별하지 않았다는 대한항공의 애초 주장과도 다른 내용이다. 판사는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을 이씨가 공갈·협박했다며 회사가 고소한 사건과 병합해 이씨를 법정구속시켰다. 그리곤 이씨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검사가 벌금형을 구형한 것보다 훨씬 강한 처벌이다.
결국 이 판결은 2016년과 2019년의 두차례의 재심을 통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 무자격 조종사 의혹이 사실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당시에는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입장이다. 서울지역에서 부장 판사로 근무중인 담당 판사에게도 답변을 듣지 못했다.
3번이나 고소했는데…"고의 인정하기 부족"
이렇게 '팩트 싸움'에서 이긴 이씨는 대한항공에 손해배상을 청구소송을 냈다. 대한항공의 잇단 고소로 억울하게 1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데 따른 것이다.이씨가 소송을 낸 건 2014년, 2018년, 2020년 세 차례다. 첫 소송에서 패하고, 결정적인 물증(비행시간 조작 서류)이 나와 다시 소송을 했지만 또 패소했다. 마지막으로 2020년 낸 소송은 지난 해 9월 말에 패소했고 대법원에선 올해 7월 확정됐다.
해당 판결들은 한결같이 대한항공이 고의로 허위고소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세번씩이나 이씨를 고소했는데도 말이다.
이씨는 특히 마지막 소송에 대해선 서용원 전 대한항공 대표이사가 "소송을 하면 재판이 진행되기 전에 배상을 하겠다는"고 제안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배상을 논의한 적은 없다"면서 "서용원 전 사장이 손해배상 관련 언급을 했다는 부분도 확인이 불가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