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 VS 용인…진격의 日반도체 투자 韓은 느릿느릿

[기로의 K칩스]

대만 반도체 기업 TSMC가 공장을 짓고 있는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 인근 공업단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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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구마모토 VS 용인…진격의 日반도체 투자 韓은 느릿느릿
(계속)

日 구마모토 VS 韓 용인, 속도와 돈의 차이

#일본 남단 규슈섬에 있는 구마모토 현 기쿠요초. 대만의 대표 반도체 기업인 TSMC 공장이 내년 말 가동을 목표로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인구 4만3천명의 조용한 농촌이었던 기쿠요초 땅값은 들썩이고 있다. 3.3제곱미터(평당) 6만엔 하던 땅값은 40만엔까지 올랐다. TSMC 뿐 아니라 소니그룹과 미쓰비시 등도 인근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계획 중이다. TSMC 효과로 지난해부터 2031년까지 10년간 구마모토 지역의 경제 파급효과가 약 6조9000억엔(약 62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 지원은 파격 그 자체다. 이미 일본 정부는 TSMC 구마모토 공장 건설 금액의 절반인 4760억엔(4조 3000억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원했다. 부동산 규제도 과감히 없앴다. TSMC가 공장 부지 화보에 어려움을 겪자 일본 정부는 50년 이상 묶여 있던 그린벨트를 해제했다. 또 전국의 농지, 임야 부지에 반도체 등 첨단 공장을 지을 수 있게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본이 올해에만 추가로 3조4000억엔(약 31조)의 예산을 반도체 산업에 투입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반도체 선두주자였다가 80년대 미국의 견제 정책으로 내리막을 걸었던 일본이 이번엔 미국과 중국의 분쟁에서 반사이익을 얻으려 하고 있다. 여기엔 일본의 파격적인 지원 정책이 한몫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산단 조감도. 용인시 제공

#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경기도 용인에 2042년까지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트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했다. 300조 원 규모의 대규모 신규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개를 구축하고 국내외 우수한 소재·부품·장비,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회사) 기업 등 최대 150개를 유치한다는 구상이었다. 윤 대통령은 "중요한 것은 속도"라며 조속히 추진되도록 정부가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부의 반도체 산업 계획에 따라 필요한 전기, 용수 등 인프라 조성 비용은 아직까지 한 푼도 배정되지 않고 있다. 내년에 60조 가까운 세수 결손 사태로 국가 재정은 물론 지자체 살림살이도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인프라 조성 비용을 어떻게 감당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구상은 없는 실정이다. 주요 인프라인 전력 공급을 두고 야당과의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탄소중립위원회는 용인에 LNG복합화력발전소 신설 계획을 취소하고 재생에너지인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아직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속도라면 윤 대통령의 임기 내인 2026년에 용인에 반도체 공장 첫 삽을 뜰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3년만에 D램 생산한다는 일본, 연기 또 연기에 8년 걸리는 한국 

메모리반도체의 선두주자인 우리나라와 후발 주자인 일본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구마모토현과 용인시의 진행 상황을 살펴보면 국가의 지원 정책이 얼마나 다른지 극명하게 보인다.

실제 일본의 직접적인 보조금 지원 정책은 많은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1,2공장을 짓고 있는데 이어,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올해 5월 18일 약 5000억엔을 투자해 일본 히로시마에 차세대 D램을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이 마이크론에 투자보조금으로 2000억앤을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양국은 속도감 있게 첨단 장비를 도입해 당장 2026년부터 히로시마에서 차세대 10나노미터 이하 노드의 1감마 D램을 생산할 예정이다.

최근 KB증권은 <진격의 일본 반도체-잃어버린 37년을 찾아서>라는 보고서를 통해 미-중 반도체 분쟁에서 일본의 전략적 수혜가 예상된다고 소개했다. 일본의 파격적인 반도체 기업 지원 정책이 글로벌 기업들을 일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10년 이상 자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조건으로 기업 설비투자의 최대 3분의1을 지원하고, 반도체 장비와 소재는 최대 50%를 보조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과 미국의 반도체 연대도 강해지고 있는데, 양국은 올해 5월 27일에 첨단반도체 기술 협력 강화를 위한 로드맵을 만들기도 했다.

반면, 우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민간 기업 투자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정부는 세제나 인프라 등을 통해 간접 지원하는 형태이다. 문제는 인허가 절차와 토지 보상, 지자체와의 협의, 전력과 용수 등 인프라 구축에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나라별 부지 선정 이후 공장 가동까지의 소요 시간을 비교해 보면 극명하게 대비된다. (아래 표 참고)


용인의 SK하이닉스 공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9년 2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가 선정됐지만, 착공이 다섯 차례 이상 연기돼 5년째 첫 삽 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당초 계획으로는 지난해에는 본격적인 공장 건설을 시작했어야 했지만 2025년에야 착공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지역 민원(11개월 지연), 토지·지장물 보상 장기화(1년6개월 지연), 용수 공급 인프라 구축 장기화(1년 지연) 등으로 인해 3년 이상이 지연된 것으로 반도체 업계는 분석한다.

인프라 예산 집계도 안돼 의원실이 전수조사 "정부 책임있는 관리 필요"

업계에서는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공장을 지으면 불과 2년밖에 안걸리는데, 한국은 인허가와 토지보상절차가 워낙 오래 걸리다보니 속도감있게 공장을 짓지 못한다"며 "기업이 매년 기술개발에 수십조원을 투자하고, 피튀기는 경쟁을 하는 와중에 힘이 빠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큰 계획을 발표만 해놓고 관련 예산 등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향자 한국의희망 의원은 "정부에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7개를 지정해놓고, 필요한 예산을 집계하지도 않아 의원실에서 직접 전수조사를 해야 했다"며 "당장 내년에만 1조3101억원의 인프라 예산이 필요한데 포항(2차전지 154억)을 제외한 나머지는 책정도 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연원호 대외정책연구원(KIEP) 경제안보팀장도 "문재인 정부에서는 K반도체 전략이 나왔고, 윤석열 정부도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선언을 하는 등 굵직한 선언을 하며 의지를 보이고는 있는데, 정작 현실에서는 지자체와의 갈등 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SK 하이닉스 용인 공장을 짓는데 8년 이상 걸린다는 것은 정부 대책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는 "반도체는 타이밍 사업이다. 정확한 타이밍에 공장 가동이 들어가야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라며 "현 정부가 그나마 '타임 아웃제' 등을 통해 인허가나 행정 절차의 소요 시간을 줄이겠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용수와 전력 등의 인프라 구축 사업을 좀더 체계적으로 살펴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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