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이차전지 핵심 원료인 흑연의 수출을 통제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수출 금지가 아닌 통제라는 점에 당장은 안도하면서도 재고 확보와 수급 다변화 등 대응 마련에 분주한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잇따른 광물 무기화 움직임을 계기로 본격적인 탈중국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24일 한국무역협회와 관세청 등에 따르면 올해 1~9월 국내 인조흑연 수입의 94.3%는 중국산으로 나타났다. 천연흑연은 97.7%를 중국에서 들여왔다. 중국의 흑연 매장량은 전세계 20% 정도이지만, 채굴·제련을 거친 대부분 생산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사실상 거의 모든 나라가 중국산 흑연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실정에 나온 중국 당국의 흑연 수출 통제는 배터리 업계의 촉각을 건드리고 있다. 흑연은 이차전지의 4대 소재(양극재·음극재·전해질·분리막) 가운데 하나인 음극재를 구성하는 핵심 원료여서다. 중국 상무부와 해관총서(세관)는 지난 20일 고순도·고강고·고밀도 인조흑연 재료와 제품을 비롯해 구상흑연·팽창흑연 등 천연흑연 재료·제품을 수출 통제 대상으로 정했다. 해당 품목은 오는 12월부터 중국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수출할 수 있다.
중국의 조치로 수급에 차질이 생기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통제 대상으로 지정된 품목들은 상무부에 이어 국무원의 허가까지 받아야 해 지금보다 수입 절차가 훨씬 까다로워진다. 이 과정에서 통관 기간이 지연되거나 최악의 경우 수출이 아예 안 될 수도 있다. 앞서 중국이 갈륨·게르마늄의 수출을 통제했을 때도 한달 이상 수입이 멈춘 적이 있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포스코퓨처엠이다. 포스코퓨처엠은 국내에서 흑연을 이용해 음극재를 양산하는 유일한 기업이다. 포스코퓨처엠 관계자는 "중국이 12월 1일부터 수출을 통제한다고 하니 그때까지 재고량을 최대한 늘려갈 계획"이라며 "현지 수출 심사 동향을 사전에 모니터링하는 등 상황을 주시하면서 흑연 수출입에 큰 문제가 없도록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포스코퓨처엠 뿐만이 아니다.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인 흑연의 통제는 배터리 업계 전반에도 장기적으로 큰 악재다. 전기차 시장 확대로 글로벌 점유율을 본격적으로 늘려가던 K-배터리가 이번 조치로 중국 기업들에게 발목잡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수출 통제 조치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며 "소재 공급 업체들의 흑연 비축량이 어느 정도인지, 중국산 이외에 당장 다른 대체재가 있는지 계속해서 점검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당혹감 속에서도 업계는 중국의 조치가 흑연 수출의 '전면적 금지'가 아닌 '통제'라는 점에 주목해 돌파구를 모색중이다. 인조흑연의 경우도 이미 통제 품목에 해당돼 중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 수입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 추가된 천연흑연 역시 절차가 보다 복잡해질 뿐 조달이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인조흑연은 현재도 허가제이지만 여태껏 별다른 문제없이 수입해왔다"며 "관건은 중국 당국이 이번 규제의 강도를 얼마나 더 강화할지에 달렸다"고 내다봤다.
현상황의 타개 여부를 떠나 중국의 이번 흑연 수출 통제를 계기로 탈중국 움직임에는 더욱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최근 잇따르는 중국의 자원 무기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만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 백악관도 중국의 조치에 "공급망 다양화의 필요성을 부각한다"며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회복력 있는 핵심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 계속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