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트리지는 '노래하는 인문학자', '박사 테너'로 불린다. 그가 음악가가 되기 전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연구원이자 강사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축제에서 강연을 통해 음악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풀어놓는 것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철학 석사,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최근 CBS노컷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강연 내용을 살짝 언급했다. "이번 축제에서 제가 부를 작품의 작곡가인 브리튼과 전쟁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브리튼은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곡가죠. 20세기 전체를 조망해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곡가일 겁니다. 브리튼은 경력 초기부터 여러 작품에 다양한 사회적 주제를 담아냈죠. 저 역시 온라인 매체의 글을 많이 읽으면서 최근 발발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뤼미나시옹'에 대해서는 "훌륭한 선율과 환각적 이미지로 가득하다. 관능적이고 재미있으면서 어둡기도 하다. 인간사를 거울처럼 온전히 담고 있는 작품"이라며 "규모가 큰 음악이긴 하지만 슈베르트나 슈만 못잖게 세세한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보스트리지는 최근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지휘 안드리스 넬슨스)와 '일뤼미나시옹'을 연주했고 세종솔로이스츠와도 '일뤼미나시옹' 한국 순회 연주(11월 4~18일)가 예정돼 있다.
보스트리지는 솔로 앨범으로 그래미상 본상 등 세계 주요 음악상을 휩쓸고 대영제국훈장을 수훈한 음악가다. 인문학자로서 공부하고 가르친 경험을 살려 집필과 강의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2014년 출판한 저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집념의 해부'는 1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출판됐고 2016년 '폴 로저 더프 쿠퍼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가 다른 성악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글을 쓰는 데 있어 비교적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거죠. 학자적인 관점에서 집필할 때보다 예술가의 관점에서 폭넓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에요. 학자였을 때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고 분석했던 습관과 훈련이 음악가의 삶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인문학자와 음악가 사이에서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음악가가 될 줄은 몰랐지만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는 보스트리지는 "30살까지 학계의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남은 내 인생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분야를 다 기웃거리고 나서야 잃어버린 듯한 세월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노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음악가의 길에 들어서게 했고 그 선택을 후회한 적 없다"며 "음악가의 삶에 만족한다. 짧은 순간에 살아있는 음악을 구현해내고 삶에 대해 보다 풍성한 시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요즘 무슨 책을 읽는지 물었다. "야스차 뭉크의 '정체성의 함정'(The Identity Trap),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로빈 홀로웨이의 음악에 관한 에세이를 읽고 있어요."
그는 "음악을 통해 많은 것들이 연결되는 지점을 찾는 데 관심이 있다"고 했다.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각각의 시대와 연결 짓기가 쉬운데 반해 21세기 초 클래식 음악은 문화적·정치적 뿌리에서 분리됐어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치면서 클래식 음악이 상대적으로 고립된 음악이 된 것 같아요."
비정형성을 특징으로 한 클래식 음악 축제인 제6회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은 11월 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리사이틀홀, JCC아트센터, 거암아트홀, 코스모스아트홀, 언커먼 갤러리 등에서 열린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베이비 콘서트(11월 15일) △NFT 살롱(11월 15일) △장한경 바이올린 리사이틀(11월 16일) △스티븐 뱅크스 색소폰 리사이틀(11월 19일) 등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