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제 지목…"특별법 필요"

참사 1주기…시민대책회의·민변 '추가 조사과제' 발표
"특수본, 특정 주제 치중…국조, 정치적 공방으로 자료제출 부실"
이태원 유가족협의회 "진상규명 위해 특별법 제정해야"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엿새 앞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제 보고회에서 최희천 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연구소장이 주요 진상규명과제 총론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시민사회와 법조인들이 밝히지 못한 진상규명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제 보고회'를 열고 주요 진상규명과제를 발표했다.

이들은 "일각에서는 국회 국정조사도 했고 경찰 특수본 수사도 했으며 법원에서 재판도 하고 있으니 진상조사 굳이 안 해도 되는 것 아니냐며 특별법 무용론을 주장한다"며 "이번 보고회를 통해 얼마나 많은 진상규명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지, 왜 유가족이 지금까지의 진상조사를 부족하게 느끼고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지 분명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황진환 기자

민변은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 수사결과 △국회 국정조사 보고서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 공판 기록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에 대한 공판 기록 △박희영 전 용산구청장 공판 기록 △최재원 용산보건소장 공판 기록 △'불법 증축' 관련 해밀톤호텔 대표 공판 기록 등을 분석해 경찰·소방·보건복지부·행정안전부·서울시·용산구 등에 대한 진상규명 과제를 선정했다.

국회 국정조사, 경찰 특수본과 검찰 수사 등 여러 조사가 이어졌지만 위법행위 입증 목적이 있는 기존 조사의 한계가 명확해 전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어려워 보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최희천 박사는 "진상조사의 목적은 참사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확인하고 사회적 제도 개선안을 도출해 유사한 참사를 예방하는 것"이라며 "원인 규명을 위해선 참사의 발생과 전개과정에 대한 광범위한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은 오는 29일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1주기 시민추모대회를 연다고 밝혔다. 황진환 기자

최 박사는 "특수본·검찰 수사는 형법적 책임에 중점을 두는 등 특정한 목적에 기반해 수행됐기 때문에 사실관계의 극히 일부분만 확인했을 뿐"이라며 "참사 당일 현장에 각 기관 담당자 몇 명이 어떤 임무를 갖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등 기초적 사실관계조차 확인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어 "국정조사 또한 정치적 공방으로 출석자들의 답변이 추상적이고 방어적이라 피해자들의 희생이 확대됐던 과정이 확인되지 않은 채 종료됐다"며 "국정조사 결과보고서에는 '자료 제출 미흡을 비롯한 정부 당국의 비협조, 짧은 조사 기간 등으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취지로 결론 내렸다"고 지적했다.    

경찰과 관련해서는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 지휘부의 참사 전·후 대비·대응 적절성,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에 대한 추가 조사, 함께 참사 당일 이태원에 정보관이 파견되지 않은 이유, 대통령실 이전이 안전사고 대비에 미친 영향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방 및 보건복지부와 관련해서는 재난안전통신망이 무용지물이 된 이유와 참사 당일 응급조치 내역, 병원 이송 및 사망 판정 과정 등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행정안전부를 향해서는 "행정안전부는 사실상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해 예방단계에서 어떤 의무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며 재난 예방에 관한 행정안전부의 역할과 책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재난예방조치를 다 했는지, 이 장관이 경찰에 대한 지휘·감독을 실시했는지 등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와 용산구에 대해서는 참사 징후 조기 확인 및 대처에 실패한 이유,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 등을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또 피해자 지원과 관련해서는 유가족에게 정보제공이 지연된 과정, 신원확인 및 시신인도 과정, 참사 직후 유가족 연락처 공유 거부, 분향소 설치 문제, 피해자 명예훼손 및 혐오표현으로 인한 2차 가해 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진상규명을 위해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1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지만 결정권 없는 실무자에만 책임을 지우고 실질적 책임자들은 면피성 발언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며 "진상규명은 재발 방지 대책의 초석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특별법뿐"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지난 6월 30일 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지난 8월 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3개월 넘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특별법에는 독립적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비롯해 특별검사 수사가 필요할 경우 특검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을 요청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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