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청정지역이라 불리던 대한민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들어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마약 밀수입이 폭증하고 있지만, 대응은 범죄 증가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해경 검거 마약범죄 5년 새 10배 폭증…2021년 한해만 선박에서 2400만명 투약 가능한 마약 적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 20일 해양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마약단속 자료에 의하면 해경이 검거한 마약범죄 건수는 2018년 90건에서 2022년 962건으로 증가했다.
해상을 활용한 마약범죄가 5년 새 10배로 폭증한 것인데, 증가세 또한 꾸준하다.
2018년 90건에서 2019년 173건, 2020년 412건으로 매년 2배 안팎으로 증가하더니, 2021년 518건에서 2022년 962건으로 또 다시 2배 가까이 크게 늘어났다.
올해의 경우 8월까지 496건이 적발돼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는데, 검거 인원은 402명으로 지난해 전체인 293명을 훌쩍 넘어섰고 구속인원도 63명으로 지난해 49명보다 많다.
나타난 범죄 유형도 우려의 지점이다.
진통을 위한 민간요법 차원에서 어촌·도서 등지에서 양귀비를 재배하는 경우가 포함된 밀경작의 경우 2020년 217명을 기록한 후 2021년 159명, 2022년 200명으로 소폭 감소한 반면, 밀매 검거는 2021년 3명에서 올해는 8월까지 41명으로 크게 늘었다..
마약 소지도 2018년 12명에서 2020년과 2021년 27명, 지난해 23명으로 증가했고, 투약도 2018년 10명에서 올해는 8월까지 60명으로 늘어났다.
올해 5월 남해안 일대에서는 외국인 선원 등 해양종사자를 대상으로 엑스터시(MDMA)와 케타민 등을 판매·유통한 외국인 마약유통조직 15명이 검거됐다.
해경에 의하면 2021년에 선박을 통해 국내로 밀반입하던 중 적발된 마약류는 837.2㎏에 달하는데, 이는 약 2400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추산된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에 의하면 2021년 주요 마약류 밀반입 압수량은 1016㎏인데, 82%에 달하는 물량이 선박을 활용한 셈이다.
올 상반기 국경 반입단계서 적발된 마약류 329㎏…코로나 엔데믹에 여행자 통한 밀수도 증가
해상 뿐 아니라 항공 등을 통한 마약 밀수도 늘어나면서 전체 밀수 적발량 또한 크게 증가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경 반입단계에서 적발된 마약류는 모두 329㎏에 달한다.
지난해 상반기의 238㎏보다 무려 38.2%나 급증한 수치인데, 적발 건수는 올해 상반기가 325건으로 370건인 지난해 상반기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해외에 비해 시중 마약가격이 높다보니 대량밀수를 시도하는 범죄가 함께 증가하면서, 1건에 1㎏ 이상을 담은 대형 밀수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한동안 국제우편과 특송화물 등 비대면 방식을 활용한 밀수가 횡행했는데, 올해부터는 코로나 엔데믹으로 인해 여행자를 통한 마약밀수까지 늘어나면서 전체 마약 밀수 증가세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에는 투약이 용이한 알약 형태의 MDMA나 야바(YABA)와 같은 마약류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야바의 경우 태국에서 많이 유통이 되다보니 태국발 마약이 미국발 마약과 함께 가장 많은 적발량을 기록할 정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관세청장 "마약이 최우선 업무"라지만 인력 부족에 기강해이까지…"인력 배치하고 선제적 대응해야"
고광효 관세청장은 지난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관세청 국정감사에서 "마약은 관세청의 최우선 업무"라며 "제한된 인력이나 장비 하에서 전 청의 인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연말 인천공항세관에 마약류 전담 분석센터를 추가로 구축할 예정이다. 인력도 늘리고 근무 체계도 바꾸고 우범 물품 검사도 강화하겠다"며 강력한 대응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고 관세청장의 결연함과 달리 현실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올해 8월 기준 대구본부세관에는 마약 수사 인력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경찰청이 올해 상반기 마약류 범죄 단속으로 검거한 인원은 494명으로 지난해 상반기의 284명에서 73.9%나 급증했는데, 대구지역으로 유입되는 마약을 단속할 인원이 전무한 것이다.
인천공항세관에만 68명이 집중 배치됐을 뿐 부산세관 6명, 서울세관 4명, 인천세관 4명, 김해공항세관 1명 등 나머지는 모두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국민의힘 류성걸 의원은 "대구본부세관에 마약 전담부서가 없음에도 수사 개시 1년 만에 19건을 적발한 것을 보면 적발하지 못한 범죄는 훨씬 많을 것"이라며 대구세관에 마약 전담 조직을 신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관직원의 업무기강 해이도 도마 위에 오른 상태다.
경찰은 지난 11일 다국적 마약조직 조직원이 필로폰 24㎏ 밀반입하는 과정에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도록 도운 혐의로 인천공항 세관 직원 4명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필로폰 24㎏은 약 80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으로, 시가로는 약 720억원에 해당한다.
해경 또한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단속을 좀처럼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해경 내 마약범죄 전담 수사관은 26명, 해경청 당 4명 안팎인데, 이는 지방 검찰청 마약 수사관보다 적은 수준이다.
소병훈 의원은 "전국에 마약단속 대응을 위해 운영하는 인원이 26명밖에 되지 않아 전담인력이 부족한 실정인데, 새로운 형태의 마약을 생산·유통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해경의 마약수사 인력 추가 배치가 필요하다"며 "선제적인 대응으로 마약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는데 해경이 앞장서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