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도 포기, 연구만 했는데 왜 우리를…" 청년 연구자의 울분

석박사 재학생들이 전하는 현장 상황
'미확정', '불안정'의 연속

내년 R&D 예산 정책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례 답변 가운데 단어의 빈도수를 추출, 의미 있는 단어 30개를 선정해 만든 '단어 클라우드'. BIRC '국가 R&D 예산 정책에 대한 현장 연구자 인식 및 현황 조사' 캡처

"저희 연구실 구성원 가운데 3명 인건비 지급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들었어요. 내년부터 정부 지원이 아예 0원이라고 하더라고요. 교수님과 어떻게 인건비를 충당해야 할 지 계속해서 논의 중입니다. 내년 2월 이후 계획 자체가 없어진 상황이에요. 그 사이에 어떻게든 연구 과제를 따서 생명줄을 이어야 하는데 정부 지원이 0원 그대로 확정이 되면 저희 연구실처럼 기초 과제로 먹고 사는 연구실은 치명적이죠. 저희 연구실에 떨어진 지령은 '실험할 거 있으면 올해 무조건 다 끝내라'에요.

내년이요? 저희도, 교수님도… 몰라요…"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 중인 A씨(30대 초반)가 소속된 연구실 상황이다.

내년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이 삭감되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청년 연구자들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정부는 현재 소통을 강화한다며 릴레이 간담회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연구 최전방에 있는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은 없다. 청년 연구자들이 말하는 현장은 '미확정'의 연속, 그래서 '불안정'의 지속이었다.  

A씨는 그나마 국제 교류 관련 과제 예산이 늘어났다는 소식에 다시 과제를 수주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교수님께서 해외 대학의 지인 분과 교류하겠다는 제안서를 쓰고 있고 그걸 기다리고 있어요. 이거라도 되면 정말 좋겠지만, 그 연구비도 원래 하던 연구비의 절반 수준이에요. 그 연구비의 특징은 '재료비'로 할당할 수 없다는 겁니다. 국제 교류용으로만 써야 하죠. 인건비와 해외를 왔다갔다 하는 비용이라서요. 저희 전공은 '실험'이 필수인데, 실험을 못하는 건 마찬가지인 상황입니다."

이마저도 실패하면 기업 과제를 수주해야 한다. 이 경우 기업이 요청한 연구에 대한 용역 결과만 내야 한다. 기업에서 "이걸 측정해줘" 또는 "저걸 확인해줘"라고 요청하면 그에 대한 실험과 연구만 하는 식이다. A씨는 "한마디로 '창의적 연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A씨는 연구 뿐 아니라 자신의 실생활에도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제 인건비가 월 120만원입니다. 자취가 불가능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연구 기간 동안에는 연애나 결혼도 불가능해요. 생활비 자체가 70만원 정도에요. 밥 먹고 생필품, 운전, 기름 넣는 건데 이게 이제 0원이 된다면… 학교 식당 말고 외식도 거의 안하고 있는 상황인데 더 줄어들면 어떤 걸 포기해야 할 지…."  A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석사 과정 학생 B씨의 경제적 상황도 유사했다.

"박사 과정 진학을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독립을 한  또래들이 보는 '가난한 연구자'에 대한 회의적인 인식으로 인해 연구를 그만두고 취업이나 사업도 고민 중입니다. 연애도 포기하고 오직 연구에만 몰두했는데… 이제 경제적인 부분이 저를 압박합니다. 저는 부유한 연구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불쌍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20대 후반 C씨는 석사 마지막 학기만 남겨두고 있다. 내년에는 박사 과정을 밟을 계획이었다. C씨는 15명 이상의 대규모 연구실 소속이다. 정부 지원을 받아 다년차(1년 이상)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 C씨가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이다.

"신규 과제 예산을 깎는 것도 문제겠지만… 이건 다년차 과제에요. 아무런 조짐도 없다가 말 한마디로 이렇게 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우리는 제안서를 내고 경쟁을 했어요. 심사까지 받고 과제를 따온 거에요. 갑자기 깎이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해내기 위해 들인 돈이나 시간, 인원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히려 기업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하는 지인들은 타격이 적다고 했다. 반면 C씨를 포함해 정부 지원을 받아 연구하는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더 안전하다고 믿었던 정부 지원 연구가 이렇게 큰 타격을 받다니 아직까지도 의아하다.
 
"미래가 안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에 있어선 괜찮은 나라인 것 같았어요. 해외 박사 과정도 고민했지만, 우리나라이기도 하고 이공계를 밀어주고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연구실 환경이나 이런 걸 보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데… 갑자기 연구비가 삭감된다고 하니까 걱정이 크죠. 인재가 유출될 수 밖에 없겠다고 봐요. 다들 미국 가려고 하겠죠."

연구실도 뒤숭숭하다. 카르텔이 문제면 연구 생태계에 피해가 없도록 카르텔을 도려내면 될 텐데 '너무 빠르게', '대폭', '명분 없이', '현장 얘기를 듣지 않고' 예산이 깎인 게 놀라우면서도 황당해서다.

"다들 이러다 나라 망하는 거 아니냐고 하죠. 출산율도 안 좋은데 과학기술도 투자가 안 되면 인재 유출은 당연한 수순이고… 청년층이 힘드니까 나라 망하겠다 이런 이야기들을 합니다. 카르텔이란 명분을 얘기 했지만, 정작 카르텔은 타격 없고 청년층만 타격 받겠죠."
 

현재 내년 정부의 R&D 예산 삭감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손을 떠나 기획재정부를 거쳐 국회에 넘어간 상태다. 야당은 증액 논의를 하겠다고 하지만 기재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과 함께 기재부의 입장이 중요하다.

지난 19일 기재부 국감에서 추경호 장관의 입장은 그래서 관심이 집중됐다. 그는 "R&D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구조조정 대상에서 예외가 되고 대폭 늘어야 하느냐. 성역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했다. 현재 R&D 예산 삭감안에 반발하는 과학기술계의 입장을 한참 잘못 짚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젊은 연구자들은 R&D 예산이 결코 '성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발 잘못 집행된 예산은 바로 잡았으면 한다고 했다. 문제는 원인과 결과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D씨의 말이다.

"R&D 예산 삭감의 이유로 들었던 '나눠먹기식 보조금'을 해결하기 위해 R&D 예산 자체를 삭감하는 건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가 않습니다. 어떤 근거로 예산을 줄이는 게 나눠먹기식 보조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건가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에요. 공통적으로 이에 대한 반발이 큽니다. 오히려 카르텔이 더 공고해지는 게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오고요. 정부는 연구비 '나눠먹기'를 해결하기 위한 더 좋은 방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R&D 예산은 깎았지만 '젊은 연구자를 위한 지원은 축소하지 않았다'거나 '4대 과학기술원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자체 재원을 통해 인력 규모를 축소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이들에게 공허했다.

"R&D 예산 삭감으로 저희 연구실이나 다른 연구실도 가장 먼저 인건비 삭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생활비와 등록금을 인건비에서 충당하고 있는데 여기서 인건비가 더 감소되면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여요. 차후 학위 과정 중에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결혼을 진행하더라도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게 불가피해 보입니다."

이번 예산 삭감의 여파가 1, 2년이 아니라 향후 지속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현장 상황에서도 유효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했던 학부생들의 뜻이 대학원을 진학하지 않는 방향으로 많이 꺾였습니다. 대학원생들은 학기마다 졸업을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입학하는 대학원생이 필요해요. 그런데 현재는 대학원 진학 자체를 원하지 않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인건비 감소와 대학원생 TO 또한 줄 것으로 예상되고요. 연구에도 역시 사람이 지속적으로 필요한데 인건비 감소로 인한 대학원생 수 감소는 연구 진행 속도를 더디게 할 것이라며 다들 우려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전화와 서면 인터뷰 등을 통해 밝힌 이들의 입장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연구비 감액으로 인해 과제 수주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고 단기 성과 위주의 연구에 치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산 감액 뿐만 아니라 과제 편성에서도 신진 연구자들의 지원을 늘린다는 명분으로 우수 신진 과제와 세종 과학 펠로우십의 과제 예산을 증액했지만, 실질적으로 신진 연구자들의 성장에 디딤돌이 되는 과제들을 축소함으로써 진 연구자들의 연구 현장 이탈이 예상됩니다.

연구의 선두에 있는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들은 대한민국의 청년이고, 대학원과 연구는 이들의 일자리입니다. R&D 예산 삭감으로 인한 연구 및 인건비 삭감이 이 청년들의 일자리를 뒤흔드는 중대한 문제라는 점을 정부가 알 길 바랍니다."

국내 최대 생물학 연구자 커뮤니티인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와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한의약융합연구정보센터(KMCRIC), 의과학연구정보센터(MedRIC) 등이 공동으로 진행한 현장 연구자들의 인식과 현황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도 이들이 전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대학원생 응답자 중 91%는 학위를 위한 연구에 지장이 있다고 답했으며, 94.7%는 장기적으로 전공과 관련 진로 계획에 장애 요인이 될 것이라고 봤다. 대학생 87.3%도 이번 정책이 대학원 진학 결정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 응답자 2855명 가운데 대학원생은 697명, 대학생은 196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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