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 수호는 그룹 엑소 리더로 익숙하지만 연기는 고등학생 때부터 꿈꿨던 당연한 길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입학했을 뿐 아니라 20대에 엑소 활동을 하면서 너무 바빴던 가운데에도 연기를 놓지 않았다. 어찌 보면 수호에게 연기란 아주 자연스러운 이어짐이다. 그리고 작품의 흥행과 관련 없이 꾸준히 그 길을 걷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아이돌 스타이기에 수호에겐 수많은 팬들이 있다. 배우 수호 이전에 각인된 엑소 수호는 그가 언제든 돌아갈 집이자, 뿌리이기도 하다. 팬들의 칭찬과 다른 대중의 비판이 몹시 따가울지라도 수호는 굳이 그것을 피할 생각이 없다. 무대 모니터링을 하듯이 연기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정당한 비판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의 연기에 참고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냉철한 자기 인식이다.
어쩌면 이런 수호의 무난함과 성실함이 지금까지 그를 연기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성장시켜왔는지 모른다. 수호는 '힙하게'를 오랜만에 먹은 '당근'이라고 표현했다. 스스로 채찍질을 계속 하다가 드디어 한 번 결실을 맺은 셈이다. 한 캐릭터로 전혀 다른 온도 차를 표현해내면서 비로소 시청자들에게 배우 수호의 얼굴을 각인시켰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수호는 다시 스스로 채찍질하며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다음은 수호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A 군 복무 후 처음 찍은 작품이었다. 방송까지 포함하면 3년 반 만에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 작품이라 부담도 되고, 스스로 걱정도 되고, 기대와 설렘이 있었는데 참 뜻 깊은 작품이었다. 흥행과 배우로서 절 알린 것을 떠나서 너무 좋은 사람들과 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냥 '전원일기'처럼 안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고, (한지민) 누나와 (이민기) 형에게도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다.
Q 말미에 결국 범인에 의해 희생 당하는 결말인데 아쉽진 않았을까
A 감독님이 '봐서 살려줄 수도 있겠다'고 하셨지만 장난식이고 사는 결말은 없었던 거 같다. (웃음) 저희 엑소 멤버들이 드라마에서 많이 죽었는데 어쨌든 배역으로서는 죽는 게 배우가 더 기억에 남게 된다는 이야기를 제작진이 해주셨다. 어떻게 보면 위로였을 수도 있는데 저도 거기에 동의를 한다. 그래서 죽는 것에 대한 서운함과 아쉬움은 없었다.
Q 끝까지 범인으로 의심 받도록 의뭉스러워야 하는 역할이었다. 연기적인 어려움도 있었겠다
A 처음에는 감독님이 안 알려주셔서 그런 의뭉스러운 방향으로 준비를 해나갔고, 촬영에 들어갔을 땐 '이제 너도 알아야 된다'며 범인이 아니라고 알려주셨다. 사실 진지하게 이 역할을 연기하려고 하니까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다. 캐릭터가 좀 애매모호해 보였다. 또 작품 자체 분위기가 코믹한데 나만 나오면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방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감독님이 연출적으로 잘 쌓아 주실 거라고 믿었지만 그런 부담이 있었다. 또 실제 저와는 성향 차이가 있어서 모든 행동을 천천히 하는 훈련도 했다. 그 과정은 재미있었지만 확실히 중압감은 있었던 거 같다.
A 지금 사실 기사 내용이나 제목 때문에 머릿속에서 필터가 두 개 정도 돌아가고 있어서 반응이 느린 거다. (웃음) 범인처럼 보여야 되는 장면에서는 '범인'이라고 표시를 하고, 아닌 부분은 '시민' 이렇게 표시를 해서 분석을 했다. 감독님께서 엑소 무대를 많이 보셨는데 제가 정색하면 무서워 보일 때가 있다고 하시더라. 실제로 안광이 사라진 눈이라고 해주시기도 했다. '싸한 표정'은 모든 배역의 행동에는 목적과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해서 완성된 거 같다. 예를 들어 누가 가는 걸 지켜볼 때도 정확하게 저만의 전사를 만들었다. 눈빛만 따는 장면에서도 '왜 나를 의심하는 거지. 나도 한 성격하는 사람인데' 이런 자세한 생각을 글로 써 놓았다. 14회에 제가 죽기 직전까지도 과도로 사과를 깎는 장면이 무서워서 채널을 돌렸다는 시청자들도 계셨는데 끝까지 혼란스럽게 표현된 거 같아서 뿌듯했다.
Q 스스로 연기도 모니터링을 좀 하는 편인지 궁금하다. 엑소 멤버들도 피드백을 해준 게 있나
A 엑소든 무슨 활동을 하든 모니터를 많이 하는 편이긴 하다. 스스로 자기 반성을 많이 하기도 하고. 말도 안되게 비하, 비방하는 욕설이 아니면 저는 어쨌든 한 번 되돌아보는 것 같다. '왜 이렇게 생각하시지?'라고. 이번에 칭찬을 받아서 모니터링 한 건 아니고 늘 항상 해왔다. 이번에도 (부정적인) 코멘트들이 없지는 않았어서 그런 것도 보고 많이 자양분 삼았다. 범인으로 오해하시는 게 초반에는 재미있었는데 마지막까지 그러니까 나중엔 원성을 살 거 같더라. (웃음) 멤버들은 성격상 본 방송을 못 기다려서 끝나면 (보게) 이야기해 달라고 그랬다. 더군다나 제가 초반부터 나오지를 않아서…. 만약에 안 나왔는데 보라고 하면 '언제 나오는 거냐'면서 난리가 난다. (웃음) 멤버 부모님들이 오히려 저한테 누가 범인이냐고 물어보셨다. 찬열이 할머니, 백현이 어머니가 멤버들 통해서 물어보셨는데 당연히 답은 이야기 할 수 없었다.
A 확실히 좋은 사람들과 작품을 해서 인간적으로 성숙하게 된 거 같다. 한지민, 이민기 선배님이 저에겐 스타였는데 정말 편한 동네 형, 누나처럼 해주셨다.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평생 가까이 지내고 싶다. 또 나도 두 선배처럼 여유있게 후배를 잘 챙길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석윤 감독님께도 많이 배웠다. 선장으로서 현장을 아우르는데 정말 막내 스태프 이름까지 다 외우시는 섬세함, 그럼에도 일할 때는 정확한 계산을 통해 디렉션을 하시더라. 10년 후에는 한지민, 이민기 선배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고, 20~30년 후에는 김 감독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Q 엑소에서는 리더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막내였다. 어떤 역할이 본인에게 더 맞다고 생각했는지
A 사실 제가 집안에서 막내라 동생이 훨씬 편하다. 개인 활동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리더는 회사에서 정해준 건데 천직까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책임감이 있긴 하다. 사실 마냥 리더가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2년 차부터 그게 아니고 궂은 일을 하는 사람이었구나 싶다가도, 요즘엔 다시 리더인 게 좋다. 멤버들이 내게 많이 의지하고, 물어보는 게 익숙하고 너무 좋아졌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미 엑소에서 신경 써야 할 동생들이 많아서 다른 후배들은 잘 못 보게 되더라.
Q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연기과 출신인데, 아이돌로 데뷔했지만 원래부터 연기에 대한 생각이 있었던 걸까
A 애초에 SM에 들어올 때부터 연기도 같이 할 생각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에 다리를 다쳐서 같이 연습하던 샤이니 선배들은 먼저 데뷔를 했다. 저는 춤을 못 추니까 노래와 연기에 더 집중해서 연습을 했다. 음악적으로는 SM에서 배우니까, 대학은 연기과를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한예종에 지원해 운 좋게 붙었다. 사실 대중이 보시기에는 저를 엑소 수호로 알고 있으니까 연기가 도전 같을 수 있다. 하지만 저에겐 학교에서 같이 친구들과 공연도 하고 그랬기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활동이었다. 계획적으로 배우로 인정 받겠단 생각보다는 20대에는 엑소 활동이 너무 많아서 하지 못했고, 그 때도 활동이 없을 때는 연기를 끼워서 꾸준히 하긴 했다. 최근에 저희 동기 중에선 (임)지연이가 '더 글로리'로 주목 받았는데 저희들끼리는 '끝까지 꾸준히 열심히 연기 하는 게 이기는 거'란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냥 작품을 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열심히 하는 것 같다.
A 배우로서 인지도를 쌓는 계기가 된 작품인 건 맞지만 사실 마음가짐은 그냥 똑같다. 독립영화든, OTT든, 드라마든,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대본이 좋고 역할이 좋으면 지금 해온 것처럼 하고 싶다. 기회가 주어질 때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물론, 이걸 했으니 이번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영리함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20대에 엑소 활동이 90%라면 30대에는 배우 활동 비중을 늘리면서 꾸준히 연기를 하고 싶다. 멤버들도 각자 하고 싶은 걸 서로 존중하고 지지해주고 있다.
Q '힙하게'를 만난 2023년은 본인에게 어떤 해로 남을까
A 올해를 돌아보면 농작물에 계속 씨앗을 뿌리고, 채찍질을 하다가 잠깐 당근을 먹었지 않나 싶다. '힙하게'를 통해서 스스로에게도 힘이 되는 그런 당근을 먹은 거 같다. 그래도 많은 분들께 연기로 호평을 받았고, 그런 성취감이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채찍질을 가능케 하는 당근이 아닐까. 제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할 수 있게 또 한 번 도와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