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50억 클럽 '피고인' 된 박영수 특검… 뒤바뀐 '경제공동체'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을 돕는 대가로 뒷돈을 받았다는 이른바 50억 클럽 의혹을 받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 류영주 기자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수많은 사건과 의혹 중에서도 국민적 분노와 이목이 집중된 사건은 단연 '50억 클럽'입니다. 문서에 등장하는 정식 명칭은 '50억 약속 그룹'이죠.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자신과 친분이 있는 법조인, 언론인 등에게 청탁의 대가로 각각 50억 원을 줬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입니다. 한 생을 살면서 만져볼 수나 있을까 싶은 거액이 뿌려졌다는 비현실적인 사건에 국민적 분노가 일었고, 지금도 수사는 한창 진행 중입니다.

오늘 법정B컷은 50억 클럽에 연루된 인물로는 두 번째로 재판에 넘겨진 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첫 재판 이야기입니다. 경제공동체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한 박 전 특검, 운명의 장난처럼 이번엔 그에게 경제공동체 논리가 적용된 그날의 법정으로 가보겠습니다.

200억에 단독주택, 그리고 또 50억…朴 '대장동 해결사'였나

2016년 11월, 기자가 박영수 전 특검을 처음 본 곳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특검으로 임명된 직후였죠. 그는 여러 질문에도 "수사로 보여주겠다"는 말을 남겼고, 많은 국민의 뜨거운 관심 속에 박근혜 정부에 대한 수사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2023년 10월 12일, 그는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됩니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에 연루된 피고인들로부터 청탁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입니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보면 박 전 특검은 많은 국민의 관심을 받으며 "수사로 보여주겠다"라고 말한 그 시점에도 이미 김만배 씨 등 대장동 민간 개발 업자들과 금품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을 한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도 검찰 공소장에 등장하는 범행 현장이었죠.

정장 차림에 흰 마스크를 쓰고, 머리는 짧게 친 뒤 살짝 올린 박 전 특검이 법정에 들어섰습니다. 이름을 묻는 재판부에 박 전 특검은 스스로를 "박영수 피고인…"이라고 불렀죠.

이젠 검찰이 공소사실을 읽어 내려갑니다.

2023.10.12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박영수 '50억 클럽 의혹' 공판 中
검사 
"대장동 민간 사업자들은 2014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대장동 사업 시행자 공모에 착수합니다. 이들은 컨소시엄에 하나은행이 탈퇴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 다른 은행을 컨소시엄에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은행은 의사결정이 복잡해 실무담당자 접촉만으로는 최종 결정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우리은행 고위직에 있던 박영수 피고인을 통해서 확실히 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민간업자들은 피고인에게 청탁해 우리은행을 컨소시엄 구성 논의에 참여시키고자 했습니다"


김만배 씨와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이 대장동 개발 사업자에 선정되기 위해 하나은행 외 또 다른 은행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있던 박 전 특검에게 접근했다는 겁니다.

2023.10.12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박영수 '50억 클럽 의혹' 공판 中
검사
"2014년 10월, 박영수 피고인은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로 남욱과 정영학 등으로부터 대장동 사업을 위해 하나은행과 준비 중인 컨소시엄 구성 논의에 우리은행이 참여하게 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피고인은 우리은행장을 통해 우리은행 부동산금융부에 전달합니다"

"청탁이 전달되자 피고인은 10월 하순경, 남욱과 김만배, 정영학에게 우리은행 부동산금융부와 연락해 논의하도록 했고 실무적 부분과 추가적인 부분은 양재식 피고인(전 특검보)과 협의할 수 있게 합니다. 양재식 피고인은 2014년 10월 19일,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과 인근 중식당에서 남욱, 정영학, 하나은행 부장, 우리은행 부장 등을 만나 컨소시엄을 논의합니다"


박 전 특검을 향한 대장동 민간개발업자들의 청탁은 계속됐고, 우리은행의 컨소시엄 참여 논의가 현실화되는 듯 하자 이들은 금품 제공을 약속합니다.

2023.10.12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박영수 '50억 클럽 의혹' 공판 中
검사
"남욱, 정영학, 김만배는 박영수 피고인에게 서판교자산관리 지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제안했지만 피고인은 신속하고 안정적, 고정적인 금액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남욱 등은 확정이익 200억 원과 단독주택 부지, 그리고 단독주택 2채를 약속했습니다"

"또 피고인들(박영수·양재식)은 이를 감독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장동 도시개발관리자산관리회사의 대표로 양재식 피고인의 사법연수원 제자인 A변호사를 임명하게 했습니다"

"박영수 피고인은 2014년 10월부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에 나가기로 했고, 양재식 피고인이 이를 총괄했습니다. 우리은행 관련 청탁을 실현시켜주는 대가로 대한변협회장 선거 자금 3억 원을 요구했고 이를 수수했습니다"

대장동 수익을 은닉한 혐의를 받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 황진환 기자

우리은행의 컨소시엄 참여가 현실화되는 듯했지만 우리은행 대기업심사부가 부적격 의견을 냈고, 이는 무산됩니다. 그러자 대장동 민간개발업자들은 우리은행의 1500억 원 규모의 여신의향서라도 받아야 한다며 박 전 특검에게 이를 청탁했다는 것이 검찰 주장입니다.

그리고 우리은행은 여신의향서를 발급합니다. 김만배 씨는 청탁 대가로 박 전 특검에게 5억 원을 제공하고 향후 50억 원을 주겠다며 약속합니다. 김만배 씨는 박 전 특검의 인척을 통해 박 전 특검에게 5억 원을 제공하는데, 이는 다시 김만배 씨 쪽으로 들어갑니다. 마치 박 전 특검이 투자한 것처럼 보이게 해 나중에 배당으로 50억 원을 받을 수 있게 모양새와 근거를 만들었다는 것이 검찰 주장입니다.

2023.10.12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박영수 '50억 클럽 의혹' 공판 中
검사
"김만배는 2015년 3월 19일 이후 박영수 피고인에게 여신의향서를 청탁하면서 5억 원을 전달하고 향후 50억 원을 제공한다고 약속했고, 피고인은 이를 수락했습니다. 우리은행 부동산금융부는 사업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대기업사업부의 의견도 무시하고 1500억 원 여신의향서를 전결권을 위반하면서까지 발급했습니다"

"피고인은 계좌로 5억 원을 받았고, 김만배는 피고인이 2015년 4월 다시 입금한 5억 원을 차입금으로 처리합니다. 이를 통해 김만배는 피고인이 화천대유 지분을 보유한 듯한 모습을 만들어 나중에 지분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피고인은 국정농단 특별검사가 됐고, 김만배 씨는 2019년 3월부터 배당수익이 발생하자 피고인에게 약속한 50억 원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은 공직자에 해당하는 특검이라서 직접 수수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김만배는 피고인의 청탁으로 화천대유에 입사한 피고인의 딸을 통해서 지급하기로 했고, 11억 원을 수수했습니다"


경제공동체 앞세웠던 朴 특검… 경제공동체에 발목 잡힐까 

위에서 본 것처럼 검찰은 박 전 특검이 대장동 민간개발업자들의 청탁을 들어줬고, 그 대가로 금품을 약속받거나 또 실제로 돈을 수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검 신분이어서 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선 딸을 통해 받았다는 것이 검찰 주장인데, 검찰은 이 부분에서 '경제공동체'를 내세웁니다. 박 전 특검과 딸이 경제공동체라는 것이죠. 이는 앞서 국정농단 특검 당시 박 전 특검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적용했던 논리입니다.

2023.10.12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박영수 '50억 클럽 의혹' 공판 中
검사
"박영수 피고인은 딸에게 장기간 생계비를 지원했습니다. 피고인은 법무법인 강남의 대표변호사로 재직하는 기간 딸을 허위 직원으로 등재해 월급 명목으로 200만 원씩 지급했습니다. 이후 청탁을 통해 딸을 화천대유에 입사시켰고 매월 400만 원씩 받았습니다"

"피고인의 딸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로 지속적으로 지원을 받는 경제적 공동체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김만배는 2019년 3월부터 배당금이 나오자 피고인에게 50억 원을 주고자 했지만, 특검이어서 직접 줄 수 없자 딸을 통해 주고자 하는 의사를 밝혔고 피고인은 동의합니다"


대장동 개발사업을 돕고 아들을 통해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류영주 기자

대장동 민간개발업자와 친분이 있던 박 전 특검, 그리고 화천대유에 입사해 일을 한 박 전 특검의 딸. 이 부분 어디서 본 듯하지 않으시나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도 화천대유에서 일을 했죠. 곽 전 의원 아들은 화천대유를 나오며 퇴직금 명목으로 50억 원을 받아 논란이 됐었죠. 50억 클럽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곽상도) 아들이 대리인으로서 뇌물을 수수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사정들이 존재하지만, 성인으로 결혼해서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했고, 아들의 급여 수령 계좌에 입금된 성과급의 일부라도 곽상도에게 지급되거나, 곽상도를 위해 사용됐다고 보이지 않는다"라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박 전 특검도 이날 같은 논리로 맞섰습니다.

2023.10.12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박영수 '50억 클럽 의혹' 공판 中
박영수 피고인 측
"딸이 회사로부터 받은 11억 원도 딸은 이미 결혼해 생계를 달리하고 독자적으로 직업을 갖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검사 주장처럼 박영수 피고인의 생계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 딸은 매번 돈 빌릴 때마다 차용증서를 작성했고, 그 이자도 납입했고 이를 변제할 자력도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피고인과 딸 사이에서 '돈을 대신 받는다' 등 이런 공모 자료도 전혀 없습니다"

물론 박 전 특검 측은 청탁을 받은 사실도, 돈을 받은 적도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합니다. 그 과정에서 과거 재판에서 김만배 씨가 '50억 클럽은 사실 자신이 돈을 더 챙기기 위해 꾸며 낸 허언이었다'라고 주장한 부분을 인용하기도 했죠. (관련기사 : [법정B컷]법꾸라지 김만배의 말바꾸기…'50억 클럽'이 허언?)

2023.10.12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박영수 '50억 클럽 의혹' 공판 中
박영수 피고인 측
"대장동 업자들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서로 모순되는 것도 많습니다. 그 신빙성 판단 이전에 양재식 피고인을 통해서 박영수 피고인에게 말을 전달했다는 논리를 검사가 제시한 이유는 대장동 업자들이 청탁 대상인 박영수 피고인을 제대로 만난 적도 없기 때문에 양재식 피고인을 부각해 박영수 피고인과의 연결고리를 만들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박영수 피고인은 대장동 업자로부터 대가 관계로 받은 것도 없습니다. 소위 '50억 클럽'은 김만배 스스로도 허언이라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관련 사건(곽상도)에서도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대장동 개발사업 주관사로 역할을 다한 것은 하나은행이고, 하나은행이 PF 대출 업무도 모두 해 받은 수수료가 300억 원입니다. 그런데 종국적으로 단 한 푼도 투자하지 않은 우리은행을 참여도 아니고, 참여 논의에 끌어들인 것으로 무려 200억 원과 단독주택 부지, 단독주택을 주기로 했다고 한 공소사실은 그 자체로 너무나 상식에 동떨어집니다. 피고인은 대한변협회장 선거 자금 명목으로 3억 원을 받은 사실도 없습니다"


검찰과 박 전 특검 측이 상반된 주장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일단 딸이 받았다는 11억 원을 두고서 박 전 특검과 딸을 경제공동체로 볼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1심에서 무죄를 받은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해서도 경제공동체 논리를 강화해 항소에 나선 상황입니다.

자신이 적용했던 경제공동체 논리가 이번엔 자신에게 적용된 박영수 전 특검. 운명의 장난처럼 심판대에 선 그는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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