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주도한 핵심 인물로 하마스 가자지구 군 사령관 모하메드 데이프(58)가 지목되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의 배후에 하마스 군사조직 알카삼 여단 최고지도자 데이프가 있다며 그의 정체와 행적을 조명하고 있다.
지난 7일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이 가해지기 전 하마스 TV 채널은 데이프가 연설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가 좀처럼 발언을 하거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인물인 만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미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았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데이프는 TV로 방송된 육성 메시지를 통해 "지구상 마지막 점령을 끝내기 위한 가장 큰 전투의 날"이라며 "우리 인민은 그들의 혁명을 되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알아크사 홍수(Al Aqsa Flood) 작전의 개시를 선언한 것이다.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범죄를 중단할 것과 학대와 고문을 당한 죄수들을 석방할 것, 그리고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수용을 중단할 것을 거듭 경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점령의 역사와 국제법과 결의안에 대한 부정, 미국과 서방의 지지와 국제적 침묵에 비추어 우리는 이 모든 것에 종지부를 찍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데이브의 육성이 방송될 때 TV 화면에는 어둠 속 그의 뒷모습 사진이 비춰졌다. 로이터는 데이프의 사진은 단 3장 뿐이라며 1장은 20대 사진, 다른 1장은 마스크로 가린 모습이며 마지막으로 어둠 속 뒷모습이라고 전했다.
데이프는 1965년 가자지구에 있는 칸 유니스 난민 캠프에서 태어났다.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민중봉기인 1차 '인티파다' 당시 하마스에 합류했다.
그는 가자지구에 있는 이슬람 대학에서 물리학, 화학, 생물학을 공부했다. 또 대학의 연예 위원장을 맡고 코미디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등 예술 쪽에 친밀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하마스의 한 소식통은 로이터에 데이프가 1989년 이스라엘에 체포돼 약 16개월간 구금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마스에서 서열이 오르면서 터널망과 폭탄 제조 전문 기술을 개발했다.
데이프는 2002년 이스라엘 공습으로 군사 지도자인 살라 셰하데가 사망한 후부터 후임자로 조직을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데이프를 지명 수배자 명단 1순위에 올리고 지난 20년 동안 최소 7차례에 걸쳐 그를 공격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은 2009년부터 그를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렸다.
로이터는 데이프가 항상 어둠 속에 머무는 것은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마스 소식통은 그가 이스라엘의 암살 기도 중 하나로 눈을 잃었고 한쪽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그의 아내와 7개월 된 아들, 그리고 3살 된 딸은 2014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하마스 무장조직을 운영하면서 데이프는 팔레스타인 민중 영웅으로 일컬어지지만 그의 모습은 여전히 복면을 쓰거나 어둠 속 흐릿한 형체로만 드러내고 있다. 하마스 내부에서도 데이프를 직접 만난 사람이 거의 없다.
'데이프'란 이름도 본명이 아니라, 아랍어로 '손님'을 뜻하는 별명이라고 한다. 암살 위협 때문에 주거지를 자주 옮겨다보니 그렇게 불린다는 것이다.
하마스의 측근은 로이터에 "데이프가 스마트폰과 같은 현대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그는 찾기 어렵다. 그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국 일간 더 타임스 등 외신들은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지휘부에 대한 암살 작전에 들어갈 것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