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소설 '키친'으로 데뷔한 이래 현대인들의 이야기를 서정적이고 담담하게 펼치며 상처를 치유해가는 플롯은 일본 특유의 가벼운 문체로 접하기에 부담이 없어 젊은층의 큰 인기를 누려왔다.
47편의 글을 모은 이번 산문집에서도 저자는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고 여행자이자 관찰자의 시선으로 일상의 삶과 소소한 것들을 바라보며 가까운 곳에서도 얼마나 많은 생각을 얻고, 나아가기 위한 용기를 지닐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꼭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마치 여행처럼 의미 있는 일상을 살아내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랑하는 친구나 존경할 만한 아티스트를 만나는 일, 가족과 추억을 나누고 또 만들어 가는 일, 예상하지 못한 이별까지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체험은 삶이라는 여행 속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마주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속에서도 마치 여행길에서 낯선 골목에 들어선 것처럼, 잠든 감각을 깨워 보면 같은 풍경도 낯설게 볼 수 있다.
저자는 후기를 통해 "사람이 보다 편견 없이, 보다 행복하고 마음 편히, 그리고 보다 사람답게 생명을 불태우며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날 때 후회가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글을 골랐다고 밝혔다.
데뷔 36년의 중견 작가가 된 저자가 일기를 쓰듯 습작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바쁜 일상에 내쳐진 우리에게 바람에 일렁이는 언덕 위의 나무 가지가 내어주는 그늘처럼 공감과 치유, 용기가 우리 마음에 사뿐 내려앉는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 김난주 옮김 | 민음 | 3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