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출 잔액이 한 달 새 9조원 가까이 늘어나는 등 9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하면서 우리 경제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주요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9월 말 기준 기업대출(대기업+중소기업) 잔액은 756조3309억원으로 나타났다. 8월 말(747조4893억원)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8조8416억원 증가한 것이다. 은행 기업대출은 9개월 연속 증가세인데, 지난해 12월 말(703조6747억원)과 비교하면 52조원 넘게 급증했다.
기업대출이 늘어난 것은 은행의 대출 영업 경쟁의 영향이다. 최근 당국은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치까지 오르는 등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은행권을 대상으로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정부 차원에서 장려했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가 중단되는 등 실제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에 은행들이 기업대출 금리를 낮춰 영업을 강화했다. 당국 눈치가 덜한 기업대출 쪽으로 영업 타깃을 선회한 것이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미국의 긴축 기조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며 회사채 금리가 뛰자, 회사채 발행보다는 은행 대출을 더 선호하게 됐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주요 은행을 대상으로 기업대출 외형 확대 자제를 당부했음에도 기업대출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의 대출 수요 자체가 꾸준한 상황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억제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기업대출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버는 돈으로 이자도 갚기 힘든 일명 '한계기업'은 3903곳으로, 분석대상 외감기업(2만 5135개)의 15.5%를 차지해 직전년도 비중(14.9%)을 넘어섰다.
한계기업에 대한 대출규모도 증가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종민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말 기준 5대 은행 및 3대 국책은행(산업‧기업‧수출입)이 한계기업에 대출한 금액은 54조 5천억원으로 2019년 말(34조 2천억원) 대비 20조원 늘었다.
문제는 미국발 고금리 장기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물가 상승 여파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만큼 기업 사정은 당분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직후 국제유가도 상승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앞으로 사태의 향방 등에 따라 변동폭이 확대될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태가 향후 국내 에너지 수급 차질로 이어지지 않도록 산업부 및 유관기관과 함께 철저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대출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은행과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맞은 지점이 있다"면서 "경기침체가 길어지면 건전성 악화가 우려돼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