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8일 오전 중국 항저우의 한 호텔에 마련된 스포츠 외교 라운지에서 대한체육회가 주최한 결산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최윤 대한민국 선수단장, 장재근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장이 참석했다.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하면서도 무거웠다.
장재근 선수촌장은 "(대한민국의) 경기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하고 조금 더 분발하고 노력하겠다. 귀국하는 즉시 파리올림픽을 대비해 전체적인 점검과 함께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 39개 종목, 1140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금메달 42개, 은메달 59개, 동메달 89개 등 총 190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금메달 수를 기준으로 개최국 중국(201개)과 일본(52개)에 이어 종합 3위를 차지했다.
장재근 선수촌장은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죄송하다는 말을 했을까.
대한체육회는 이번 대회에서 종합 3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예상 금메달 수는 45~50개였다. 순위는 지켰지만 금메달 개수는 예상보다 조금 적었다.
그러나 지난 9월 20일부터 16일 동안 중국 항저우에서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며 최선을 다한 태극전사들을 보면서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스포츠 팬이 얼마나 될까.
우상혁(용인시청)은 육상 남자 높이뛰기에서 현역 최강 무타즈 바르심(카타르)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최고 높이에서 같이 경쟁할 수 있어 영광이다. 높이뛰기가 재밌다"며 밝은 미소와 함께 자신의 한계에 계속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혹은 메달권에 들지 못한 태극전사들은 고개를 숙였고 아쉬워 했다. 수년 동안 흘린 땀의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 속상함이다.
오래 전에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메이저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가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시절 국제 대회에 대한 기대와 인식은 지금과 매우 다르다. 과거에는 국가, 국위선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지금은 개인의 행복과 만족이 더 우선이다. 보는 이들도 그러기를 바란다.
한국 스포츠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 인구수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중국(금 201, 은 111, 동 71, 총 383개) 다음으로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물론, 대한체육회에게는 성적이 대단히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대한민국 선수단에게 꾸준히 훈련 시설과 비용 등을 지원하는 이유다. 대한체육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다만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더 세련된 방법으로 선수들을 격려하는 게 좋지 않을까.
장재근 선수촌장은 8월 말 아시안게임 D-30 미디어데이에서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선수촌의 와이파이를 차단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선수들이 심야 시간대에 '딴 짓'을 하지 말고 컨디션 관리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는 조치라고 했다.
그런데 아시안게임을 앞둔 선수가 과연 그런 행동을 할 지 의문이다. 이번 대회에서 만난 선수들은 모두 온 힘을 다해 대회를 준비했고 경기를 치렀다. 자율로 맡겨도 되는 부분은 아니었을까.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이번 대회에서 효자 종목으로 불렸던 일부 종목의 부진에 관해 "요즘 선수들은 새벽 운동을 안 하려고 한다"면서도 "강제로 하게 할 수 없다. 사회 환경이 바뀌었다. 옛날 방식은 안 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공감되는 말이었다.
이기흥 회장은 기자회견 말미에 2024 파리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준비하겠다면서 "내년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선수촌에 입촌하기 전에 해병대 극기훈련을 하게 할 것이다. 저도 같이 하고 입촌할 계획"이라는 말을 했다.
이기흥 회장은 이 말을 하기 직전에 한국 체육의 발전을 위해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것이고 데이터를 근거로 과학적인 접근을 해보겠다는 말을 했다. 그 다음 해병대 극기훈련 체험을 언급했다.
농담 같지는 않았다. 한 관계자는 이기흥 회장으로부터 해병대 관련 얘기를 종종 들었다고 했다.
과거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겨울 전지훈련에서 산 위에 올라가 차가운 얼음물에 입수하는 것과 같은 그림을 현 시대에 다시 보고 싶은 스포츠 팬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건 너무 옛날 방식이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성적이 잘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이기흥 회장의 발언을 접한 몇몇 팬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훈련이 혹독하기로 유명한 유도나 레슬링 종목의 선수들에게 해병대 극기훈련은 오히려 편한 것 아니냐고. 어쨌든 대회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을 자극하겠다는 의지 자체는 좋다. 다만 해병대는 너무 나갔다.
만약 정말 해병대 극기훈련을 굳이 하겠다면 희망자에 한해 입촌을 앞두고 선수들의 마음가짐을 새로 하기 위한 '가벼운' 이벤트 정도로 진행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