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을 만든,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39년' 양궁 사랑

지난 6일 중국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남자 단체전에서 대한양궁협회장인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장영술(왼쪽), 한규형(오른쪽) 양궁협회 부회장과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대한민국 양궁이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4개 등 총 11개의 매달을 획득하며 세계 최강의 위상을 이어갔다. 여자 리커브 단체전은 1998년 방콕 대회 이후 7연패에 성공했고 남자 리커브 단체는 13년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임시현 선수는 리커브 혼성전, 여자 단체전, 개인전 금메달을 모두 휩쓸며 3관왕에 올랐다.

대한민국 양궁의 또 한번의 아시아 제패로 39년간 지속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양궁 후원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명예회장이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한 이후부터 현재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의선 회장까지 국내 단일 종목 스포츠협회 후원 중 가장 오랜 기간 양궁을 후원하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1985년부터 1997년까지 4차례의 대한양궁협회장을 역임한 데 이어, 현재는 대한양궁협회 명예회장을 맡아 양궁 인구의 저변 확대와 우수인재 발굴, 장비 국산화 등 세계 최강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아들인 정의선 회장은 양궁의 과학화와 체계적인 선수 육성, 각 대회별 맞춤형 지원을 통해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정 회장은 이번 항저우 대회를 위해서도 양궁협회와 함께 △개최지 맞춤형 훈련 △첨단 기술 기반 훈련장비 개발 △대회 기간 선수단 컨디션 관리 등 전폭적인 후원을 펼쳤다.
 

'첨단'과 '세심'···정의선의 항저우 지원 키워드

7일 항저우 양궁경기장에서 모든 경기가 끝난 뒤 한국 양궁 대표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차그룹 제공

2005년부터 19년간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의선 회장은 이번 항저우 대회 경기를 참관하며 현장에서 한국 대표 선수들을 응원했다. 또 아시아양궁연맹 회장 자격으로 리커브 종목 남·여 개인전 시상을 직접 하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정 회장은 선수들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현대차그룹이 경기장 인근 호텔에 마련한 휴게공간과 물리치료 및 샤워시설, 음식 등 운영 현황도 직접 챙겼다. 특히 항저우의 유명 한식당과 계약해 경기 기간 동안 선수들에게 점심식사로 한식을 제공했다. 쌀밥과 숭늉, 된장찌개, 소불고기, 오리주물럭, 묵은지닭찜, LA갈비, 전복구이 등 매일 식단 구성을 달리하고 식자재 구매부터 조리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대회 준비를 위한 신기술 훈련 장비 등 훈련 인프라도 적극 지원했다. 진천선수촌에 항저우 양궁 경기장을 그대로 모사한 '가상의 항저우'를 만들어 대회 적응력을 높이도록 했다. 사대와 사로 등 경기장 색상, 전광관 디스플레이, 구조물, 경기장 현장의 소음까지 똑같이 적용했다.
 
대한양궁협회장 및 아시아양궁연맹회장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7일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양궁 리커브 남자 개인전 시상식에서 이우석 선수에게 동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AI, 비전 인식, 3D 프린팅 등 현대차그룹의 R&D 기술을 활용한 첨단 훈련 장비와 기법도 적용했다.

최상 품질의 화살을 선별하는 장비인 '고정밀 슈팅머신', 점수를 자동 판독하고 데이터 베이스화하는 '점수 자동기록 장치', 비접촉 방식으로 선수들의 생체정보를 측정해 선수들의 긴장도를 측정하는 '비전 기반 심박수 측정 장비', 3D 프린터로 선수의 손에 최적화해 제작한 '맞춤형 그립'을 개발해 선수들의 체계적인 훈련과 경기력 향상을 지원했다.
 

한국 양궁이 있는 곳에 정의선이 있다

지난 6일 중국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남자 단체전에서 대한양궁협회장인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왼쪽 세번째)이 금메달을 따고 환호하는 선수들에게 손을 흔들며 화답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정의선 회장은 2008년 한국 양궁 활성화 방안 연구를 지시하고 중장기적 양궁 발전 플랜을 세워 시행했다. 이를 통해 양궁 꿈나무의 체계적인 육성, 양궁 대중화를 통한 저변 확대, 지도자‧심판 자질 향상, 양궁 스포츠 외교력 강화 등 한국 양궁의 내실 있는 발전을 이뤄 냈다.
 
특히 정 회장은 원칙에 따른 투명한 시스템을 강조했다. 그 결과 양궁협회에는 지연, 학연 등 파벌로 인한 불합리한 관행이나 불공정한 선수 발탁이 없어졌다. 국가대표는 철저하게 경쟁을 통해서만 선발된다. 명성이나 이전 성적이 아니라 현재의 성적으로만 국가대표가 될 수 있고, 코칭스태프도 공채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발된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경우도 대회가 1년 연기되자 국가대표 선발전을 다시 열었다. 확고한 '경쟁' 원칙에 따라 2023년 현 시점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선수들을 선발하기 위해서였다.
 
또 유소년 등 장비 무상 지원은 물론 '유소년대표(초)-청소년대표(U16)-후보선수(U19)-대표상비군(U21)-국가대표'에 이르는 우수 선수 육성 체계를 구축했다. 국제대회 적을 위해 국가대표, 상비군, 지도자, 심판 대상으로 무료 영어교육도 실시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양궁대회인 '현대자동차 정몽구배 한국양궁대회'를 개최하고, 생활체육대회 및 동호인 대회 창설, 메달리스트와 함께 찾아가는 양궁교실을 여는 등 양궁 대중화를 위해 애써 왔다.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온라인·비대면으로 초등부 양궁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7일 항저우 양궁경기장에서 모든 경기가 끝난 뒤 대한양궁협회장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양궁 대표선수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특히 정의선 회장은 대한양궁협회장으로서 대표 선수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여 왔다.정 회장은 과거 종종 선수들을 찾아가 격의 없이 식사를 하며 격려하고, 블루투스 스피커, 태블릿PC, 마사지건, 카메라, 책 등을 선물했다.
 
주요 국제경기 때는 현지에서 직접 응원을 하는 등 세심하게 지원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경기장에서 선수단 숙소까지 1시간 이상이나 걸리자 경기장 인근 호텔로 숙소를 변경하고 선수들이 원하는 한식을 먹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계양아시아드 양궁장을 미리 찾아 경기장 시설과 관중석, 선수 대기 장소 등을 꼼꼼히 점검했다.
 
정 회장은 2016년 리우 올림픽 때도 직접 선수촌을 방문해 선수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경기장 인근에는 휴게실, 물리치료실, 샤워실을 갖춘 트레일러를 설치하고 불안한 현지 치안을 고려해 사설 경호원을 고용하고, 방탄차(투싼,맥스크루즈)도 제공했다. 2021년 코로나 시기에 열렸던 도쿄 올림픽 때는 미국 출장을 마치자마자 도쿄로 날아가 선수들의 건강과 방역 상황을 철저히 점검하고 응원을 펼쳤다.
 

정몽구가 다진 세계 최강의 토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양궁 대표단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만찬 행사를 열고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의 양궁 후원은 정몽구 명예회장부터 시작됐다. 1984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이었던 정몽구 명예회장은 LA대회 양궁여자 개인전에서 양궁선수들의 금빛 선전을 지켜본 뒤 양궁 육성을 결심하고, 1985년 양궁협회장에 취임했다. 또한 현대정공과 현대제철에 각각 여자 양궁단과 남자 양궁단을 창단했다.
 
정 명예회장은 체육단체에서는 최초로 스포츠 과학기자재 도입 및 연구개발을 통해 세계 최강을 향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훈련의 과학화를 위해선 장비부터 과학화해야 한다는 신념아래 첨단 장비 도입에 매진했다.
 
정 명예회장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미국 출장 중 당시로는 첨단 스포츠장비였던 심장박동수 측정기, 시력테스트기 등을 직접 구입해 양궁협회에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또 현대정공에서 레이저를 활용한 연습용 활을 제작해 양궁 선수단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선수들의 연습량, 성적 등을 전산화해 분석하는 프로그램도 정 명예회장의 지시로 개발됐다.
 
정 명예회장은 양궁의 필수 장비인 활의 국산화에도 앞장섰다. 그는 1990년대 말 양궁 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외국 메이커가 활 신제품을 자국선수들에게만 제공하자, 우리 선수들이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한국 선수들의 체형에 맞는 경쟁력 있는 국산 활을 개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집무실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양궁 관계자들과 해외 제품 및 국산 제품간 비교 품평회를 갖는 등 활 국산화에 힘을 쏟았다. 초등학생부터 국산 장비를 쓰도록 장려하고, 양궁협회도 일선 학교에 국산 장비를 지원하는 등 국산 활의 저변을 확대해 경쟁력을 갖추도록 했다. 그 결과 이제는 국제대회에서 수많은 타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한국산 활을 사용하는 등 한국 활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새로운 훈련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지금은 양궁 연습에서 필수 코스가 되다시피 한 관중이 가득한 야구장에서의 활쏘기 연습도 정 명예회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세계양궁협회가 한국 양궁의 독주를 견제하고자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토너먼트 형태의 새로운 경기 방식을 도입하자 정 명예회장은 선수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끄러운 곳을 찾아가 훈련을 해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코칭스태프와 양궁협회는 꽹과리, 북 등 사물놀이를 동원하거나 학교 운동장 등을 찾아다니며 훈련을 했고 그때 시작했던 훈련이 야구장 훈련으로 이어진 것이다.
 
정의선 회장의 선수단 현지 지원 및 현지 응원도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해외 전지훈련 때 항상 한식을 준비할 것을 당부하고, 직접 맛있다고 생각한 음식은 따로 포장해 선수들에게 보내주는 등 애정을 쏟았다. 1991년 폴란드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선수들이 물 때문에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스위스에서 물을 공수하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경기에 앞서 양궁대표단을 초청해 선전을 기원하는 만찬을 개최하고 현대차그룹 현지 주재원 및 가족, 재중 한인회 및 체육회 일원, 유학생 등을 대상으로 양궁응원단을 모집해 9천여 명 규모의 응원단을 결성해 선수들에게 힘을 주기도 했다.
 
대한민국 양궁은 선수 및 지도자들의 노력과 국민의 성원, 현대차그룹의 지원이 어우러지며 지난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이번 항저우 대회까지 금메달 40개, 은메달 22개, 동메달 17개를 획득하며 세계 최강이자 당연히 아시아 최강임을 과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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