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소프트테니스(정구)에서 한국의 첫 금메달을 수확해낸 문혜경(26·NH농협은행).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 테니스 코트에서 열린 여자 단식 결승에서 다카하시 노아(일본)를 4 대 0으로 완파했다.
위기의 대표팀을 구했다. 한국은 전날까지 3개의 종목에서 모두 결승 진출조차 실패했다. 남녀 단체전과 혼합 복식에서 동메달에 머물렀다. 이날 남자 단식까지 윤형욱(순창군청)이 대만의 쩡유성에 타이 브레이크 끝에 지면서 역시 동메달에 그쳤다.
종목 사상 초유의 노 골드 사태까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 한국 소프트테니스는 1990년 베이징 대회 이후 아시안게임에서 지난 대회까지 매번 금메달을 따냈고, 전체 41개 금메달 중 25개를 수확해냈다.
이런 상황에서 문혜경이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상대는 이번 대회는 물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2관왕에 오른 강자였지만 문혜경이 최후의 보루로서 사력을 다했다.
경기 후 문혜경은 "정말 얼떨떨하다"고 첫 소감을 밝혔다. 이어 "태극기를 들고 코트를 돌 때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면서 "울 줄 알았는데 생각이 안 난다. 믿기지 않고 멍했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온 정신을 다해 경기를 했던 문혜경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극복해냈다. 문혜경은 "대표팀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진짜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끝까지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열심히 했다"고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대표팀 후배들이 눈물을 쏟았다. 경기 후 고은지(옥천군청), 이민선, 임진아(이상 NH농협은행), 지다영(안성시청) 등 동료들은 문혜경을 얼싸안고 기뻐했다.
이민선, 임진아, 지다영 등 후배들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자신들의 부진으로 언니에게 너무 많은 짐을 안겼다는 마음에서였다. 이민선은 이날 8강전에서 다카하시에 3 대 0으로 앞서다 역전패를 안았다.
여기에 지다영, 임진아는 단체전에서 대만, 일본을 상대로 아쉬운 역전패를 안았다. 첫 복식에 나선 이들은 매치 포인트를 잡아 승리를 눈앞에 두고도 경기가 뒤집혔다. 흐름을 완전히 내줬고, 2단식의 이민선까지 지면서 동메달에 그친 원인이 됐다.
때문에 3복식에서 대기하던 문혜경-고은지는 경기하기도 전에 패배가 확정됐다. 문혜경은 "차라리 내가 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다리는 게 너무 긴장돼 더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그런데 언니가 마침내 금메달을 따내며 대표팀을 구했으니 동생들이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문혜경은 고은지보다 2살 어리지만 5년 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출전 등 대표팀 경력은 훨씬 많아 사실상 맏언니 역할을 해왔다.
문혜경은 "왜 너희들이 우느냐"며 눈물을 흘리는 후배들을 안아줬다. 경기 중 파이팅을 너무 외쳐 목이 다 쉰 소리였다.
코칭스태프의 조언에 대해 묻자 문혜경은 "앞선 경기들은 지나갔고, 단식 남았으니까 너 경기에만 집중하라고 하시더라"고 했다. 이어 유영동 여자 대표팀 감독(NH농협은행)에 대해서도 "급해지지 말고 너 공만 치면 아무도 못 이긴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셨다"고 전했다.
문혜경은 "나 혼자 따낸 금메달이 아니라 감독님과 선수들 트레이너까지 한 마음 한 뜻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고 미소를 지었다. 여자팀뿐만이 아니라 한국 소프트테니스 대표팀 전체를 지탱해준 베테랑의 품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