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황금 연휴를 불과 이틀 앞뒀던 지난달 26일, 택시 완전월급제(전액관리제) 시행을 요구하며 택시 회사에 맞서 싸우던 택시노동자 방영환씨가 몸에 불을 댕겼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그는 분신 열흘 만인 지난 6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최저임금 지키려 했던 택시노동자…결국 부당해고
2008년, 방씨는 택시를 몰기 시작했다. 10년 만인 지난 2017년 그는 해성운수로 일터를 옮겨 택시기사 일을 계속해왔다. 2019년에는 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해성운수분회)도 설립했다.그러던 2020년 2월, 해성운수 측은 방씨에게 기존 사납금제에 기반한, 최저임금에 관한 권리 주장을 포기하는 내용의 합의각서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라고 강요했다. 방씨가 이를 거부하자 해성운수 측은 방씨를 해고했다.
방씨는 6개월 뒤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시작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원고가 새로운 근로조건에 이의를 제기하며 피고가 요구하는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부하고 있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정당한 해고 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면서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더불어 해고된 기간 동안 미지급된 임금 1690만 원을 지급할 것을 주문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가 새로운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까지 승무정지를 명하고, 배차를 해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도 지적했다.
2심 재판부도 지난해 6월 사측의 항소를 기각했고,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결국 부당해고를 확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복직했지만 '문제의 사납금제'…완전월급제는 그림의 떡
그렇게 방씨는 지난해 11월, 2년여 만의 싸움 끝에 해성운수에 복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복직 이후에도 사측의 횡포는 끝나지 않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방씨에게 사납금제에 기반한 계약을 요구했고, 방씨가 이를 거부하자 최저임금도 채 되지 않는 100만 원 안팎의 임금만을 지급했다.
이에 지난 2월부터 방씨는 체불된 임금과 택시 완전월급제(전액관리제)를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꼬박 227일 간 1인 시위를 지속해오던 와중 결국 분신을 택하게 된 것이다.
방씨가 맞서 싸우던 '사납금제'는 택시노동자들을 오랫동안 괴롭혀 온 제도다. 개정 전 여객자동차법에 따라, 택시회사들은 택시노동자들에게 실제 벌어들인 수입과 무관하게 매달 일정 기준의 금액(사납금)을 반드시 납부하도록 했다.
사납금제가 문제가 되는 건 택시기사의 수입이 택시회사가 정한 사납금보다 낮은 경우다. 사납금보다 벌이가 적을 경우, 그 부족분은 택시기사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이로 인해 택시기사들의 소득은 낮을 뿐 아니라 일정하지도 않고,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장시간·위험 운전을 선택하도록 내몰렸다.
2020년 1월 1일 여객자동차법이 개정돼 '사납금제'가 전격 폐지됐다. 회사가 일정 금액을 설정해 납부하도록 하는 행위를 금지해 '수입 하락에 따른 위험의 전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목표다.
2021년 1월부터는 사납금제의 대안으로 완전월급제(전액관리제)가 도입됐다. 택시회사가 택시기사의 수입을 모두 가져가는 대신, 일반 회사처럼 택시기사에게 매달 일정한 월급을 주는 제도다. 택시기사가 매일 일정 수익을 회사에 내고 초과분만 가져가도록 하는 사납금제보다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제도다.
하지만 전액관리제 도입 이후에도 현장에서는 변형된 형태의 사납금제라고 할 수 있는 '기준운송수입금제'가 자리잡고 있어 택시노동자들은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기준운송수입금제도를 시행할 경우 사측은 택시기사들에게 '운송수입금 기준액'(기준금)을 정해둔다. 택시기사들이 적어도 이만큼은 벌어와야만 한다는 기준선이다.
택시기사들이 자신의 운송수입금을 사측에 입금했을 때, 기준금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차액만큼이 월급에서 공제된다. 무늬는 '완전월급제'이지만, 사실상 사납금 제도와 다를 바 없는 '변칙된 사납금제'다.
또다른 죽음 막기 위해선…택시사업장 전수조사·근로감독 필요
실제로 사납금제가 금지된 이후에도, 현장에서는 '변칙 사납금제'나 사납금제를 계속 실시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심지어는 택시기사들의 업무 특성을 악용해 노동시간조차도 제대로 산정되지 않은 탓에 터무니없이 임금이 낮게 책정된다.
현행 택시발전법은 '택시운수종사자의 소정근로시간이 1주간 40시간 이상이 되도록 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서울시의 대부분 법인택시들은 하루 3시간 30분 또는 승객이 승차한 시간인 실차시간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씨 또한 주 40시간 이상을 일했지만, 이러한 현실 탓에 100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승객이 승차할 때까지 이동하거나 대기하는 시간 등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는 실태를 파악하가 위한 조사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택시 노동자의 소정근로시간을 보장하고 있는지, 완전월급제를 시행하고 있는지 등의 여부에 대해 정부가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이삼형 정책위원장은 "택시발전법, 여객자동차법 등이 현장에서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고용노동부가 법대로 단속을 해야 한다"면서 "모든 택시사업장을 전수조사하고 특별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당 정상천 사무총장 또한 "없는 법을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니다. 이미 법이 있는데 왜 법을 지키지 않느냐는 게 고(故) 방영환씨의 요구였다"면서 "택시발전법 등 현행법에 규정된 소정의 근로시간을 보장하고 최저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