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세사기 사건으로는 처음으로 범죄조직죄가 적용돼 추가로 재판에 넘겨진 이른바 '건축왕'이 회사자금 횡령 혐의를 일부 인정했다.
"큰 틀에서는 인정하지만…추후 법리 제시하겠다"
사기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A(61)씨의 변호인은 5일 인천지법 형사14부(류경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재판에서 "큰 틀에서는 (횡령 혐의를) 인정하지만 추후 (인정하지 않는 부분과 관련한) 법리를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그러나 A씨에게 적용된 범죄집단조직 혐의와 관련한 인정 여부는 이날 밝히지 않았다.
이날 법정에는 A씨와 함께 범행했다가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바지임대인·공인중개사·중개보조원·자금관리책 등 공범들이 출석했다. 이들 중 17명에게는 A씨와 함께 전세사기 사건으로는 처음으로 범죄집단조직죄가 적용됐다.
재판부 "피고인 35명 너무 많아…재판 분리 4그룹으로 나눠 진행"
재판부는 이번 사건 피고인이 A씨와 공범 등 모두 35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해 이날 이들의 혐의 인정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재판을 분리해 속행하기로 했다.이날 오전 10시에 시작된 재판은 피고인들의 생년월일과 주거지 등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을 하는데 만 1시간이 넘게 걸리면서 지연됐다.
재판장은 "변호인을 통해 의견서를 낸 피고인들은 사기 부분을 제외하고 횡령·사문서위조·부동산실명법 위반은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추후 사기나 범죄조직죄 인정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사기죄로 기소된 10명, 나머지 범죄단체조직죄로 묶인 8명, 부동산실명법 위반죄로만 기소된 4명, 나머지 13명 등 네 그룹으로 나눠 심리를 진행할 방침이다.
A씨는 앞서 전세사기 범행으로 지난 3월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으며, 이날은 그의 2차 기소 사건과 관련한 첫 공판 기일이다. A씨 일당의 전체 전세사기 혐의 액수 453억원(563채) 가운데 305억원(372채)만 이날 재판에서 다뤄졌다.
피해자들 "전원 범죄집단조직죄 적용하고 범죄수익 추징·몰수해야"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건축왕 일당 전원에게 범죄집단조직죄를 적용하고 범죄수익을 추징·몰수해달라고 촉구했다.
A씨 등은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563채의 전세 보증금 453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앞서 지난 2~5월에는 A씨 일당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 4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다.
A씨는 2018년 1월 동해 망상지구 사업부지를 확보하려고 건설사의 신축 아파트 공사대금 40억원을 빼돌리는 등 회사 대금 총 117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는다. 그는 횡령한 공사대금을 메꾸기 위해 전세 보증금을 사용하면서 보유 주택의 경매와 전세보증금 미지급 사태를 초래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앞서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서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2700채를 보유해 건축왕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