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녹야'는 낯선 곳에서 쳇바퀴 같은 삶을 사는 진샤(판빙빙)가 자유로운 영혼의 '초록머리 여자'(이주영)를 만나 돌이킬 수 없는 밤으로 뛰어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한슈아이 감독은 영화의 시작에 관해 "영화를 만들 때 대부분 처음에 갑자기 머리에 스치는 화면이 지나가면서 감성적으로 영화를 구상하게 된다"며 "'녹야'는 두 명의 여자, 그중 한 명이 녹색머리 여자인 두 여자가 밤에 달리는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판)빙빙이나 나나 산둥 출신이라 한국이 익숙하고 친숙해서 한국에 가서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슈아이 감독은 판빙빙과 이주영이 이전 작품과 정반대의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줄 거라 기대하며 두 배우를 캐스팅했다. 감독은 "(이주영이 주연을 맡은 영화) '야구소녀'를 봤다. 이렇게 젊고 어린 배우가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안에 내적으로 굉장히 강한 힘을 보여준다"며 "다른 면을 꺼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귀여움과 함께 충동적으로 뭔가 나올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판빙빙은 이전에는 굉장히 외향적이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강인한 여성 역할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이번 연기가 빙빙에게 큰 도전이었다고 본다"며 "연기하기 어려웠기에 내면으로 말려들어 가는 역할이라 굉장히 많이 노력했다. 두 배우에게도 이번 연기가 큰 도전이자 결실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판빙빙은 이주영과 함께 연기하기 위해 직접 손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손편지를 써서라도 주영을 데리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마치 연애편지 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 오버해서 달콤하게 쓰면, 지나친 열정이 오히려 진정성을 깎아 먹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떤 내용을 쓰고 언어가 안 통해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일일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이러한 판빙빙의 마음을 받은 이주영은 "스크린 속 여자 두 명이 고난을 헤쳐 나가고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는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더 나아가서 그 영화에 내가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독님이 초반에 초록머리 여자는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동물적 감각이 있는 인물이기에 현장에서 풀어놓은 동물처럼 연기해 주면 좋겠다고 말한 것에서 힌트를 많이 얻었다"며 "초반부는 감독님의 말씀, 현장에서는 판빙빙 언니의 도움으로 잘 연기해 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한슈아이 감독은 "장면이 주는 의미를 전혀 모를 때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궁금하고 답답할 때 장면에 고도로 집중할 수 있고, 엄청난 호기심이 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마치 진샤가 느끼는 분노와 억압이 보일 거라 생각해서 수화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영화에서 보면 남성들이 전체 사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살면서 두 여성의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성을 침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실제로 드러나지도 않는 존재들, 그들이 주는 엄청난 고통과 공포가 수화를 통해 표현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 영화에서 두 여성은 며칠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끊임없이 도망간다. 누가 이들을 쫓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수화는 이러한 걸 그대로 상징한다"며 "또한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데 사람의 뒤에서 누군가를 통제하고 제어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특히 판빙빙의 마음을 끈 것 역시 '녹야'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였다. 그는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여성아'다. 여성들이 어려움에 직면할 때 직접 해결하고 극복하고 다른 여성을 돕는 게 스토리가 주는 메시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