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54km요? 찍어본 적 없습니다. 스피드건이 빨리 나오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스피드건이 정확하든 아니든 박세웅(롯데 자이언츠)은 그만큼 혼신의 투구를 펼쳤다.
박세웅은 5일 오후 중국 항저우 인근 사오싱의 야구-소프트볼 스포츠센터 제1구장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슈퍼 라운드 일본과 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동안 2피안타 2볼넷 9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쳐 한국의 2-0 승리를 견인했다.
부담스러운 등판이었다. 한국은 예선에서 대만에 0-4로 패하면서 남은 경기를 모두 이겨야만 4회 연속 아시안게임 우승이 가능한 처지에 몰렸다. 한일전 패배는 상상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박세웅은 대만전 팀내 두 번째 투수로 나섰다가 불안한 모습을 보였기에 이날 '맏형'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이 더욱 컸다.
그러나 경험이 선수를 키운다.
박세웅은 "WBC에서도 체코전 중요한 상황에 나갔고 이번에도 중요한 상황에서 나갔는데 나는 왜 중요한 상황에서만 나가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며 웃었다.
이어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라고 뽑아주신 것이고 그런 역할을 맡게 돼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모든 선발투수에게는 첫 이닝이 가장 어렵다. 박세웅도 그랬다. 1회초 볼넷과 안타를 내줘 무사 1,3루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실점없이 위기를 막아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큰 포효 소리와 함께 주먹을 불끈 쥐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박세웅은 "가장 큰 위기였다"며 "중국전을 보면서 일본 투수들의 능력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두 점 차 싸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최소한의 실점을 하자고 마음먹고 던졌는데 무실점을 하면서 큰 액션이 나왔다"고 말했다.
박세웅의 역할은 마운드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공수 교대 때 덕아웃으로 들어오는 야수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사기를 끌어올리는 역할도 했다.
타선은 6회말 마침내 응답했다. 노시환이 희생플라이를 날려 0의 균형을 깼다. 노시환은 8회말 쐐기 결승타도 때렸다. 박세웅은 덕아웃에서 환하게 웃었다.
박세웅은 "한 점이라도 앞서고 있어야 우리가 편한 마음으로 수비에 나갈 수 있고 더 편한 마음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제가 선수들에게 힘을 주고 파이팅을 준다고 해서 무조건 점수가 나는 건 아니겠지만 그런 조그마한 기들이 모여서 좋은 결과로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6일 중국과 슈퍼 라운드 2차전을 치른다. 결승전은 7일로 예정돼 있다. 이날 87개의 공을 던진 박세웅의 이번 대회 추가 등판은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롯데의 '안경 에이스'는 언제든지 다시 마운드에 설 각오다.
박세웅은 "아시안게임은 아마추어 선수들도 나오는 대회"라며 "저도 아마추어 생활을 겪어본 선수다. 고등학교 때 하루 던지고 다음 날 바로 던진 적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팀이 이길 수만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그 상황에 맞게 투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