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 관련 국방부 문건 유출…사고인가 고의인가?

내부 참고용이라지만 여론전 의심…내부문건이라면 보안사고
국방부, 박 대령이 무리한 법리적용과 허위주장, 말바꾸기 했다고 공박
군검사 의견 듣지 않았다?…사실무근, 근거 빈약한 주장도 상당수
'항명'의 핵심인 명시적 지시 여부에 대한 설명 없어…"팩트 왜곡, 논리 비약"

박정훈(대령) 전 해병대 수사단장. 연합뉴스

해병대원 순직과 이와 관련한 항명 사건을 둘러싼 국방부 내부 문건이 유출돼 경위와 배경 등을 놓고 논란이 재점화됐다.
 
군검찰의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반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는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시선이 다시 집중되고 있다.  

 

내부 참고용이라지만 여론전 의심…내부문건이라면 보안사고


4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국방부 정책실은 최근 '해병대 순직사고 조사 관련 논란에 대한 진실'이란 제목의 12쪽짜리 문서를 생산했다.
 
국방부는 내부 참고자료용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추정되는 유출 경위나 범위, 기술 방식 등으로 볼 때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항명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대령) 전 해병대 수사단장 측에 따르면 해당 문건은 예비역 군인들에까지 상당한 정도로 유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의 기술 방식에서도 상세한 설명과 함께 경어체가 사용된 점 등으로 미뤄 내부 관계자들보다는 외부 여론을 겨냥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방부 내부 문건 '해병대 순직사고 조사 관련 논란에 대한 진실' 유출. 연합뉴스

내부 참고용이라면 적어도 1,2개는 있을 법한 논리적 허점이나 불리한 사실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만약 국방부 내부 문건이 어떤 식으로든 유출된 게 사실이라면 그 자체로 문제가 큰 보안 사고이며, 고의 유출이라고 한다면 또 다른 심각한 사안이 된다.
 
해당 문건이 야당의 논리와 주장을 공박하는 것에 상당 부분 할애됐다는 점에서 정부기관의 중립성 논란도 예상된다.
 

국방부, 박 대령이 무리한 법리적용과 허위주장, 말바꾸기 했다고 공박


연합뉴스

이와 별도로 문건의 내용 면에서도 객관적 사실 여부나 주장의 타당성 등에서 박 대령 및 야당 측과 날선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방부는 11개 소제목을 단 쟁점 별로 국방부 조치의 정당성 및 적법성과 박 대령의 위법성 및 주장의 허구성을 대비시키려 했다.
 
국방부의 논지는 박 대령의 무리한 법리적용, 일방적 허위 주장, 말 바꾸기 정도로 요약된다.
 
예컨대 박 대령이 해병대원 순직사고를 조사하면서 '현장 안전통제 소홀'과 같은 단순 과오를 업무상 과실로 판단하거나, 외압 의혹과 관련해 '혼자만의 느낌과 추정'에 근거해 허위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이종섭 장관의 경찰 이첩 보류 지시에 대해서는 법령상 적법한 권한 행사라고 했고, 경찰에 이첩된 조사기록 회수도 '상호협의' 하에 적법하게 증거자료로서 확보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군검사 의견 듣지 않았다?…사실무근, 근거 빈약한 주장도 상당수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혐의로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황진환 기자

하지만 국방부 문건은 실제 사실과 다르거나 근거가 빈약한 주장이 상당수 포함돼있다.
 
대표적인 게 박 대령이 순직사건 조사 결과를 장관에게 보고하기 전까지 군검사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는 지난달 3일 해군의 해명과 많이 다르다. 해군은 앞서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해병대 수사단 관계자-해군 검찰단 검사 통화 녹취에 대해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개인적 차원의 일로 의미를 낮췄다.
 
해군은 공식적 법적 검토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군색한 변명이란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설령 공식적 통화가 아니었다고 해도 국방부가 "군검사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종섭 장관이 해병대원 순직사고에 연루된 초급간부들이 힘들어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추가 검토 필요성을 느껴 경찰 이첩을 보류시켰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방부는 이 장관이 박 대령의 조사보고서를 결재한 다음날(7월31일) 오후 초급간부들의 상황을 보고 받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대령은 이날 오후 12시 2분쯤 언론 브리핑이 취소됐으니 부대로 복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언론 브리핑은 경찰 이첩을 전제한 것이었기에 이첩 보류 지시는 오전 중에 이뤄졌어야 하는 게 맞다.
 
당시 국방부 기자단이 브리핑 취소를 통보 받은 시각도 이날 오후 12시 54분이었다. 절차에 따른 시간 지연을 감안할 때 장관의 '오후 결심'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국방부 주장에 따르면, 해병대 초급간부들이 국방부 본부에서 은밀히 이뤄진 보고 내용을 바로 다음날 파악했다는 것인데 이 역시 상식과는 거리가 있다.
 

 

'항명'의 핵심인 명시적 지시 여부에 대한 설명 없어…"팩트 왜곡, 논리 비약"


국방부가 경북경찰청에 이첩된 해병대 조사기록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형사사법포털(KICS)에 정식 접수되기 전이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 부분도 사실관계를 호도한 측면이 크다.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KICS는 내부적인 전산 입력 절차일 뿐이며 군‧경 간 공문의 실제 송‧수신 여부와는 무관하다.
 
이밖에도 논란의 쟁점이 여럿 남아있지만, 이번 문건의 가장 큰 맹점은 무엇보다 경찰 이첩보류에 대한 명시적 지시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7월 30일 장관의 조사보고서 결재의 성격에 대해 '결단적‧처분적 의사'와 '열람‧확인' 의사를 구분하는 등 다양한 법리와 판례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정작, 이첩보류를 왜 문서화된 형태로 명령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이는 '항명' 혐의의 핵심을 이루는 결정적 요소로서, 해병 사령관의 말바꾸기식 통화녹음이 공개되며 법적 다툼의 여지가 더욱 커졌다.
 
만약 국방부가 이첩보류를 명시적으로 지시한 확실한 근거 하나만 제시해도 박 대령의 항명 혐의는 빠져나갈 수 없지만, 오히려 이에 반하는 정황과 방증만 늘어나고 있다.

박 대령 측 김정민 변호사는 "팩트(사실관계)도 굉장히 왜곡돼있고 논리의 비약도 매우 심하다"면서 "(이번 문건은) 공수처 수사를 앞둔 여론 조성용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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