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설가 천희란, 1930년대 신여성 이선희와 조우 '백룸'

작가정신 제공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문학의 근원과 현재, 미래를 바라보는 출판사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 세 번째 프로젝트로 소설집 '백룸'이 출간됐다.

이선희(李善熙)는 191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당시 도시적 감수성의 배경이 된 원산에서 자랐다. 원산 루씨여고보 졸업 후 이화여전 성악과에 진학했다가 문과로 전과했다. 1933년 개벽사 기자로 들어가 '신여성'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수필 등을 쓰다 1934년 단편 '가등(街燈)'을 발표하면서 소설가의 길을 걷는다.

그의 작품 속 여성들은 대학생, 백화점 점원, 카페 여급, 몸을 파는 여성 등 식민지 시대를 관통하는 도시화와 함께 등장한 직업여성들로 나타난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집과 거리에서의 여성이 처한 변화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특히 여성의 자아 확립과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의식이 나타난다. 궁지에 내몰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편의 목숨값을 당당히 청구하거나(계산서), 연인 사이였던 남자에게 자신의 아들을 입적할 것을 명령한다(여인 명령).

이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는 어린 시절과 계모가 된 작가의 경험, 당시 가부장제 속에서 남편과의 결혼생활, 사회 풍속의 경험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작품들 속에서 강한 피해의식이나 보상심리에 그치지 않고 과감히 현실로부터의 탈피를 추구해 주목을 받았다.

현 시대의 작가 천희란은 "이선희는 '지속된 한계'를 벗어던지기 위해 새로운 지옥을 찾아 나선 여성"이라고 평가했다.

사회 주변부로부터 밀려난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분열과 혼돈 속에서도 잃지 않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이를 규정하는 틀이 무엇인지 탐색해 온 천희란과 자신을 둘러싼 억압과 착취의 정체를 캐묻고 욕망에 대한 자각을 놓지 않았던 이선희의 모습은 묘하게 닮아 있다.

천희란은 미궁 탈출 게임을 통해 여성, 청년, 레즈비언이라는 이 시대를 관통하는 주변부 이야기를 다룬다.

이선희·천희란 지음 | 작가정신 | 4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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