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탁구 간판 듀오로 활약했던 장우진(28)-임종훈(26·한국거래소)이 6년의 동행을 일단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비록 신의 영역을 넘나드는 최강 중국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한국 탁구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둘은 1일 중국 항저우의 궁수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복식 결승에서 판전둥-왕추친(중국)에 금메달을 내줬다. 게임 스코어 0 대 4(6-11 8-11 7-11 3-11) 패배를 안았다.
금메달은 무산됐지만 장우진-임종훈은 21년 만에 아시안게임 남자 복식에서 한국 탁구에 은메달을 안겼다. 한국 탁구 남자 복식은 2002년 부산 대회 당시 이철승(삼성생명 감독)-유승민(대한탁구협회장)과 김택수(협회 부회장)-오상은(미래에셋증권 감독)이 결승에서 맞붙어 금, 은메달을 따낸 게 마지막이었다.
남자 복식 세계 랭킹 1위를 달리는 장우진-임종훈이었지만 단식 세계 1, 2위를 다투는 판전둥, 왕추친은 차원이 달랐다. 단식 13위, 7위인 장우진과 임종훈은 이날 결승에서 자신들의 기량을 100% 이상 발휘했지만 판전둥, 왕추친은 안방에서 홈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까지 업어 신들린 경기력을 펼쳤다.
게임 스코어 0 대 1로 밀린 2게임이 승부처였다. 장우진, 임종훈은 7 대 8에서 힘과 힘이 격돌한 드라이브 맞대결에서 잇따라 혼신의 힘을 다해 공격을 펼쳤지만 세계 최강 듀오의 경이적인 구질에 밀렸다. 판전둥, 왕추친의 막강 드라이브에 장우진, 임종훈은 사력을 다해 수비했지만 라켓에 공이 튀어 나가기 일쑤였고, 헛스윙도 적잖았다.
경기 후 주세혁 남자 대표팀 감독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장우진, 임종훈이 제일 잘했는데 상대가 150%를 해버리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어 "상대 공격을 2, 3번 받아내면 실수를 해줘야 하는데 전혀 에러가 없으니 이길 수가 없었다"고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장우진은 "여태 메이저 대회를 치르면서 이번이 최고로 잘 맞았는데 아쉽기도 하다"고 입맛을 다셨고, 임종훈은 "120%를 쳤는데 상대가 150%를 치더라"면서 "실수해서 졌다면 눈물이 날 텐데 상대가 말도 안 되게 잘 치니까 시원섭섭한 기분마저 든다"고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5년이 넘게 남자 복식 간판으로 활약했던 장-임 조는 일단 해체된다. 내년 2월 부산세계선수권대회는 단체전으로 각 국가가 단식으로 경기를 펼친다. 장우진이 "소속팀이 다르고 이후 대회에서 복식을 같이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메이저 대회는 당분간 마지막일 것 같다"면서 "잘 맞고 있었는데 마지막이라서 아쉽다"고 말한 이유다. 임종훈은 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6년여 동안 둘이 이룬 업적은 한국 탁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번 대회 21년 만의 은메달을 비롯해 한국 탁구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복식 2회 연속 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장우진, 임종훈은 2017년 결성돼 이듬해 코리아 오픈과 세계 탁구 왕중왕전 격인 그랜드 파이널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와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노 메달에 그쳤던 한국 탁구는 이상수(삼성생명)-정영식(미래에셋증권 코치)을 이을 새 남자 복식 간판으로 장우진, 임종훈에 기대를 걸었다.
2021년 휴스턴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거둔 장우진, 임종훈은 월드테이블테니스(WTT) 대회에서도 잇따라 우승하며 중국을 위협할 대항마로 떠올랐다. 올해 더반세계선수권에서도 둘은 결승에 진출했다.
한국 탁구에서 2회 연속 세계선수권 남자 복식 결승행은 장우진, 임종훈이 유일하다. 임종훈도 "비록 우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나중에 선수 생활을 돌이켜 보면 뿌듯한 기분이 들 것 같다"고 자부심을 은근히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둘은 6년여 동행을 마감하게 된 상황. 장우진, 임종훈은 서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미 "우진이 형이 탁구를 잘 쳐서 우리 대표팀에서 제일 잘 생긴 것 같다"며 존경심(?)을 드러냈던 임종훈은 "실력이 부족한데도 형이 많이 이끌어줬고, 탁구를 배우며 실력도 많이 올랐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장우진도 "나 역시 종훈이한테 많이 배웠다"면서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선수는 물론 한 사람으로서도 성숙하게 됐다"고 화답했다. 이어 "함께 달려온 길에 대해 수고했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둘의 인연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다시 호흡을 맞출 수도 있다. 주 감독은 "이번 대회 뒤 다양한 복식 조합을 시험해볼 것"이라면서도 "장우진, 임종훈이 다시 결성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때는 만리장성을 넘을 수 있을까. 장우진은 "짧은 구질로 안정적으로 가면 절대 중국을 이길 수 없다"면서 "과감하게 먼저 길게 공격해 상대 실수를 유도한 뒤 반격해야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종훈도 "오늘 '미친 척하고' 서브를 대각이 아닌 정면으로 넣어 중국 선수들이 '얘네들 왜 이러지?' 당황하게 만들어볼까도 고민했다"면서 "변칙적으로 가든지, 유럽 선수들처럼 힘으로 승부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6년 동행을 아름답게 마무리한 장우진과 임종훈. 과연 한국 남자 복식의 새 역사를 쓴 최강 조합이 다시 이뤄질지, 그렇다면 이번에는 또 어떤 역사를 만들어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