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이라는 두 거장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한 김성식 감독의 연출 데뷔작은 과연 '봉테일'을 더 닮을지 아니면 '칸느 박'을 더 닮을지 궁금한 팬들도 있었을 것이다. 김성식 감독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엄마' 봉준호, '아빠' 박찬욱 모두 닮지 않았다. 그는 세상의 모든 자식이 그러하듯 자신만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코믹 액션 오컬트라는 오락성 가득한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이다.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 조감독 출신인 김성식 감독은 '천박사'에서 애니메이터 출신으로서의 만화적이고 독특한 상상력을 더해 장르성을 확실하게 가져갔다. 이런 '김성식 스타일'의 '천박사'를 두고 스승 박찬욱 감독은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인간이 대적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우주적인 것, 존재 혹은 불가항력적인 것, 존재에 대한 공포)와 '애니메이션의 세계'가 담겼다고 표현했다.
과연 김성식 감독은 어떻게 '천박사'를 만들게 됐는지 그리고 스승 박찬욱 감독이 본 제자의 첫 연출작 '천박사'는 어땠는지, 제작보고회와 기자간담회, 스페셜 GV(관객과의 대화) 등을 바탕으로 정리해 봤다.
반가운 오락 영화의 탄생
김성식 감독은 '헤어질 결심'이 끝난 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방황했다. 그때 제작사 외유내강 조성민 프로듀서가 '빙의'라는 시나리오를 추천했다. 김 감독은 "영화의 원작인 웹툰 '빙의'를 알고 있었고, 자신이 생각했던 오컬트와 다른 지점이 보여서 좋았다"고 했다.
박찬욱 감독 역시 "우리나라 전통 무속신앙이 묘사된 작품들은 언제나 흥미롭다. 나도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며 "특히 굿의 과정이 너무 드라마틱하고 여러 가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어서 연구할 거리가 많다. 원혼을 달래준다거나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제의(祭儀·제사 의식) 같다는 점 역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해 준다. 이런 걸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가 많이 나와서 언제나 반갑다"고 이야기했다.
김 감독은 "내가 봉준호 감독님, 특히 박찬욱 감독님을 생각하면서 색다르게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이 커진 거 같다"며 웃었다. 원작 웹툰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영화적 해석과 상상력을 더하고, 기존의 퇴마 소재 영화에서 봐 왔던 설정과 캐릭터를 비튼 시도도 이러한 일환에서다.
김 감독의 고민과 노력의 결과물을 본 박 감독은 "영화 끝날 때 가니까 거의 무슨 코즈믹 호러 같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가는데, 상상력에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입을 딱 벌리고 봤다"고 말했다. '천박사'가 지향하는 바가 '오락 영화'라는 점에서 박 감독의 후기만큼 극찬은 없을 것이다.
비현실을 현실로 만드는 배우 강동원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천박사'의 주인공은 천 박사다. 능청스러움과 진지함, 코믹과 액션, 현실과 상상력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어야 하는 캐릭터다. 김성식 감독의 원픽은 바로 강동원이었다. 김 감독은 "비현실적인 상황을 현실적으로 만드는 배우가 누가 있을까. 강동원 배우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각색을 시작할 때부터 강동원 배우 생각을 많이 했다. 대신 두려움은 있었다. (시나리오를) 줬는데 싫어하면 어떡하지 싶었다"며 "아, 그러면 다시 조감독을 해야겠구나. 어느 영화 조감독을 해야 하지. 그런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바로 읽고 출연을 결정해 주셔서 죽다 살았다"고 말했다.
박 감독 역시 강동원 캐스팅을 두고 "액션 장면이 참 많다. 동원씨는 워낙 액션을 잘하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제일 잘하는 배우 중 한 명"이라며 "경험이 많이 쌓이면서 더 쉽게 해내는 거 같다. 똑같은 걸 해도 더 멋있고 폼나게 하는 노하우가 많이 쌓인 듯하다"고 칭찬했다.
또한 "강동원은 유머러스한 장면에서 코믹한 대사를 할 때 예전보다 훨씬 더 능청스러워진 거 같다"며 "그래서 이동휘와 주고받는 합이 참 재밌고,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주거니 받거니 탁구 치듯이 봤다"고 했다.
'리스펙!'한 특별출연 배우들
영화에서 돋보이는 건 주·조연 배우만이 아니다.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의 인연은 '천박사'로도 이어져 '리스펙!'한 특별출연을 끌어냈다. 바로 '기생충' 지하실 부부로 칸을 사로잡은 박명훈, 이정은과 '헤어질 결심' 속 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홍산오를 연기했던 박정민이다. 박명훈과 이정은은 '천박사'에서는 평창동 박사장 부부로, 박정민은 선녀무당으로 출연해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김 감독은 "시나리오에 부잣집 설정이 있었다. 누굴 캐스팅할지 하다가 지하 세계에 있던 분들이 생각났다. '기생충' 조감독을 하면서 지하 세계에 계셨던 분들이 행복해지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했었는데, 부잣집 역할로 실현돼서 기분이 좋다"며 "봉 감독님에게 허락받기 위해 말씀드렸는데 기뻐하시더라"고 전했다.
박 감독은 박정민이 등장한 장면을 두고 "아주 절묘하게 배치된 장면이다. 영화 한복판에 들어가서 분위기도 바꾸고, 여러 정보도 전달해 준다"며 "설명하는 게 각본을 쓸 때 참 어렵다. 관객에게 떠먹여 주듯 너무 설명적인 건 재미없다. 흥미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가, 그게 각본을 쓸 때 중요한 기술인데, 아주 잘 구사된 장면"이라고 했다.
박 감독 역시 "상상도 못 했고, 정보도 없이 봐서 처음엔 잘 몰라봤다"며 "저런 역할은 한 신 나오고 끝이라 단역 배우가 할 거 같은데, 저렇게 아름다운 단역 배우가 어디에 있었지? 잠깐 깜짝 놀랐다가, 나중엔 빙의 같은 거 하지 말고 본인이 계속 연기해서 하지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궁금해 '천박사'
'천박사' 속 가장 많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으며 관객들의 궁금증을 일으키는 인물은 빌런인 범천이다. 범천은 인간의 몸을 옮겨 다니며 영력을 사냥하는 악귀로, 영원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되기 위한 강력한 욕망에 휩싸여 있다. 그는 과거의 일로 인해 발이 사슬에 묶여 벗어날 수 없는 처지다.
김 감독은 범천 캐릭터에 관해 "목적은 단순하다. 사슬 결계로 인해 갇힌 세상에서 나와 대한민국 사람들 다 돌아가며 빙의함으로써 한국과 세계를 집어삼키고 싶은 욕망을 지닌 인물"이라며 "허준호 선배님이 연기하기 매우 어려우셨을 텐데, 이야기하면서 잘 풀어갔다"고 전했다.
이에 김 감독은 범천에 관한 비하인드를 들려줬다. 그에 따르면 범천의 시작은 어릴 적 신병(神病·무당이나 박수가 되기 전에 신에 접하여 앓는 병)을 앓다가 만난 스승을 통해 빙의 기술을 습득, 이후 무당을 사냥하고 다니며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는 캐릭터라는 설정에서 비롯했다. 그러던 중 당주집(마을을 수호하는 신을 모시는 성황당을 관리하는 당주(堂主)의 집안) 무당(당주무당)을 해치려다 설경에 갇히게 된다.
신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범천에게 인간의 영력은 탐욕의 대상이며, 그 영력을 빼앗아 더 큰 힘을 얻고자 한다. 영화에서는 사람의 손가락을 잘라 죽통에 넣고, 이를 이용해 빙의한다. 김 감독은 "손가락을 잘라 넣었다는 건 조선시대 성호사설(조선 후기의 학자 이익이 쓴 책)에 나온 이야기를 참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결말에 속편을 예고하는 게 아주 강하다. 그래서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입소문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거 같다"며 "저 사람들이 다시 모여서 어떤 마귀를 쫓아내는 흥미로운 활극을 펼칠지도 보고 싶어서 더 보게 만드는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후속편을 기대하는 반응에 김 감독은 "강동원이라는 위대한 피사체를 충분히 담지 못해 아쉽다. 나중에 더 촬영하고 싶다"고 말한 뒤 "관객들이 이번 편을 선택해 주셔야 후속을 만들 수 있다. 혼자서 설경의 내부를 설명하는 내용이라든가, 후속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만약 선택해 주신다면 바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