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개척자 강제규 "韓영화 미래, 관객 마음 훔치기"


영화 '1947 보스톤' 강제규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란 무엇인지 그 시작과 한 단계 진일보한 작품을 만들며 강제규 감독은 '대한민국 대표 감독'이란 수식어를 달았다.
 
강 감독은 데뷔작인 한국형 SF 판타지 '은행나무 침대'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선보이더니 분단의 역사가 지닌 아픔에 사랑을 녹여낸 '쉬리'를 통해 '첩보 액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2004년에는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한국 전쟁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역대 두 번째 천만 관객을 동원한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그렇게 강 감독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탄생시키고, 한국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런 강 감독도 현재 한국 영화의 위기를 '험한 길'이라고 표현하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성찰의 시간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의 방향을 엿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의 길 역시 찾았다. 그래서 물었다.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 말이다.

강제규 감독이 연출한 영화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포스터. 각 배급사 제공
 
▷ 블라인드 시사를 4차례나 했다고 들었다. 이를 통해 느낀 요즘 관객이 원하는 영화란 무엇이었나?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건 큰 소득인 거 같다. 역시 인간을 관통하는 감동, 그런 부분의 교집합은 여전히 확실하고도 굳건하게 있다는 긍정적인 느낌도 받았다. 반대로 과거 같으면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대수로이 넘길 수 있는 지점도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과거에도 신파라든지, 뭔가를 푸시하고 강요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 관객들은 그런 부분에 대한 거부감이 굉장히 강하다는 걸 느꼈다.
 
▷ 영화를 마무리하고 개봉을 기다리는 와중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생각, 감독의 역할에 대한 생각도 해봤을 것 같다.
 
우리 영화인에게는 힘겨운 시간이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성찰해 보는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많은 것이 변했고, 변해가고 있다.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관객들 성향과 관람 패턴도 바뀌었다. 그러면서 영화 개봉 결과들이 영화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많이 당혹스러운 면들도 있었다. 나도 그런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분명히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방향성을 생각하게 해줬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말한 대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이 많이 생겨나고 콘텐츠도 다량으로 쏟아지고 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소위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를 구분한다. '극장용 영화란'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결국 어떤 영화가 좀 더 엄격하고 까다로워진 극장의 문턱을 뛰어넘는 작품일지에 대한 고민이 있겠지만, 영화는 결국 영화관에서 보았을 때 가장 큰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작품이다. 집에서 볼 수도 있지만, 집에서 볼 때는 50%만 보게 되는 거고 극장에서 보면 100%를 보게 되는 영화들이 결과적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 스스로가 '내가 이 영화를 왜 만들지?' 자문했을 때, 관객의 잣대가 엄격해진 만큼 우리 역시 그 기준을 정말 엄격하게 갖다 대야 한다고 본다. 그러한 엄격함과 진중함이 관객을 감동시키고 극장에서 보길 원하는 재미를 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어려운 부분이긴 하지만, 해결해 나가야만 한다. 얼마 전에 후배들하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팝콘 들고 와서 못 먹고 나가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앞으로 가야 할 영화의 방향성이 그런 거다. 팝콘을 못 먹고 나가게 만드는, 2시간 내내 관객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영화, 집중할 수 있는 영화. 그런 영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영화 '1947 보스톤' 강제규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한국 영화계의 위기라고 불리는 시대를 맞이하고 그 한가운데를 달려 나가야 하는 감독으로서 가슴에 어떤 신념 혹은 철학을 새기고 나아가고 싶나?
 
난 은유와 절제, 함축 등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2시간의 미학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만만치 않은 길이겠지만, 조금 더 경각심을 갖고 재무장해서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관객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 그게 앞으로 한 편이 될지 두 편, 세 편, 열 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뚜벅뚜벅 그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
 
▷ 앞으로 마라톤으로 치면 한번 달려보고 싶은 코스가 있나?
 
난 한국 영화가 상당히 어려운 시기에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소명감 같은 게 많이 있었다. "당신한테 영화는 뭔데"라고 하면 난 도전이었던 거 같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지점을 돌파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것 같다. 그래서 성과도 만들어 냈고, 그런 부분에서는 자긍심과 보람을 느낀다.
 
이제는 그런 화두가 아니라 정말 내가 행복해지고 관객도 함께 행복해 할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지금 이 길을 걸어오면서 쌓아 온 나의 경험, 그리고 영화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을 조금 더 성숙한 시선으로 녹여낼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끝>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