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1947 보스톤' 강제규 "영화보다 더한 역사, 되레 덜어냈다"

영화 '1947 보스톤' 강제규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장수상회' 이후 무려 8년 만에 강제규 감독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스포츠 장르로 돌아왔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때마다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던 그이기에 '1947 보스톤' 역시 '강제규'의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았다.
 
'1947 보스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 29분 19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마라톤 금메달을 거머쥔 국민 영웅 손기정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베를린에서 손기정과 함께 달려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기뻐할 수 없었던 남승룡, 그리고 그들을 대신해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단 최초의 국가대표가 되어 2시간 25분 39초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1위로 결승선을 끊은 서윤복. 이 세 마라토너의 이야기다.
 
강 감독은 알면 알수록 지나칠 정도로 영화적인 1947년의 역사와 여정을 어떻게 하면 그 이야기의 원형이 가진 힘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간 제대로 비친 적 없는, 1940년대가 가진 시대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담아낼지도 큰 도전이자 과제였다.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일 대 일로 만난 강제규 감독에게서 그가 안은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들어봤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 '1947 보스톤'이라는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평소에 스포츠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처음엔 손기정 선생님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손기정 선생님뿐 아니라 남승룡, 서윤복 선생님의 이야기가 1947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같이 담겨 있었다. 되게 흥미로웠다. 한 인물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한데, 역사적 사실 속에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렸던 세 명의 전설 같은 마라토너 이야기를 한 영화 속에 담을 수 있다는 게 흥미롭고 신선했다.
 
▷ '1947 보스톤'이라는 코스 안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또 승부수를 던질지 연출적으로 어떻게 전략을 짰나?
 
서윤복의 마지막 마라톤 경기를 어떻게 관객에게 보여줘야 할 것인가가 제일 큰 숙제였다. 어떻게 보면 영화 전체의 완성도나 관객 입장에서 볼 때 재미의 절정이 될 수 있는 지점이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부분도 중요한 부분들이지만 시나리오와 콘티에서의 설계 등에서 가장 고민하고 역점을 뒀던 부분이다. 출발선과 결승선 사이에 어떤 장치들을 넣고, 어떤 식의 위기와 갈등 구조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집중했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보스톤으로 향하는 여정 그리고 보스톤 대회까지 실화를 영화 안에 담아내며 가장 염두에 뒀던 부분은 무엇인가?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느꼈던 부분은 지나칠 정도로 영화적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이 원형을 잘 가져가자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했다. 많이 더하거나 조미료를 뿌리는 등 뭔가 하지 않아도 이야기의 원형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이 굉장하기 때문에 오히려 좀 절제했다. 감정이나 서사 구조에서도 너무 과잉되게 설정하거나 덧붙이지 말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
 
▷ 너무 영화 같아서, 또는 실제지만 너무 과잉처럼 보일까 봐 덜어낸 부분도 있을까?
 
보스톤 대회 중간에 손기정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서윤복 선수에게 "나라를 위해서 뛰어라!"고 했다. 그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닭살 돋을 수 있어서 빠졌는데, 진짜로 그런 조언을 했고 서윤복은 거기에 힘과 용기를 얻어 이를 악물고 달렸다.
 
▷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울컥 올라오는 감정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소재와 이야기이다. 이러한 소재와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보다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가장 고민하고 신경 썼던 지점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우리 역사를 들여다보면 상대적으로 아픔의 역사가 많다. 성공 혹은 성취의 역사는 적은 편이다. 영화 속 이야기는 성공한 역사의 한 부분이기에, 어떻게 보면 젊은 관객들이 조금 과장되게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봤다. 그게 사실이었음에도 화면으로 옮길 때 얼마나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고민해야 하는가, 이러한 지점들을 시나리오부터 연구했다.
 
배우들이 연기할 때도 젊은 관객이 그 시대감으로 쉽게 몰입되기 위해서 진입장벽을 최소화하는 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힘을 많이 빼고, 오히려 시대감을 좀 양보하더라도 조금 더 젊은 관객들이 조금 더 편하게 보고 감정의 동화가 쉽게 일어날 수 있도록 장치를 구축하는 게 좀 더 중요했다.

영화 '1947 보스톤' 강제규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1947년이란 시대가 가진 색의 재현

 
▷ 1940년대는 가깝고도 먼 시대이자, 광복을 누리는 국민의 마음과 청산하지 못한 시대가 혼재된 독특한 시간이다. 이러한 1940년대를 철저하게 고증하되 그 시대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를 담아내기 위해 미술감독과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한 지점은 무엇인가?
 
우리가 그 시절을 재현한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리얼리티가 붕괴된 지점으로 인해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래서 같이 이런 부분을 정말 가장 사실에 가깝게끔 재현하고 묘사하자는 데 동의했다. 같이 작업했던 박일현 미술감독이 여러 부분에서 욕심을 내보자고 했다.
 
특히 1940년대는 물론 50~60년대를 재현하고 표현할 때 취약점이 많고, 적합한 오픈세트도 없다. 그렇기에 미술적으로 잘 고증해서 관객들이 그 시대에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진짜 입간판 하나까지 시대 정서를 잘 반영할 수 있도록 많이 고민했다. 촬영하면서는 힘들었지만, 나름 그런 부분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그렇다면 감독과 최찬민 촬영감독이 정의한 1940년대는 어떤 톤을 가진 시대였으며, 이를 담아내기 위해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참 재밌는 게, 예를 들어서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특별히 어떤 색감이나 색감의 변화를 주지 않는데 꼭 50, 60년대 배경의 영화들은 톤 자체를 의도적으로 퇴색시켜서 시대감을 표현하려는 경향들이 있더라. 이건 내가 볼 때 리얼이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미술이 해야 하는 일이다. 미술에서 디테일을 만들어 그걸 고스란히 담는 게 중요한데, 인위적으로 필터를 쓰는 등 작위적으로 해서 시대감을 표현하려는 경향이 너무 싫었다.
 
인위적으로 변색하거나 탈색하는 건 리얼리티가 아니다. 우리는 그런 거에 익숙해 있는데, 특히 역사물보다는 시대물 쪽으로 오면서 이상하게 그런 것들이 패턴화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촬영할 때는 있는 그대로 담고 대신 소품과 의상, 헤어, 메이크업 등의 디테일에서 시대감을 잘 가져가기로 했다. 촬영에서는 더하거나 덜하지 않았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1947 보스톤' 제작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 내지 도전적인 작업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난 시나리오를 보고 가슴이 뛰는데, 이걸 지금 2030 젊은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해 주지? 마라톤 영화라고 할 때 과연 얼마만큼 흥미로울까? 어떻게 하면 '극장에 가서 봐야겠다' '재밌겠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지? 그리고 1947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제작비가 들어가는데, 이게 과연 어느 정도 관객의 호응을 받아야 영화의 존재 이유가 있는지 생각했을 때 오는 그런 부담감. 이런 작품 외적인 허들들이 내적 허들보다 컸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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