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있는' 제도를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직원들의 실질적인 니즈(needs)를 고려한 적극 행정의 결과다.
육아휴직 자동化로 '신청' 부담↓…"눈치보지 않는" 환경 조성
모션의 구성원들은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각각 3개월 이상)을 '최소 6개월' 이상 사용해야 한다. 법정 기준인 1년보다 더 길게 쓰는 것도 가능하다. 성별 구분 없이 남녀 직원 모두가 동등하게 적용받는다는 게 핵심이다.
업종 특성상 성비가 8(男) 대 2(女)인 '남초' 직장인 데다 고용직원 30여 명 정도의 규모를 고려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한 사람의 빈자리가 클 뿐 아니라 그 공백을 채우는 일도 자칫 불필요한 '손실'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모션은 지난 2021년 자녀를 얻은 남성 직원 A씨의 사례를 계기로 육아휴직을 아예 의무화시켰다.
앞서 아내의 육아휴직이 종료되자 '바통 터치'를 해야 했던 A씨는 막상 입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여성 직원 등 'MZ 세대' 구성원들이 많다 보니"(경영지원팀 김진환 팀장) 지난해 2분기까지는 출산·육아휴직을 쓴 전례가 없었던 것이다. 고충처리위원회 처리과정에서 A씨의 사정을 알게 된 사측은 곧바로 육아휴직 사용을 권유했다.
임신 중인 여성 직원이나 만 8세 이하(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둔 근로자가 최대 1년간 사용토록 한 육아휴직은 엄연한 근로자의 권리지만 당사자의 '신청'을 전제로 한다. 모션은 이와 반대로 대상자에 해당하는 직원이 육아휴직 '미사용'을 원할 때 별도 신청 후 업무에 복귀토록 하고 있다. 나머지는 출산 시 90일 휴가와 육아휴직 3개월이 자동 적용된다.
각각 7살·5살 난 두 딸을 키우고 있는 김진환 팀장은 "직원이 회사에 신청을 하면 회사가 '허가'를 해야 하는 구조인데, 아무리 회사가 자유롭고 유연해도, 대표님이 가족친화 정책을 편다 하더라도, 동료와의 업무적 관계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휴직기간이) 6개월로 잡히면 대체근로자를 채용하기가 더 수월해진다"고 부연했다. 사실 모빌리티사업팀으로 전문적 기술이 요구되는 A씨의 업무는 육아휴직 기간(3개월) 등을 고려할 때 구인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눈칫밥'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회사가 A씨의 일을 분담한 같은 부서 동료 2명에게 업무 배분률에 맞춰 인센티브를 지급했기 때문이다.
팀에 돌아온 A씨는 "사실 휴직 전에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일하고 온 사람에게 '아이 보느라 힘들었다'고 불평하거나, 야근하는 날 제게 핀잔을 줄 때면 원망스럽기도 했다"며 "직접 육아를 해보니 정말 보통 일이 아니더라. 아내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지 너무 미안했고,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깨달은 시간"이라고 전했다.
부서원들과 인사담당자는 휴직기간 틈틈이 휴직자에게 연락을 취해 안부를 물었다. 회사 안팎의 소식을 전해주고, 행사에도 초대했다. 육아휴직을 다녀왔단 사실만으로 내심 원성을 듣거나 '아싸'(아웃사이더)가 되지 않을까 했던 염려는 기우가 됐다. 돌아온 휴직자와 팀원들은 서로 '고맙다'며 밥을 사는 훈훈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출산휴가, '워케이션' 더해 2배…"직원가족 만족하는 복지 지향"
모션에서는 근로자가 임신을 알린 시점부터 안정기인 '16주'까지 태아와 건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재택근무도 할 수 있다. 산부인과 검진일에는 남편도 휴가를 쓰고 동행한다. 배우자 출산휴가는 법정 10일에 더해 열흘간의 '워케이션(Worcation·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원하는 곳에서 업무·휴가를 동시에 하는 근무제)'을 추가로 제공하고 있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날 또한 휴가가 부여되며, 초등 저학년 자녀가 있는 직원은 매달 4회까지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사실은 산후조리원에 (배우자랑) 같이 들어가라고 워케이션을 준 겁니다. 그 기간에만 볼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이 있거든요. 맘 같아선 그냥 한 달 쉬라 하고 싶은데(웃음) 인력 규모와 여건상 최선의 요령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요."(김진환 팀장)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곤 하나 한국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 중 하나다(2021년 기준 연간 1915시간·38개국 중 5위). 합계출산율 '0.78명'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현금성 지원뿐 아니라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직원의 생애주기와 조직 내 화합을 함께 고민하는 모션의 사례는 이러한 측면에서 참고가 될 만하다.
"직원한테는 '금전적인 이득'이 물론 좋아요. 그런데 저희 회사 대부분의 제도는 직원을 비롯한 직원의 가정, 가족을 함께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복지를 지향하고 있거든요. 사람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임신·출산이 그런 시간이라고 보는 거죠.
그럼 실제로 배우자의 만족도가 굉장히 올라가요. 그 직원이 정말 몰입해서 일을 해야 될 때는 반대로 배우자가 조금 한 발 뒤로 물러서 줍니다. 그 순간 필요한 최대의 베네핏(benefit)을 제공하면 시간이 흘러 업무적으로 성과를 내야 할 때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는 겁니다."
모션은 김 팀장의 주도 아래 '아빠는 모션 히어로'라는 이름의 소모임도 이어가고 있다. 아빠 4명·예비아빠 1명이 육아 및 업무 관심사를 나누며 '워킹대디'들의 유대감을 쌓아가는 중이다. 경험자들의 '육아 꿀팁' 전수와 물품 공유도 이뤄진다.
자녀 1명당 '최대 4년' 재택근무…'경단'·소득절벽 우려↓
모션이 '부성(父性)' 보호의 바람직한 예라면, 대기업인 포스코는 이른바 '경단녀'(경력단절여성) 발생을 선도적으로 막은 케이스다.
지난 2018년 '기업시민'을 경영이념으로 선포한 포스코는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 경영 이상의 가치를 기반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업에 시민이란 인격을 부여한 개념으로, 기업의 이윤을 일방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전 영역에서 공생가치를 '함께' 만들겠다는 취지다.
포스코가 비교적 이르게 전사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온 영역엔 저출산 문제도 있다.
특히 회사가 '시그니처'로 생각하는 제도는 2020년 7월 국내 기업 최초로 도입한 '육아기 재택근무'다.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가 있는 직원 등은 직무여건·육아환경에 따라 8시간(전일)이나 4시간, 6시간 중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
휴직기간과 상관없이 자녀 1명당 최대 2년간 횟수제한 없이 분할 사용도 가능하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와 연계해 최장 4년까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육아휴직의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되는 '소득 절벽'을 줄이는 절충점이란 면에서 호응이 크다.
지난 18일 CBS '대한민국 인구포럼'에 참여한 김용근 포스코 기업시민전략그룹장은 "육아를 위해 굳이 당신의 커리어를 멈추지 말라는 것"이라며 "코로나19 때문에 다들 재택근무해보신 경험이 있으실 텐데 업무 특성에 따라 충분히 가능한 방식"이라고 밝혔다.
또한 "직장을 그만두지 말고 4시간·6시간 등이라도 일하면 승진 등에 전혀 문제없이 근무하고 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아서 오히려 그 비용으로 돌봄 도움을 받거나 활용하실 수 있다"며 "(일하면서도) 훨씬 더 육아를 질 높게 하실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제도는 임신 중인 여성, 난임치료를 받고 있는 여성직원과 출산이 임박한 배우자를 둔 남성직원으로까지 활용 폭이 넓어진 상태다.
쌍둥이 딸을 키우는 '워킹맘'인 마케팅본부 B과장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이 되면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들이 육아휴직을 고민하게 되는데 저는 육아기 재택근무제를 신청해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또한 "예전엔 아침시간이 전쟁 같았는데 지금은 아이들의 등교를 돕고 여유롭게 업무를 시작한다"며 "무엇보다 경력단절 걱정이 사라지니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밝혔다.
내부 공감은 '필수 동력'…"단계적 확대 시행도 방법"
포스코는 현재 제철소가 위치한 포항·광양 지역의 상생형 어린이집 2곳 등 총 6곳의 직장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다. 상생형 어린이집은 원아 중 협력사 직원 자녀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등 협력업체에도 동일한 무상이용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김용근 그룹장은 "저출산과 관련된 활동들을 많이 하면서 내부 구성원들의 동의와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우리 직원들한테는 '당신이 이런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시기가 됐습니다' 등 적극적으로 (대상자에게) 알림톡도 보내드린다"고 말했다.
이밖에 지난 1994년 시차출퇴근제를 도입한 유한킴벌리도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운영하는 우수사례로 꼽힌다. 2011년 시작한 '스마트워크'는 원격 사무실(스마트워크센터) 개설을 통해 근무공간의 유연성을 높였다.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고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다.
육아정책연구소 김나영 연구기획평가팀장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논의가 드디어 활발해지고 있어 매우 반갑다"면서도 "처음부터 너무 대상자를 폭넓게 가져가기보다 영아(0~2세) 부모를 중심으로 시행한 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하는 문제는 기업의 협조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므로 사용자 부담을 시작부터 무리하게 가져가면 참여가 저조할 수 있고, 이는 고스란히 근로자에게 부담으로 전가되기 때문"이라며 "단계적 확대를 염두에 둔 시행도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근본적으로는 제도의 목표가 출산율 제고와 양육부담 완화에 있겠지만 동시에 장기적으로 사회전체의 근로시간 유연화와 근무시간 단축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