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처럼 속여 개인 정보를 빼낸 뒤 수십억 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불법 도박사이트 계좌를 역으로 이용해 피해금을 세탁한 것으로 드러나 범행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엄마 휴대전화 액정이 깨졌어. 보험으로 처리해야 돼"
A씨는 지난 6월 딸을 사칭하는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쓰던 휴대전화가 파손돼 보험 처리를 해야 한다며 A씨 주민등록증과 통장 사본을 달라는 요구가 담긴 메시지였다. A씨는 휴대전화가 고장 나 다른 전화번호로 메시지를 보낸다는 설명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주민등록증을 보냈다.
또 컴퓨터로는 휴대전화 인증이 안 되니 A씨 전화로 인증을 해달라며 원격 접속 링크가 담긴 문자도 보내왔다. 별다른 의심 없이 링크를 누르는 순간, A씨 계좌에서는 1억 9천만 원이라는 큰돈이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거금을 잃은 A씨는 뒤늦게 사기 범행임을 눈치챈 뒤 경찰에 이를 알렸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수사 끝에 자녀를 사칭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휴대전화를 해킹해 돈을 가로채는 이른바 '메신저피싱(문자 금융사기)' 수법으로 수십억 원을 가로챈 일당을 붙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B(40대·남)씨 일당은 2021년 3월부터 지난 6월까지 자녀를 사칭하는 문자 금융사기로 155명으로부터 63억 원 상당을 가로챘다. 국내와 베트남에 각각 사무실을 차린 뒤 베트남에서는 문자 금융 사기 범행을 실행하고, 국내에서는 대포 계좌와 유심 모집, 수익금 세탁 등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일당은 자녀를 사칭해 "휴대전화 파손보험을 신청해야 한다"며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속아 넘어간 피해자가 답장을 보내오면 원격 접속 앱 설치 링크를 보내 유도했다.
피해자가 링크를 누르면 곧바로 휴대전화를 해킹해 신분증과 은행계좌 등 개인정보를 빼냈다. 이를 이용해 예금을 인출하고 은행 대출을 실행하는가 하면, 보험까지 해지해 돈을 가져간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B씨 일당은 빼돌린 돈을 '세탁'하기 위해 불법 도박사이트 계좌를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불법 도박업체에서 회원을 모집하는 직책으로 직접 활동하며, 피해금을 도박자금인 것처럼 입금했다. 이후 이를 곧바로 제3자 명의 계좌로 환급받은 뒤 인출하는 등 마치 사기 피해금을 도박자금인 것처럼 세탁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휴대전화 32대와 대포계좌·유심 121개를 압수했다. 또 범죄 수익금 가운데 7억5천만 원은 환수 조치했고 추가로 빼돌린 수익에 대해서도 추적하고 있다.
부산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및피해금환급에관한특별법 위반 혐의로 10명을 붙잡아 B씨 등 5명을 구속했다. 달아난 4명을 지명수배하는가 하면 이들에게 대포통장과 유심칩을 제공한 21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자녀를 사칭한 문자를 받을 경우 반드시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한다"며 "피해가 발생할 경우 휴일이라도 112 신고를 통해 금융기관 지급 정지를 신청한 후 휴대전화를 초기화해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