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환경규제 강화와 글로벌 방산 수요 증가에 조선 업계가 친환경 선박 및 방산 시장 선점에 팔을 걷어붙인 가운데 조선 빅2의 행보가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HD현대와 한화오션 모두 친환경 및 방산 분야 모두에 사업 역량을 모으고 있지만 각사가 상대적 우위에 있는 분야에 조금 더 무게를 싣는 모양새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HD현대 정기선 사장은 '영업맨'을 자처하며 친환경 선박 시장 선점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 사장은 지난 14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2100TEU급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 운반선 '로라 머스크호' 명명식에 참석했다. 이 선박은 세계 2위 해운사인 AP몰러-머스크(머스크)가 HD현대에 발주한 19척의 메탄올 추진선 중 가장 먼저 건조된 것으로, 메탄올을 사용하는 세계 최초의 컨테이너 운반선이다. 이 자리에서 정 사장은 "로라 머스크호가 탄소중립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혁신적이고 선도적인 기술 개발로 그린 오션 실현을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이 행사에 앞서 코펜하겐에 있는 만 에너지솔루션을 찾아 연구개발(R&D) 설비를 둘러보고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달 초에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친환경에너지 전시회에 참석해 업무협약 등을 주관하기도 했다.
방산 시장도 HD현대가 놓칠 수 없는 시장 중 하나다. 방산 업계에 따르면 폴란드와 캐나다, 네덜란드, 인도, 호주, 필리핀 등이 신형 잠수함 도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중형 잠수함(2천~3천t급) 교체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규모는 70조원대로 추산된다. 폴란드는 3천t급 잠수함 3~4척을 신규 도입할 예정으로 사업 규모는 3조원(22억5천만유로)대로 추산되는데 최근 폴란드 프로젝트 예비 입찰에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전 세계 11개 업체가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HD현대중공업이 최근 방위사업청에 대해서 제기한 가처분도 차기 관련 입찰 등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HD현대중공업은 울산급 Ⅲ 5·6번함 건조사업 입찰과 관련해 우선협상대상자에서 한화오션에 근소한 차이로 밀리게 되자 소송을 냈다. 한화오션의 최종 점수는 91.8855점으로 HD현대중공업(91.7433점)을 근소한 차이로 제쳤는데 앞서 차세대 한국형 구축함(KDDX) 사업 관련 개념설계 등 군사기밀을 촬영해 HD현대중고업에 공유한 이 회사 관계자가 지난해 11월 유죄판결을 받음에 따라 이번 평가에서 1.8점의 보안 감점을 적용받은 것이 영향을 줬다.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이국무조정실과 국민권익위원회의 개선 권고에 따라 '보안사고 감점 기준'을 일부 완화했으나, 불과 2년여 만에 세 차례나 기준을 개정하면서 강화된 감점 기준이 HD현대중공업에만 소급 적용돼 기술력 우위가 아닌 감점 여부가 수주를 사실상 결정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고 밝혔다. HD현대중공업은 보안사고 감점기준이 계속 적용되는한 향후 관련 수주에서 불이익을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고 이런 점을 공론화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도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해 해외를 돌며 방산과 친환경 선박 세일즈에 한창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 5일 폴란드 키엘체에서 열린 '국제 방위산업 전시회(MSPO 2023)'의 한화 전시장을 찾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을 직접 맞아 한화오션의 3천t급 잠수함인 '장보고-III 배치(Batch)-II'에 대해 설명하며 적극적인 영업을 벌였다.
한화오션은 최근 2조원의 유상증자 계획을 밝히며 이중 9천억원을 방산설비 확충과 해외사업장 구축 등 방산 분야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한화오션은 한화그룹 편입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중앙연구원을 공개하며 국내 조선업계에서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설비인 '음향수조' 설비와 전세계 상업용 공동수조 중 가장 큰 규모인 '공동(空洞)수조' 등을 공개하며 "해외수출방산이 저희에게 중요하고 이제 국내 조선사들과 대결구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강중규 중앙연구원장)며 방산 기술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친환경 선박도 한화오션이 공을 들이는 분야 중 하나다. 김 부회장은 폴란드 일정이 마무리되기 무섭게 '세계 최대 가스에너지 산업 전시회(Gastech 2023)'가 열리는 싱가포르로 날아가 글로벌 에너지 기업 경영진을 만나 친환경 선박 영업에 나섰다. 김 부회장은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된 차세대 친환경 LNG운반선 등을 둘러보고 "미래 해양 시장을 선도하는 솔루션 마련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화오션은 유상증자 2조원 중 6천억원을 암모니아와 메탄올, 수소 기반의 친환경 추진 시스템 개발에 투입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HD현대와 한화오션 모두 친환경과 방산 등 팽창하는 특수선 두 시장 모두에 사업을 집중하고 있지만 HD현대는 친환경에, 한화오션은 방산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모양새다.
친환경 선박은 HD현대가, 잠수함 등 방산은 한화오션이 전신인 대우조선해양때부터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만큼 강점을 공고히 하면서 또 다른 신규 시장을 함께 공략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방산에선 한화오션이, 친환경 선박에선 HD현대가 앞서는데 방산과 친환경 모두 빅2에겐 중요한 '미래 먹거리'"라며 "두 개 시장을 두고 양사의 경쟁이 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