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검사결과 BNK경남은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횡령액이 2988억원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초 금감원이 검사에 착수할때만 해도 사고액은 562억원으로 알려졌는데, 5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고 규모의 횡령 사고다.
투자금융부 직원의 도덕적 해이…'돌려막기'로 범행 은폐
20일 금감원에 따르면 투자금융부에서 15년동안 PF대출 업무를 담당하는 경남은행 직원 A씨는 PF대출 차주인 5개 시행사가 대출을 요청한 사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서류를 위조해 허위 대출을 실행, 허위 대출금을 무단 개설한 시행사 명의 계좌,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 명의의 계좌로 이체하는 방식으로 총 13번에 걸쳐 1023억원을 횡령했다.
아울러 허위 서류를 작성해 대출 원리금 상환자금을 횡령하기도 했다. A씨는 PF대출 차주들이 대출 원리금 상환자금을 정상납입했는데도 불구하고 자금집행요청서 등 대출 서류를 위조해 다른 차주의 계좌나 가족 및 지인이 계좌로 이체하는 방식으로 총 64회에 걸쳐 1965억원을 횡령했다.
A씨가 2019년 5월부터 2022년 7월까지 본인이 관리하던 17개 PF사업장에서 횡령한 금액은 총 2988억원 상당에 이른다.
특히 A씨는 '돌려막기' 수법을 이용해 자신의 범행을 교묘하게 은폐했다. A씨는 대출 원리금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다른 시행사 계좌로도 돈을 받았다. 횡령한 돈으로 다른 PF사업장 대출을 상환하고 또다른 사업장에서 대출을 내는 식이었다.
15년 동안 같은 부서에서 PF대출 업무를 담당했던 A씨에게 이같은 횡령은 '식은죽 먹기'였다. 자신이 취급한 PF대출의 사후관리까지 동시에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내부통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아…금융당국 보고도 고의 지연
금감원은 이번 거액의 횡령사고가 BNK 금융지주와 경남은행의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기능 전반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데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우선 BNK금융지주는 경남은행에 대한 내부통제 관련 테마(서면)점검을 실시하면서도, 2014년 10월 경남은행의 지주 편입 이후 고위험 업무인 PF대출 취급 및 관리에 대해서는 점검을 실시한 사례가 없었던 것이 확인됐다. 경남은행에 대한 지주 자체검사의 경우에도 현물 점검 외 본점 사고예방 검사 실적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은행의 경우, PF대출 업무 관련 대출금 지급 등 여신관리, 직무분리 등 인사관리, 사후점검 등 내부통제 절차가 전반적으로 미흡했다. 구체적으로 대출금 지급시 대출약정서에 명시된 정당계좌를 통해서만 대출금이 지급되도록 통제하는 절차가 없었다. 대출 상환시 업무처리 절차(상환 업무 처리시 확인해야 하는 서류의 종류 및 방법 등)를 규정하지 않았으며, 대출 실행 또는 상환시 해당 내용에 대한 차주 통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같은 부서에서 같은 업무를 15년간 담당한 A씨에 대한 명령휴가도 한번도 실시하지 않았다. 명령휴가란 금융사가 직원에게 불시에 강제 휴가를 가도록 지시하고, 휴가 기간 해당 업무에 비리나 부정이 없었는지 확인하는 제도다.
결국 개인의 일탈을 막을 은행 차원의 안전망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심지어 BNK금융지주와 경남은행은 지난 4월 횡령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 감사를 이유로 금융당국에 보고를 지연했다. 초기 대응이 늦어지면서 A씨는 자체 감사 직전까지 버젓이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특정인에 대한 (대출 업무) 의존도가 장기간 길어지면서 횡령에 대한 유인을 지속적으로 키워온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사고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내부통제 장치의 마련 등 지속적으로 대비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횡령 자금의 사용처를 추가 확인하고 A씨는 물론 관련된 임직원 등의 위법 행위에 대해 엄정 조치할 방침이다. 또 현장감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수사당국과 관련 내용을 공유하는 등 실체 규명에 적극 협조할 예정이다.
경남은행 사건으로 긴장하는 금융지주들…국감에서 '내부통제' 화두될 듯
내달 예정된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은행권의 내부통제 부실 문제가 화두로 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우리은행 700억원대 횡령 사건에 이어 경남은행의 3천억 횡령 사건까지 지속적황씨으로 관련 문제들이 터져나오고 있어서다.
앞서 지난해 국감에서 정무위는 내부통제 문제로 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소환했으나, 5대 금융지주 회장 모두 국제통화기금(IMF) 연차 총회 참석을 이유로 불참했다. 최고 경영진 대신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은행장과 농협은행 수석부행장이 참석해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올해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3억원이라는 역대급 횡령 사건이 발생해 주목도가 높은데다, 별다른 해외일정 등이 없는만큼 최고 경영진들이 소환될 가능성도 크다.
BNK금융그룹 빈대인 회장은 물론, 지난해 700억원대 횡령사고가 발생한 우리은행 임종룡 회장의 출석여부도 관심사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경영진에게 내부통제 책임을 지게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1일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금융위원회와 협의를 통해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관리의무와 사전감시 역할을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