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 R&D 예산 삭감 일파만파…기초연구 교수·원로까지 '우려'

내년 기초연구 사업도 1537억원 전격 삭감
10만명 교수·대학원생 소속된 '기초연구연합' 성명서
과총, '명예회장·고문 간담회', 정부에 우려 전달할 듯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 출범 기자회견. 김정남 기자

내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대한 과학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단순 예산 총액 감소 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정부의 기조 변화에 따라 과학계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우려에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과 노조, 정부 부처 노조 등이 참여하는 연대회의(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가 출범해 2차 성명서를 낸데 이어 국내 기초연구 분야 27개 학회·협회가 소속된 단체가 성명서를 발표했다. 과학기술계 원로들도 간담회를 열고 이에 대한 우려를 정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기초연구연합은 20일 '내년도 기초연구사업 예산 삭감과 사업 내역 조정에 관한 우려와 대정부·국회 요청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기초연구연합은 국내 기초연구 분야 27개 학회·협회가 모인 단체로, 약 10만명 내외 교수, 연구원, 박사후연구원, 대학원생 등이 소속됐다. 기초연구연합은 "내년 예산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초연구 사업 에산 총액 감소도 문제지만 정부의 기조 변화와 이에 따른 구조조정이 더 큰 문제"라며 "기초연구 사업은 연구자가 주제를 제안하고 치열한 경쟁과 엄정한 심사를 거쳐 연구지원을 받기에 '카르텔'이나 '연구비 나눠먹기'와 거리가 아주 멀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앞서 과기정통부와 기획재정부 등은 지난달 29일 내년도 국가 R&D예산으로 25조 9천억원을 편성했다. 올해 예산 31조 1천억원 대비 16.6%(5조2천억원) 삭감된 수치다. 기초연구 예산은 올해 대비 6%(1537억원) 감액돼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 1억원 미만 연구과제에 대한 신규과제가 중단돼 상당수 신진 연구자들의 첫 계단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기초연구연합은 "기초연구사업은 매년 수천만원부터 7억원 이상 우수연구자 과제로 구성돼 신진-중견-리더연구자로 발전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연구자들의 성장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며 "이 사업은 다른 연구사업에 비해 연구비 대비 국제 논문, 특허출원, 기술료에서 우수한 성과를 창출함으로써 R&D 효율성도 입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1억원 미만 연구과제에 대한 신규지원이 중단되면 소규모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연구가 단절돼 연구생태계가 훼손될 것"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또 "비전임 연구자를 지원하던 창의도전사업의 신규지원이 중단되는데 이는 미래 연구인력 양성에 심대한 장애를 초래하고 신진 연구자들의 해외 인력 유출 가능성도 높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선택과 집중 정책으로 연구자들의 성장 사다리가 끊어지고 총 과제 수가 줄어 기초연구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연구자 풀이 감소될 것"이라며 "국제협력 사업이 주요 기초연구 사업에 획일적으로 추진될 경우 R&D 예산 낭비와 대한민국 과학기술패권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기초연구연합 관계자는 "비효율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소액 과제 등을 획일적으로 없앤 것으로 보이는데, 그로 인한 연구 생태계 파괴를 간과한 듯 하다"면서 "세밀하고 정교하게 짜야하는 작업인데 강제적으로 도입하면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초연구연합은 기초연구 사업 예산 삭감을 철회하고, 지속가능한 정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또 현장 의견을 반영한 기초연구비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법제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아래는 기초연구연합 명단.

대한구강생물학회, 대한기초의학협의회, 대한기초치의학협의회, 대한면역학회, 대한생리학회, 대한약학회, 대한지질학회, 대한화학회, 생화학분자생물학회, 한국결정학회, 한국기상학회, 한국구조생물학회, 한국뇌신경과학회, 한국단백질학회, 한국동물분류학회, 한국미생물학회,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생물물리학회, 한국생명정보학회, 한국생태학회, 한국식물학회, 한국우주과학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조류학회, 한국유전체학회, 한국지구과학회, 한국통합생물학회.

기초연구연합 성명서. 기초연구연합 제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도 이날 서울 과학기술회관에서 '2023년도 명예회장·고문 간담회'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를 주제로 전국 6곳에서 열린 과학소통토론회 개최 실적과 국가 R&D 예산 삭감 등 과학기술계의 다양한 현안을 공유하고 발전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간담회에 참석하는 과학기술계 원로들은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내년도 정부 과학기술 예산 삭감과 과학기술 카르텔에 대한 우려를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의 향후 대책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간담회에는 이태식 과총 회장을 비롯해 조완규 국제백신연구소 상임고문, 채영복 과학기술연우연합회장, 이기준 서울대 명예교수, 김명자 KAIST 이사장 등 과총 명예회장과 고문 등 16명의 과학기술계 원로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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