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 등 독립전쟁 영웅 5위의 흉상 철거‧이전을 결정하는 과정에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20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등의 이전은 지난해 11월 박정환 총장 주관으로 열린 현장토의에서 학교 발전을 위한 4개 과제 중 하나로 선정됐다.
같은 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인 신원식 의원이 홍범도 흉상 배치를 강하게 비판한지 약 한 달 뒤였다.
군 내부에선 육사의 특수한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참모총장이 학교발전 현장토의를 직접 주관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보고 있다.
국감에서 문제가 제기되긴 했지만 참모총장이 빠르게 반응하며 진두지휘한 것은 그만큼 사안의 중요성과 민감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육군은 "육군 직할부대(육사)에 대한 지휘활동으로 '학교발전 방안'과 관련해 생도 교과과정 개정 등 전반적인 내용이 보고됐고, 흉상을 포함한 학교 내 다수 기념물 혼재에 따른 재배치의 필요성에 대해 육사에서 보고했으며, 참모총장은 이에 공감하고 지원하겠다고 언급했다"면서 과도한 의미 부여를 경계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2월 부임한 권영호 육사 교장은 최근 야당 의원들에게 "작년에 와보니까 벌써 11월에 독립군, 광복군(흉상)에 대한 이전 계획이 확정돼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홍범도 장군 등의 흉상을 학교 밖으로 이전하는 방안은 검토되지 않았다. 상징성이 큰 충무관 앞에서 위치를 옮겨 교내에 재배치하려 했을 뿐이다.
그러나 올해 1월 기념물 재배치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된 이후 육사 측 입장과 무관하게 교외 이전 주장이 강하게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TF의 이름처럼 처음에는 '재배치'가 목적이었지만 점차 '방출'에 방점이 찍히기 시작했다. 만약 이들 흉상이 교내 이전‧재배치 수준에 그쳤다면 파장은 지금보다 덜 했을 것이다.
육사가 나중에 공식 부인하긴 했지만 홍범도 흉상 등을 없애는 대신 백선엽, 맥아더 흉상을 세우는 방안도 육사 내에선 전혀 검토되지 않았다.
이런 정황들을 종합하면 홍범도 흉상 이전에는 외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을 것이란 의혹이 짙어진다.
육군은 이에 대해 "'흉상 외부 이전 결정'은 육사 자체 결정에 따른 것으로 외부에서 개입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육사는 그에 앞서 '종합발전계획'(중기발전연구서)의 일환으로 흉상 철거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지만 사실과 달랐다. 육사는 정보공개 청구 결과 "종합발전계획상 흉상 이전과 관련된 내용은 없음"이라고 밝혔다.
이 역시 육사의 흉상 이전이 자체 계획보다는 외부 압력에 의해 결정됐을 개연성을 뒷받침한다. '계획'에는 없던 흉상 문제가 갑자기 돌출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