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지난 17일 잠실에 3만 석 돔 구장을 포함한 '스포츠·마이스(MICE) 복합 단지'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두산과 LG가 함께 사용 중인 잠실구장을 헐고, 같은 자리에 돔 구장을 지어 잠실 일대를 첨단 스포츠-전시 컨벤션 시설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잠실 신축 돔 구장 건설은 2025년 프로야구 시즌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다. 먼저 잠실구장 해체 작업을 마치고 건설에 들어가면 2031년 말에 완공될 예정이다.
계획에 따라, 잠실 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는 두산과 LG는 6년만 쓸 '임시 홈 구장'을 구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두산과 LG가 이 시기에 '어디를 홈 구장으로 써야 하냐'는 것이 쟁점이다.
그나마 유력했던 방안은 잠실 주경기장 리모델링이다. 잠실 주경기장을 야구장으로 바꾼 뒤, 이 장소를 두 구단의 홈구장으로 활용하는 안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서울시는 거절했다. 갖가지 이유를 들며 "잠실 주경기장 사용은 불가하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구단이 대뜸 미래에 길거리로 나앉을 수도 있게 된 상황. 당사자인 두산 이승엽 감독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확실한 것은 이 감독에게 의견을 묻는 절차는 없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감독은 19일 잠실구장에서 '2023 신한은행 SOL KBO 리그' NC 다이노스와 경기를 앞두고 "(그러한 절차가) 전혀 없었다"며 해당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 감독은 "여러 기사를 보고 느낀 점은, 야구를 보러 오시는 분들이 편하게 보셔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다른 건 제쳐두고, 팬들이 좋은 환경에서 관전을 하셔야 한다. 요즘엔 관중 문화가 굉장히 성숙하게 많이 발전을 했기 때문에 그런 분들을 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또 이 감독은 "서울은 우리나라에서 특수한 도시다. 다른 팀을 응원하기 위해 원정 관중도 많이 오시기 때문에 팬 분들이 좀 더 쾌적한 상황, 보기 편한 곳에서 경기를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이 감독은 "저희 두산 베어스 팬들만 생각할 순 없는 문제"라며 "저희는 야구를 하는 입장이지만, 야구를 보러 오시는 분들을 생각해야 한다. 선수들이 겪을 불편함은 조금 뒤로 하고, 이런 부분을 더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LG 염경엽 감독 역시 해당 사안에 대해 팬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서울시의 첫 번째 목표는 서울 시민들이 불편함 없이 야구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할 위기에 놓인 라이벌 구단 감독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명확한 대책이 없어 답답하기 때문이다. 과연 서울시 계획은 무엇일까.
서울시는 고척돔, 목동구장, 수원, 인천 등 기존 구단과 같이 나눠서 쓸 수 있도록 KBO와 구단 등과 협의할 것이라는 방안을 냈다. 하지만 이 계획에 대해서도 부정적 반응이 나온다.
현재 키움 히어로즈가 홈으로 사용 중인 고척 스카이돔을 임시로 공유하는 방안이 현실화되더라도, 두산과 LG 중 한 팀만 가능할 뿐이다. 게다가 가만히 있던 키움 구단에도 뜬금없이 불똥이 튀게 된다.
또 다른 방안인 목동구장은 열악한 시설로 애를 먹고 있는 현실이다. 과거 프로야구가 이곳에서 진행됐을 때 인근 지역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끊이지 않기도 했다. 소음과 조명 문제 때문이었다. 또 현재 이곳은 아마추어 구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프로 경기가 열리기에 부적합하다는 의견도 있다.
수원, 인천 등에 임시로 둥지를 트는 것은 서울을 연고로 둔 두 구단의 정체성에 타격을 입히는 문제가 있다. 이미 일각에선 '인천 트윈스', '수원 베어스' 등 조롱 섞인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시 측 계획에 온라인 상에서도 "누구를 위한 돔구장 건설이냐", "대책을 갖고 발표를 했어야 한다"는 등의 부정적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일단 두산과 LG 구단은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합동 테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서울시에 대응할 방침이다. TF팀은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잠실 주경기장 리모델링' 방안으로 서울시를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