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스마트폰에서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사기관이 당신의 개인정보를 탐색·추출하는 것을 수긍할 수 있는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확인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가 확정된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건 상고심 주심인 오경미 대법관이 던진 질문이다. '택시에 놓고 내린 스마트폰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활용된 상황'이거나 '빌려준 스마트폰이 불법촬영 혐의로 적발된 상황'에서 임의제출이 이뤄져 압수·수색 절차에 참여하지 못했어도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취지다.
오 대법관을 비롯해 민유숙, 이흥구 대법관 등 3명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 다수 결론에 반대의견을 밝혔다. 전체 40쪽에 달하는 판결문 가운데 절반 이상을 할애하며 목소리를 높인 반대 논거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대법원, 최강욱 '유죄' 확정…"관리처분권, 사실상 포기·양도"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합은 전날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최 전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선수 대법관이 회피 신청을 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12명의 대법관은 9명(다수의견)과 3명(반대의견)으로 의견이 나뉘었고, 결국 판결에 따라 최 전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사건의 쟁점은 '증거은닉 등 사건에서 실질적 피압수자는 누구인지' 여부다. 최 전 의원 측은 조 전 장관의 주거지 PC에서 나온 하드디스크 등 저장매체 3개에 들어있는 전자정보의 증거능력을 문제삼았다. 이 저장매체들은 자산관리인으로 알려진 프라이빗뱅커(PB) 김경록씨가 조 전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부탁을 받고 숨겼다가 검찰에 임의제출한 것이다.
다수의견은 김씨가 정 전 교수로부터 저장매체인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전속적 관리 처분권'을 넘겨받았다고 판단했다. 정 전 교수 등이 증거은닉을 교사하면서 하드디스크의 지배·관리 및 전자정보에 관한 관리처분권을 사실상 포기하거나 김씨에게 양도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절차 과정에서 김씨에게 참여 기회를 준 것으로 충분하고 조 전 장관이나 정 전 교수에게까지 참여권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수의견은 "하드디스크 임의제출 과정에 참여권에 관한 위법이 없다고 보고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 원심의 판단에는 관련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오경미·민유숙·이흥구 "압수 절차 권리의 문, 절반은 닫혀"
오경미·민유숙·이흥구 대법관 등 3명은 장문의 반대의견으로 다수의견을 반박했다. 이들의 반대의견은 18쪽에 달했다. 전체 40쪽 분량 판결문 가운데 주문과 기본 인정사실, 대법관 명단 등이 적힌 6쪽을 제외하면 반대의견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들 대법관은 "다수의견은 그동안 (대법원이) 선례를 통해 적법절차와 영장주의 원칙을 구현해야 하는 헌법적 요청에 부응해 이룩한 성과를 상당 부분 무력화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 결과 전자정보의 압수·수색 절차에서 대법원이 피압수자 또는 실질적 피압수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열었던 참여권이라는 절차적 권리의 문은 절반쯤 다시 닫히게 됐다"라고도 성토했다.
강제처분의 직접적, 형식적 피의자(자산관리인 김씨)는 무관정보(범죄와 관련성이 없는 사생활 영역 등)에 대한 수사기관의 임의적인 탐색 등을 막을 별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김씨에게 참여권을 보장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저장매체의 소유·관리자(정 전 교수)에게까지 참여권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압수·수색에서 '관련성 원칙'을 관철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될 수 없어 소유·관리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무관정보에 관한 인격적 법익 침해에 대한 적법절차와 영장주의 보호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도 밝혔다.
오 대법관 등은 그간 대법원이 전자정보의 압수·수색 절차에서 '피압수자'를 중심으로 참여권 개념을 확립하고 '실질적 피압수자'에까지 귀속 주체를 확장해 왔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기업이나 개인의 업무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대용량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에 범죄혐의와 관련 없는 기업이나 개인의 사생활 비밀과 자유,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 재산권 등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무관정보까지 탐색·복제·출력하지 않도록 절차적 조처가 필요하다는 헌법적 요청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다수의견은 참여권을 보장받는 주체인 실질적 피압수자의 의미를 압수·수색의 원인이 된 범죄혐의사실의 피의자를 중심으로 매우 좁게 해석하는 모순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수의견 "정 전 교수, 관리처분권 상실…김씨 참여로 충족"
정 전 교수가 자산관리인 김씨에게 하드디스크를 건넨 부분을 두고 대법관들 의견도 팽팽하게 갈렸다.
오 대법관 등은 문제가 된 하드디스크는 정 전 교수 등이 주거지에서 장기간 개인적으로 사용한 컴퓨터로 봤다. 그와 가족의 다양한 개인정보가 저장돼 있는 것으로 주관적 가치에 비춰볼 때 정 전 교수가 김씨에게 하드디스크를 건넨 것은 검찰 수사에 대비해 숨겨 놓으라고 한 것이지, 없애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결국 김씨가 하드디스크를 임의제출할 당시 정 전 교수 등이 하드디스크에 대한 관리처분권이나 소유·지배를 완전히 상실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반면 안철상·노태악·천대엽 대법관은 다수의견에 대한 6쪽 분량 보충의견을 통해 "(하드디스크는) 증거은닉범인 김씨가 정 전 교수로부터 받아 지배·관리하던 중 자신의 범죄혐의사실인 증거은닉과 관련해 수사기관에 임의제출한 것"이라며 "임의제출 원인이 된 피의사실이나 해당 증거인 하드디스크에 대해 김씨가 직접적·실질적·법률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드디스크의 압수·수색 절차가 정당한 이해관계자인 김씨의 참여가 이뤄진 이상 절차 적법성은 원칙적으로 충족된다"며 "정 전 교수 등까지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에 관한 법익이 침해되는 반헌법적 결과를 용인하게 되는 것이라는 (오 대법관 등 3명의) 반대의견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안 대법관 등은 또 "정 전 교수가 김씨에게 하드디스크를 건네면서 증거은닉을 교사했고 김씨가 이를 은닉했으므로 정 전 교수 등의 하드디스크에 대한 현실적 지배·관리를 상실했음은 명백하다"면서 "(김씨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임의로 관리처분할 수 있는 상황에 두기까지 한 것에 비춰 적어도 정 전 교수 등으로서는 '전속적인' 관리처분권을 더는 보유·행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오경미 "저장매체 문제, 더욱 복잡…압색 절차 기준 제시해야"
이에 대해 오 대법관은 반대의견에 홀로 7쪽 분량 보충의견을 덧대 앞서 던진 질문의 사례인 '보이스피싱범'에게만 참여권을 인정하면 절차의 적법성이 완결되는 것인지 반문하면서 "다수의견에 대한 (안 대법관 등 3명의) 보충의견은 '그렇다'라고 대답한다"며 "반대의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고 사건의 쟁점은 바로 이것"이라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보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저장매체를 둘러싼 문제는 앞으로 더욱 복잡하게 전개될 것이고 수사기관의 강제처분을 합헌적으로 통제해 수사실무를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명제는 당연한 것이 됐다"며 "대법원은 이런 명제가 요구하는 절차적 권리의 보장으로 헌법적 요청에 부응함과 동시에 실체적 진실 규명으로 형사사법의 이념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전자정보 압수·수색 절차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본범과 증거은닉범의 구조는 참여권 귀속 주체의 확정에서 다양한 논쟁거리를 가지고 있다"며 "반대의견이 전개한 논의를 기초로 고도화되는 정보사회에서 정보저장매체에 대한 압수·수색 절차상 참여권 보장의 범위와 방향성에 대한 추가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