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봐주세요. 이다음에, 뭘 더 할는지 기억해 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죽는 날까지 (연기를) 하려 합니다." _ 고 변희봉, 2017년 5월 칸영화제 참석 당시 봉준호 감독과 함께한 영화 '옥자'로 2017년 5월 칸 레드카펫을 밟은 후 변희봉은 "마치 70도 기운 고목에 꽃이 핀 기분"이라고 했다. 성우로 방송 생활을 시작해 조·단역을 거쳐 안방극장의 주목받는 스타가 된 변희봉. 그런 그를 스크린으로 이끌어 꽃을 피운 이가 봉준호 감독이다. 그렇게 변희봉은 봉준호의 '페르소나'가 됐다.
1942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로 올라와 제약회사에서 일하던 중 무작정 지원한 1966년 MBC 성우 공채 시험에 합격하면서 방송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70년 MBC 드라마 '홍콩 101번지'를 통해 배우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브라운관 속 조·단역으로 얼굴을 알리던 변희봉은 1984년 '조선왕조 500년-설중매 편'에서 유자광 역할을 맡으며 1985년 제21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인기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찬란한 여명' '왕과 비' '허준' 등을 통해 꾸준하게 드라마 속에서 자신의 연기를 선보였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옥자' '괴물' 속 고 변희봉의 모습. 다음영화 제공 그런 변희봉에게 사실상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제공한 이가 봉준호 감독이었다. 봉 감독의 끈질긴 설득 끝에 고인은 '플란다스의 개'(2000) 속 개를 잡아먹는 아파트 경비원 역을 연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주목받았다.
이후 송강호와 함께 '논두렁 신'이라는 명장면을 남긴 '살인의 추억'(2003), 자신에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안긴 '괴물'(2006), 생애 첫 칸 레드카펫을 밟게 해준 '옥자'(2017) 등 장편은 물론, 매점 주인으로 나온 '싱크 앤 라이즈' 등 단편을 포함해 봉준호 감독과 모두 6편의 작품을 함께했다.
영화 '싱크 앤 라이즈' 스틸컷.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재밌는 사실은 봉 감독의 영화 속 변희봉이 맡은 역할의 이름은 항상 '희봉'이었다. 언제나 자신의 작품에서 역할 그 자체로 살아 숨쉬었던 자신의 페르소나 '변희봉'에 대한 봉 감독만의 애정이다. 변희봉은 그렇게 봉 감독의 진정한 '페르소나'가 됐고, 그와 함께 영화계의 큰 별로 거듭났다. 여러 공로를 인정받은 고인은 지난 2020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영화 '옥자'로 다시 만난 봉준호 감독과 고 변희봉. 다음영화 제공 특히 변희봉은 '옥자'를 통해 75세 나이에 모든 영화인이 꿈꾸는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당시 그는 "칸에 오는 것은 배우의 로망이다. 배우 생활을 정말 오래 했지만 칸에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벼락 맞은 기분"이라며 "70도 기운 고목에 꽃이 핀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영화 '옥자' 행사에 참여한 고 변희봉의 모습. 다음영화 제공 "가장 내 머릿속에 남는 건, 이제 다 저물었는데 뭔가 또 미래의 문이 열리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는 겁니다. 힘과 용기가 생기는 듯했죠. 두고 봅시다. 이다음에, 뭘 더 할는지 기억해 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려 합니다." 고인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0일 낮 12시 30분이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며, 흑석동 달마사 봉안당에 봉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