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행정·관리 인력을 치안 현장으로 재배치하는 조직재편안을 발표했지만, 일선 현장 경찰관들과 전문가들은 '본질적인 대책 없이 '인력 돌려막기'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8일 경찰청은 △전체 경찰관서에 범죄예방대응과 신설 △경찰관서 관리기능 인력 감축, 치안현장으로 재배치 △형사기동대·기동순찰대 운영 등 내용이 담긴 현장 치안역량 강화를 위한 조직재편안을 발표했다.
경찰은 우선 기존 부서를 통폐합해 본청에 범죄예방대응국을 신설한다. 범죄예방대응국은 '범죄예방–지역경찰–112상황' 기능을 통합해 범죄예방과 대응을 총괄한다. 18개 시도청과 259개 경찰서에도 범죄예방대응과가 만들어진다.
범죄예방대응국은 기존 생활안전국 소속의 범죄예방정책과와 차장 직속이었던 치안상황관리관을 통합해 범죄 예방부터 112신고 대응, 지구대·파출소까지 총괄하는 경찰 현장의 핵심 조직이 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행정·관리 업무를 맡던 인력을 줄여 치안 현장에 총 2900여 명을 보강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본청의 경우 △생활안전국과 교통국을 생활안전교통국으로 △수사국과 사이버수사국을 수사국으로 △형사국과 과학수사관리관을 형사국으로 통합한다. △공공안녕정보국은 1개과를 폐지(4개과→3개과)해 치안정보국으로 재편하고, △외사국도 1개과를 폐지(3개과→2개과)해 국제협력기능을 전담하는 국제협력관 체제로 개편할 예정이다.
시도청도 본청의 조직 개편에 따라 기구를 축소하고 중복 업무를 통합해 총 28개과를 감축한다. 또 경찰관기동대 등 직할부대의 행정인력과 일선경찰서에 비해 업무량이 적은 부서의 인력을 감축하는 등 총 1300여명의 인력을 감축해 현장으로 재배치한다.
일선 경찰서에서는 내근부서 근무자들의 업무부담이 적지 않은 것을 고려하되 소규모로 운영되던 부서 등을 통폐합, 과장·계장 등 중간관리 인력 위주로 1500여 명을 감축해 현장 대응인력으로 전환한다.
이렇게 마련된 인력으로 형사기동대·기동순찰대도 부활·확대 운영해 범죄예방 활동에 집중하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경찰청에서는 감축된 관리인력을 활용해 시도청 범죄예방대응과 소속으로 기동순찰대(28개대, 2600여명)를 운영할 계획이다. 기동순찰대는 전 시도청에 설치되며 △다중밀집장소 △공원·둘레길 등 범죄취약지에 집중 배치해 예방순찰 활동을 보다 강화한다.
기존 검거에 초점을 맞췄던 형사 활동도 예방 중심으로 바뀐다. 시도청과 경찰서 강력팀 일부인력을 전환해 전 시도청(세종·제주 제외) 산하에 권역별 형사기동대(16개대, 1300여 명)를 신설한다.
경찰은 내달 국무회의 등을 거쳐 조직 재편에 본격 착수할 예정이다.
최일선 지구대·파출소 인력 추가 없어…시민사회 "집회 자유 억압 우려"
'치안 현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조직재편안이 나왔지만, 정작 일선 경찰관들은 시큰둥하다. 우선 최근 인력 부족·고령화 문제가 집중 제기됐던 지구대·파출소 경찰관들은 인력 충원이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불만으로 꼽았다.
수도권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A경사는 "결국 현장에서 술 취한 사람이나 흉기를 든 범인을 맞닥뜨리는 것은 대부분 지구대와 파출소 인원들"이라며 "하지만 이번 재편안에 우리들 인력을 늘린다는 얘기는 담기지 않았다"고 짚었다.
이어 "형사기동대 같은 조직이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지구대·파출소처럼 매 순간 현장에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예상하긴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나오니 더욱 실망이 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재편안이 나오기 전부터 우려됐던 '수사 부서 약화'가 현실이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의 한 경찰서 강력계 팀장인 B경감은 "일관성이 없는 전형적인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돌려막기, 땜질식 처방'"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검경수사권 조정 당시 경찰이 수사력을 보강한다며 만든 것이 수사심사관"이라며 "이번에 수사심사관을 없애고 현장 인력으로 돌린다는 것은 결국 수사력이 약화된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조직폭력배를 잡거나 시위를 탄압하는 데 주로 투입됐던 '형사기동대'가 부활한다는 점에 대해 '과거로 회귀'라는 비판도 나왔다.
서울의 한 경찰서 과장 C경정은 "십 수년 전에 강남 조폭을 때려잡고 데모하던 학생들 잡던 형사기동대가 다시 나왔다"며 "이 시대에 맞는 조직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시민사회에서도 현장 대응을 강화한다는 핑계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말로는 '현장 치안 강화를 위한 재편이다'라고 하지만 정작 지구대와 파출소 등 지역경찰 활동은 강화되지도 않았다"며 "실제로는 집회·시위 대응하는 기동대 활동을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장 치안 강화는 거짓말이고, 집회·시위와 관련한 '특별한 대응'을 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고 비판했다.
수사 유지하며 치안 현장 강화하는 본질적인 해법은 안보여
경찰 관련 학계 전문가들도 이번 재편안에 대해 본질적인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력 부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 마당에 내부 땜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유원대학교 경찰학부 염건웅 교수는 "경찰이 윗선의 압박과 명령에 대해 무언가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서 나온 단편적인 대책이다"며 "기본적으로 수사 기능을 유지하면서 인력을 충원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짚었다.
다만 지나치게 세분화됐던 경찰 조직을 통폐합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이윤호 명예교수는 "경찰 조직은 지나치게 세분화돼 있어서 부서 통폐합은 필요하다"며 "국이 많다는 것은 과, 팀이 많다는 것이고, 그만큼 지휘 인력과 행정 인력이 많아 낭비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교수도 "여기서 범죄예방대응과를 신설한다고 하는데, 그럼 또 행정 인력이 소모된다"며 "지금도 충분히 방범 기능을 하는 과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