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국방부장…소리없이 사라지는 시진핑의 남자들

지난 6월 싱가포르 샹그릴라대화 참석한 리상푸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 연합뉴스

한달 넘게 종적을 감췄다 갑자기 면직된 친강 전 외교부장(장관)에 이어 이번에는 리상푸 국방부장이 3주 동안 공식석상에서 사라지며 실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시진핑 3기가 공식 출범한지 6개월여 만에 미국과의 대결구도 선봉에 서있던 두 명의 장관이 중도 낙마하게 되면서 이들을 발탁한 시 주석의 리더십도 상처를 입게됐다.

외교부장 이어 국방부장도 실종…부패혐의로 숙청설에 무게


군사대국 중국의 국방부 수장이 3주 가량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리 부장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달 29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3차 중국·아프리카 평화안보포럼이다.

이후 지난 7~8일 중국과 베트남 국경에서 열릴 예정이던 연례 국방협력회의가 리 부장의 '건강 상태'를 이유로 갑자기 연기되면서 그의 행방에 대한 긍금증이 커졌다.

여기다 지난 15일 열린 중앙군사위원회의 정치 교육 관련 회의에도 리 부장이 나타나지 않았자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리 부장의 행방과 정치적 앞날에 대한 의문이 커진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리 부장의 실종에 대해 외신들은 숙청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리 부장이 군사 장비 조달 문제와 관련해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지난해까지 중앙군사위원회 장비발전부장을 지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최근 "리 부장이 이미 해임됐고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리 부장의 실종이) 중국 인민해방군 로켓군 고위직들이 잇달아 부패 혐의로 낙마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숙청설이 나돌며 사라졌던 고위 관료가 갑자기 화려하게 복귀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지난 7월 면직된 친강 전 부장의 사례 직후 리 부장의 실종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숙청설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군 기관지 해방군보가 18일 '간부의 분발과 책임을 독려하자'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현재 지도 간부의 어지러운 행위 현상이 아직 일정 정도 존재하고 있다"며 군기잡기에 나서자 리 부장을 비롯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군내 숙청을 엄두해 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미 공격수의 잇따른 낙마…1인 권력집중으로 리스크도 커져


리상푸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 연합뉴스

리 부장은 시진핑 3기 정부가 공식 출범한 지난 3월 국방부장으로 지명된 동시에 국무원(행정부) 지도부에 해당하는 5명의 국무위원에도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다. 국무위원은 부총리와 장관 사이 중각 직책으로 친 전 부장 역시 이때 국무위원으로 승진한 바 있다.

그는 장비발전부장 재임 당시인 지난 2018년 러시아로부터 Su-35 전투기와 S-400 방공미사일 시스템을 불법 구매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라간 인물이다. 하지만 시 주석은 보란듯이 그를 국방부 수장 자리에 앉혔다.

이 때문에 최근 몇달 사이 미중 양국간 외교.경제 분야에서 고위급 소통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군사.안보 분야에서만큼은 여전히 소통이 단절된 상태였다. 미국 측이 국방장관 간 대화를 요구했지만 중국 측은 리 부장에 대한 제재 해제를 먼저 요구하며 대화를 거부했다.

군사.안보 분야에서 만큼은 한발짝도 양보할 수 없다는 시 주석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지만, 동시에 미국과의 갈등이 커질 것을 알면서도 그를 국방부장에 임명한 것은 그만큼 리 부장에 대한 시 주석의 신뢰가 두텁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런 상황에서 리 부장의 갑작스런 실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그를 발탁한 시 주석의 리더십에 상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부장은 지난 7월 면직된 친 전 부장과 함께 미중 대결 국면에서 중국 측의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타격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관례를 깨고 장기집권체제를 구축하면서 권력이 시 주석 1인에게 집중된 것이 오히려 인사문제 등에서 리스크를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ASPI)의 로리 대니얼스 상무는 1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신뢰할 수 있는 보좌진 풀이 계속 축소되면 좋은 정보를 얻기 힘들다"며 "시 주석이 직면한 주요 어려움은 자신의 철권통치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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