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드민턴의 전설은 살아 있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정소영 전북체육회 이사(56)가 세계시니어선수권대회 2연패를 이뤄냈다.
정 이사는 17일 전북 전주시 화산체육관에서 열린 '2023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세계시니어선수권대회' 여자 복식(55세 이상) 결승에서 정길순과 짝을 이뤄 타냐 에베를(독일)-엘케 니세 드루스(네덜란드)를 눌렀다. 세트 스코어 2 대 0(21-6 21-11)의 완승이었다.
2021년 스페인 대회까지 2회 연속 우승을 합작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 65세 이상부 혼합 복식 이은구(전 전북은행 감독)-유연(군산여고 출신)까지 2개 종목에서 정상에 올랐다.
정 이사는 배드민턴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당시 황혜영과 여자 복식 금메달을 따낸 전설이다. 이후 전주 성심여고 지도자를 맡는 등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당초 정 이사는 세계시니어선수권에 출전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전주의 대회 유치를 위해 2년 전 출전했고,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함께 출전한 정길순 역시 국가대표 출신으로 김제중앙초, 김제여중, 군산여고에서 선수 생활을 해온 절친이다. 정 이사는 "한국에서 열리는 만큼 대회 2연패를 이루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정 이사는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딸 김혜정(25·삼성생명)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정 이사는 "나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혜정이도 아시안게임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좋겠다"면서 "메달까지 따게 된다면 금상첨화"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다만 김혜정은 지난 7월 불의의 발목 부상을 당해 전남 여수에서 열린 코리아 오픈에서 기권하는 등 컨디션이 완벽하지는 않다. 김혜정은 정나은(화순군청)과 짝을 이뤄 지난해 코리아 오픈 여자 복식 우승을 차지하는 등 기대를 모았지만 대회 2연패가 무산됐다.
배드민턴계에서는 김혜정-정나은이 도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자 복식 세계 랭킹 3위 김소영(인천국제공항)-공희용(전북은행)과 세계 2위 이소희(인천국제공항)-백하나(MG새마을금고) 등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기에 더 아쉬웠다. 지난해 최고 권위의 전영 오픈에서 세계 1위 조를 꺾었던 김혜정-정나은은 현재 세계 랭킹 12위다.
하지만 김혜정은 다행히 아시안게임 직전 재활을 마쳤다. 개인전에는 나서지 못하지만 단체전에 출전해 힘을 보탤 예정이다. 한국 여자 대표팀은 단식 세계 랭킹 1위 안세영(삼성생명)을 앞세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정 이사는 "혜정이가 한 달 정도 재활을 했다"면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중요할 때 다쳤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면 좋겠지만 다치지 말고 무사히 대회를 마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애틋한 모정을 전했다.
사실 정 이사는 대표적인 배드민턴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남편 김범식 전 마산성지여고 감독과 장녀 김혜정을 비롯해 김소정(시흥시청)과 김유정(삼성생명)까지 모두 선수 출신이거나 현역이다. 정 이사는 "앞으로도 한국 배드민턴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과연 김혜정이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해 무사히 아시안게임을 치르고 메달까지 품에 안고 귀국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