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굴 아픔도 있었지만…가야고분, 세계문화유산 등재"

등재 결정순간, 150여개 대표단서 축하쏟아져
가야 고분군, 가야연맹 왕과 왕족의 무덤군
80년대부터 가야 주목…수많은 유물·유산 있어
수백개 고분 내 철기·토기·장신구 등 부장품
일제강점기, 60~70년대 사이 30% 이상 도굴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하승철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실장)
 
지난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희소식이 들려왔습니다. 7개의 가야 고분이 제45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된 겁니다. 5개의 지자체가 10년 넘게 노력해서 얻은 값진 결과물인데요. 정확히 어디, 어디 고분이 등재가 된 거고 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지 사우디 현지 지금부터 연결을 해보죠.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의 하승철 실장 연결이 돼 있습니다. 실장님, 나와 계십니까?
 
◆ 하승철> 네, 안녕하십니까? 하성철입니다.
 
◇ 김현정> 축하드립니다.
 
◆ 하승철> 감사합니다.
 
◇ 김현정> 한 9시간 전쯤이죠. 이 등재가 최종 발표가 된 게.
 
◆ 하승철>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요?
 
◆ 하승철>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되는 순간 세계유산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 150여 개국 국가대표단으로부터 많은 축하와 우레와 같은 환호가 이어져서 회의장이 아주 떠들썩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국가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습니다.
 
[문화재청 제공]

◇ 김현정> 이게 굉장히 오랫동안 관계자들이 준비해 오셨다고 제가 들었는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 하승철>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2012년부터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정말 이런 날이 올 것인가,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적 가치가 있을까 이런 걱정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아직은 등재됐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 김현정>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금 그러셨어요. 가야고분군이 이게 정말 세계 속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10년 넘게 준비를 하셨다는 건데 사실 한국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가야라는 이름 자체를 모르지는 않아요. 그런데 또 막상 설명을 하려고 하면 이게 좀 가물가물합니다. 왜냐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 이렇게 삼국시대에 대해서 우리가 한참 공부를 하는데 백제와 신라,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가야 동맹국의 존재는 그렇게 높은 비중으로 배우지 않았던 것 같거든요, 실장님.
 
◆ 하승철> 네, 맞습니다. 가야가 1세기부터 6세기까지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이 존속했지만 한반도 끝에 있는 아주 자그마한 나라, 그 정도로 알려져 있었고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보니까 신비의 나라, 그 정도로 실체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우리가 가야 문명이, 가야가 남겼던 유산과 유적이 영남과 호남 지역에서 많이 발견돼갖고 그때부터 가야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과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 김현정> 지금 신비로운 나라, 좀 감춰졌던 왕국, 이렇게 설명을 하셨는데 가야란 나라의 특징이랄까요? 어떤 나라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 하승철> 가야는 거의 기록을 통해서는 알 수 없지만 가야에는 아주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당시 아주 우수한 철기 문화를 보여주는 갑옷, 투구 우수한 철기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고 그리고 목걸이, 귀걸이라든지 이런 장신구들이 굉장히 화려한 장신구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토기들도 굉장히 조형미가 뛰어나고 아름다운 토기들이 많기 때문에 이게 잘 알려지지 않지만 굉장히 우수한 문화를 가졌던 이런 나라였구나, 이런 걸 알 수가 있고 그런 가야의 문화가 중국에서 오는 이런 새로운 기술들을 받아들여가지고 일본 열도에 전해지면서 동북아시아 전체적으로 고대 문명이 화려하게 부활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렇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 김현정> 여러분, 그 가야금을 전한 우륵 있잖아요, 우륵. 우륵이 가야 출신이잖아요. 가야금의 그 가야.
 
◆ 하승철>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리고 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김유신 장군도 금관가야의 12대손.
 
◆ 하승철> 가야가 남긴 아주 우수한 문화 중에 하나가 가야금입니다. 그리고 가야가 멸망하면서 그 유산들이 신라로 그대로 흡수되면서 신라가 삼국 통일하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 김현정> 지금 저희가 지도를 보여드리고 있는데 이렇게 백제하고 신라,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이 나라가 가야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기록이 많이 남겨져 있지 않다 보니까 교과서에서도 비중이 적었어요.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6세기에 걸쳐서 존재했고 수많은 유물들, 유산들을 남기고 있는 곳이다. 이 가치가 우리나라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불과 1980년대부터라고요.
 
◆ 하승철> 1980년대부터 비로소 가야 고분군에 대해서 가야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경남과 호남 지역에 있는 이런 지자체에서 지역에 있는 유산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보존하고 연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가야에 대해서 연구가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 김현정> 이번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그 고분군은 어떤 곳인가요?
 
◆ 하승철> 이번에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은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7개 나라를 대표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경남 김해에 있는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마니산 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 고성 송동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그리고 경북 고령에 있는 이산동 고분군, 전북 남원에 있는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7곳입니다.
 
[문화재청 제공]

◇ 김현정> 이게 어떤 왕들의 무덤인가요?
 
◆ 하승철> 당시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나라들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입니다.
 
◇ 김현정> 왕과 왕족들의 무덤. 지금 저희가 사진 보여드리고 있습니다만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왕들의 무덤으로 보이는데 유네스코에서는 특별히 어떤 가치에 주목을 한 걸까요?
 
◆ 하승철> 유네스코에서는 가야가 여러 세력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가야연맹이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한 정치 체계를 보여주는 독특한 유산이다. 그리고 발달한 철기문화, 토기, 국제 교역을 바탕으로 해서 동아시아 문화권 형성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지점에 주목을 했습니다.
 
◇ 김현정> 여기가 가야연맹, 여러 개 나라의 연맹으로 이루어진 곳이에요. 가야라는 연맹이. 우리가 가야, 가야 흔히 이렇게 얘기하는데 사실은 정확히는 가야연맹국이죠.
 
◆ 하승철> 가야에는 여러 소국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게 가야연맹이 되겠습니다.
 
◇ 김현정> 그렇죠. 이런 다양한 그 시절에 이렇게 다양한 정치 체제가 있었다라는 걸 보여주기도 하고 그리고 철기 문화 그리고 국제 교역이 이루어졌다는 걸 보여주는 유산들이 거기 남아 있다. 겉으로 볼 때는 그냥 평범한 무덤이지만 지금 그 안에 들어있는 그 유물들의 가치를 본 거군요.
 
◆ 하승철>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어떤 것들이 들어 있습니까?
 
◆ 하승철> 거기에는 당시 아주 발달하기 시작한 철기 문화 그리고 가야 토기가 굉장히 우수한 토기로 알려져 있고 이런 토기들이 주변 일본이라든지 이런 데서 토기 생산이 아주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야가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 국가라 불릴 정도로 중국하고 한반도, 일본 열도를 이어주는 아주 중요한 지점에 있었고 당시 동북아시아 국제 교역을 아주 활성화시키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점이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 김현정> 옛날 왕릉들은 잘 관리가 안 됐기 때문에 도굴이 된 것도 많다고 제가 들었는데 이 7개의 고분들은 어떻습니까?
 
◆ 하승철> 가야에는 고분들이 한 수백 개씩 남아 있기 때문에 이 고분 안에는 그 당시 쓰던 물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철기라든지 토기 그다음에 금공품으로 만든 장신구,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이후로 이런 고분들의 그리고 고분 안에 부장돼 있는 유물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도굴이 굉장히 많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관리가 조금 소홀했던 60~70년대에 도굴이 굉장히 많이 일어났고 그러면서 그런 유물들이 많이 반출되고 이렇게 골동품 시장으로도 흘러가고 그렇게 했습니다.
 
◇ 김현정> 80년대부터 이 가야 고분의 가치를 정부가 알기 시작했다는 얘기니까 그전에 일제강점기 60년대, 70년대, 이런 때는 엄청나게 도굴이 이루어졌겠군요.
 
◆ 하승철> 60~70년대 굉장히 많이 도굴이 많이 이루어졌고 그때는 국가적인 관심을 받지 못해서 정비가 잘 되지 않았고 관리도 조금 소홀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유산이 관리되고 보호가 되면서 여기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특히 가야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집중되었습니다.
 

◇ 김현정> 그 귀중한 유물들, 장신구니 토기니 이런 것들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 있어요? 그럼 도굴된 것들.
 
◆ 하승철> 그런 도굴된 것들이 아마 해외로도 많이 나갔을 것 같고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거나 그리고 미술관, 이런 박물관에도 이렇게 구입되기도 하고 했지만 아마 아직도 많이 소재가 불분명한 유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런 걸 보면 안타깝기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굴이 안 되고 유물이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 그런 왕릉도 있었습니까?
 
◆ 하승철> 이번에 특히 세계유산에 등재된 7개 고분군이 그중에서도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었고 연구도 많이 된 유적으로 이렇게 평가를 받았습니다.
 
◇ 김현정> 수백 개의 유적들, 수백 개의 이 고분들 중에 이번에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들은 비교적 관리가 잘 됐던 곳들, 보존이 잘 된 곳들이다 그런 말씀이세요. 그러면 전체 가야시대의 이 왕릉들 중에 어느 정도나 훼손이 됐고 도굴이 됐다고 파악하고 계세요?
 
◆ 하승철> 약 한 30% 이상 정도가 도굴이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김현정> 30% 이상이 도굴되었다. 참 이 말씀 들어도 안타까운데요. 그래도 1980년대부터는 그 가치를 인정받고 이제는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 시키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이게 우리나라로서는 16번째 세계문화유산 등재고 이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닌 한 7개 지자체가 함께 오랫동안 굉장히 공들인 일이라고 들었어요.
 
◆ 하승철> 그렇습니다. 거의 2011년부터 시작돼서 10년 이상 지금 진행된 사업이 되겠습니다.
 
◇ 김현정> 이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면 그 유산의 가치가 어떻게 달라지는 건가, 뭐가 좋은 건가 이런 궁금증들도 있으실 거예요. 어떻습니까?
 
◆ 하승철> 제일 가장 큰 효과는 이 유산이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잘 알려지게 된다는 거죠. 세계유산위원회라든지 여러 홈페이지라든지 소식통을 통해서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국내 유산이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굉장히 상승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지도가 상승함에 따라서 관광 수요가 굉장히 늘어납니다.
 
◇ 김현정> 관광.
 
◆ 하승철> 그래서 그런 효과들이 지자체에서 굉장히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 김현정> 무엇보다도 관광자원으로 활용 가치가 높아지는 것도 있을 거고 또 체계적인 관리와 연구가 더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겠죠.
 
◆ 하승철>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중앙정부 지자체에서도 굉장히 관심이 집중되면서 지속 가능한 보존의 아주 출발점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국가적으로 잔치가 벌어진 거나 마찬가지입니다만 특별히 고생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 하승철> 감사합니다.
 
◇ 김현정> 사우디 현지 연결했습니다.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의 하승철 실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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