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군사협력을 비롯해 양국간 밀착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말을 아끼며 두 혈맹 사이의 위험한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구(舊) 소련 몰락 이후 북한에 대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중국 입장에서 자국을 통하지 않은 양국의 밀착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향후 중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북핵 고도화 노린 행보
지난 13일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간 정상회담이 열린 곳은 당초 예상됐던 블라디보스톡이 아닌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였다.
북한과 러시아는 우주기지를 정상회담 장소로 정하며 양국 정상의 회동 목적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에서 러시아의 첨단 위성 기술 이전 등이 논의됐을 것으로 관측했다.
노동신문도 김 위원장이 우주기지를 둘러보면서 소유즈-2와 안가라 로켓의 구체적인 기술적 특성과 조립·발사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고 보도하는 등 방러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며 궁지에 몰린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는 댓가로 위성 기술, 즉 ICBM(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될 수 있는 기술을 전수받아 핵능력 고도화를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당장 북러와 대립각에 서있는 한국과 미국, 일본을 긴장시키는 동시에 두 나라와 혈맹인 중국의 속내까지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中 북러 정상회담 논평도 안해…관영매체도 잠잠
일단 중국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정상회담 당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북한 지도자의 러시아 방문은 북-러 간 합의이며 북-러 관계와 관련된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마오 대변인은 북중 관계에 대한 질문에도 "중국과 북한은 산과 물이 서로 이어진 우호적인 이웃으로 현재 중북 관계는 양호하게 발전하고 있다"며 "우리 양국은 최고지도자들이 달성한 공동인식을 이행하며 영역별로 교류·협력을 심화하고 있다"고 통상적인 답변을 내놨다.
마오 대변인은 회담이 이뤄지기 전인 전날 열린 정례브리핑에서도 해당 질문에 이날과 똑같은 답변을 내놓는 등 해당 사안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다.
북한과 러시아 소식을 비중있게 다뤄왔던 관영매체들도 말을 아끼기는 마찬가지다. 관영매체들은 북러 정상회담 소식을 속보 형식으로 간단히 다룰 뿐 이에 대한 평가나 분석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말을 아끼는 대신 중국 외교라인 1인자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오는 18일 러시아를 방문한다. 왕 위원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할 예정인데 이 자리에서 북러 정상회담 결과를 전해들을 것으로 전망된다.
속내 복잡한 중국, 북한 향한 무언의 경고 메시지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아시아 담당 부소장은 "김정은과 푸틴 간 회복된 축은 중국에 딜레마를 안겨준다"면서 "북러 관계 개선은 중국으로 하여금 (북중 관계) 단절을 피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더 긴밀한 관여를 추구하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시말해 러시아를 이용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협상력은 키우는 것이 북한의 목적인데, 북한과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중국은 이를 알면서도 이런 구도에 말려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소위 '왕따'나 다름없는 북한과 러시아의 위험한 동거를 중국 역시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일부 고위관계자는 지난 14일 "과거 상호 의존성이 전혀 없었던 냉전과 달리 지금 중국은 국제사회에 한 발 담그고 있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중국이 적극 가담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중러 구도를 블록처럼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통상적인 논평조차 없었다는 것은 북한이 중국을 우회한 것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중국 입장에서는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따져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북러의 밀착을 바라보는 시선이 복잡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그동안 북한에 대해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영향력 행사해왔는데, 이번에 북한이 러시아를 끌여들어 중국과 러시아를 경쟁시키는 모양새가 됐다"라며 "중국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일 것이고, 무언의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