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에 그려진 좀비들은 자본과 권력을 가진 이들과 그것에서 소외된 이들이 나뉘는 공간에서, 평범한 자들이 끝없이 몰려드는 좀비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생존해 나간다. 그리고 좀비의 출현 배경에는 어김 없이 거대한 자본과 권력, 인간의 탐욕이 결탁돼 있다.
그 틈새에 복합 서사 작품이 등장한다. 국내 최대 규모인 '2016 대학만화최강자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모코넛 작가의 작품 '미시령'이다. 국궁 훈련을 위해 떠난 고등학생들이 강원도 고성과 인제를 잇는 해발 826미터 미시령 고개에서 의문의 좀비떼를 만나고, 목적지인 한 제약회사 연구소 내 국궁 수련장으로 향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2017년 6월부터 네이버웹툰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몇 번의 짧은 휴재와 연재를 반복하다 2019년 6월 98화 이후 장기 휴재에 들어가며 독자들의 의문을 샀다. 이후 뇌경색으로 인한 치료를 위해 휴재한 사실이 알려지며 작은 논란은 잊혀져 갔다.
올해 2월 모코넛 작가의 복귀와 함께 재연재 소식이 전해지며 '미시령'을 애독했던 독자들의 관심이 다시 몰렸다. 공백기 때문인지 화풍이 다소 바뀌고 스토리라인이 정비되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내년 3월 '미시령' 완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모코넛 작가는 주인공 강산의 본격 활약과 주변 인물들의 비밀을 풀어가며 긴장감을 높여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년 공포힐링을 테마로 한 새 작품 계획도 예고했다. 노컷뉴스 [만화iN]이 모코넛 작가를 만나 근황과 계획을 들어봤다.
웹툰 연재 중 뇌경색으로 장기휴재…3년 10개월여 만에 복귀
▷모코넛 작가 반갑습니다. 건강하신 거죠? 독자들에게 생존신고 해주세요.
네, 안녕하세요.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몸은 많이 회복됐어요.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몸도 마음도 회복해가고 있어요. 요즘은 '미시령'의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뇌경색이 온 거죠? 결국 마감에 맞춰 밤낮 없이 만화를 그리는 혹사 때문인가요?
연재와 동시에 직업 작가가 되다보니 어느 순간 만화 그리기를 즐기지 못했죠. 제가 감당하기 힘든 스토리라인 전개와 독자분들의 화난 댓글, 마감의 압박이 신인이었던 제 스스로가 감당하지 못하고 자신을 혹사시켰던 게 원인인 것 같아요. 첫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이 있었거든요. 공모전 출전을 위해 '미시령'을 기획하면서 주변에서 응원해주고 기대가 컸지만 돌아보면 그게 저의 맹점이었어요.
공모전에는 승강전(승격과 강등을 결정짓는 승부) 단계별 1화의 작품을 제출하면 됐는데, 우수상 수상 이후 네이버웹툰에 60화를 목표로 장기연재에 들어가면서 의도와 다르게 꼬이기 시작했어요. 스토리 능력이 부족했던 거죠. 새로운 인물이 갑자기 추가되고 스토리는 다시 80화, 90화로 늘어가면서 독자분들의 비판도 많아졌고 끝을 내야 하는 마감일자도 부담이 되기 시작했어요. 작업은 밤을 새기 일쑤였고요.
그러던 중 오른쪽 얼굴과 팔에 마비가 온 거예요. 어머니가 간호사셔서 물어봤더니 뇌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서둘러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병원에서 MRI 검사 결과를 듣는데 이미 전에도 한 번 뇌경색이 있었던 거예요. 젊다보니 증상은 왔는데 모르고 지나간 거죠. 병원에서 심각해질 수 있다고 해서 회복을 위해 장기휴재를 결정하게 된 거죠.
▷대학만화 공모전을 통해 등단했는데, 원래부터 만화·웹툰을 진로로 정한 건가요?
어릴 때부터 만화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서울예대 영화연출학과에 들어갔어요. 만화가 너무 하고 싶어서 전국의 만화학과에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어요. 그 중에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해서 이것도 어떨까 해서 지원한 게 서울예대 영화연출이었는데 막상 들어가니 제 생각과 너무 다르고 적성에도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뒀죠. 만화는 계속 하고 싶은데 집에서 반대가 너무 심했어요. 어머니가 간호사신데 좀 유명한 조산사로 활동하시거든요. 그래서 쫓겨나다시피 필리핀 간호대학으로 유학을 가게 되는데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려다 보니 수업도 빠지고 태블릿과 노트북 들고 매일 만화를 그리러 다녔어요.
그러던 중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한국에 들어오게 됐는데, 부모님이 아예 귀국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럼 내친김에 하고 싶었던 일본 출판만화를 해야겠다 생각해서 다시 대학에 지원해 일본어학과에 들어갔는데 졸업하는 해에 동일본대지진(2011년 3월 11일)이 터진 거예요. 일본으로 가야 하는데 부모님이 결사 반대하고 여권도 찢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못 가게 됐죠.
이후로는 기성 만화 작품을 기반으로 2차 창작을 하는 '동인 활동'을 했어요. 책도 내고 놀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다보니까 일도 하고 돈을 벌어야겠는 거예요. 네이버웹툰에도 들어가고는 싶은데 등용문이 너무 좁더라고요. 제 성격이 급하다보니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것을 좋아해서 방법을 찾아보니까 공모전 밖에 없더라고요. 네이버웹툰이 주최하는 대학만화공모전에 나가기 위해 청강문화산업대에 편입해서 준비를 했고, 치열하게 준비한 덕에 2016년 대학만화공모전에서 3등(우수상)을 한 '미시령'이 탄생한 거죠.
▷'미시령'에는 생경한 소재가 등장해요. 바로 국궁인데, 전통 활을 주요 무기로 등장시킨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원래 우리 문화, 역사물을 좋아해요. 즐겨봤던 영화 '괴물'이나 웹툰 '우리 학교는' 등에서는 서양궁이 등장해서 주요 무기로 활약하는데, '우리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을 했죠. 예전에 취미로 국궁을 접한 적이 있어요. 아주 매력적인 무예인데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기마술도 배우고 싶어서 알아보기도 했죠. 일본 만화에서는 주로 칼(일본도)이, 서양에서는 총이나 서양 활이 주로 등장하는데 국궁의 살상력도 대단하거든요. 마침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국궁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줬고 고증도 매우 뛰어나더라고요. 활은 총포·도검과 달리 일상에서 휴대가 가능하고 미디어에도 잘 노출되지 않아서 첫 작품에 꼭 쓰고 싶었어요. 활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량을 필요로 하니 '미시령'에서는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부터 훈련해 온 것으로 설정했어요.
할머니가 강원도에 사셨는데 어린 시절 할머니댁에 가려면 늘 차를 타고 미시령 고개를 지나야 했어요. 울창한 산세와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 길이 어린 시절부터 기억에 많이 남아 있었어요. 워낙 길이 험하다보니 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길 중간 중간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공간이 있었는데 미시령에서 사고로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향이나 국화 등이 늘 놓여 있는 것을 보며 어느 순간 안타까우면서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죠. 험준한 산세와 억울한 죽음이 주는 분위기, 또 '미시령'이라는 어감 자체가 아포칼립스나 공포, 좀비물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제목으로 선택했죠.
그리고 '미시령'(彌矢嶺)의 '시' 자가 화살 시(矢)자라는 것을 아세요? 명칭에 화살 시(矢)가 들어가 있는 정확한 이유는 찾지 못했지만 산세가 화살처럼 날카롭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어디서 어렴풋이 봤던 것 같아요. 국궁을 하는 학생들이 험준한 산을 타며 활로 좀비를 처치하는 이미지와도 연결되고요.
▷'미시령'이 공모전 수상을 한 작품이다보니 기대치가 높았어요. 그런데 독자들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요?
사실 경험 부족이죠. 제가 스토리에 약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거죠. 대학만화공모전은 승강 단계별로 1화씩 제출면 되기 때문에 기획했던 초반 내용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준비를 했으니까요. 60회를 계획으로 연재를 시작했는데 회차가 늘어날수록 스토리를 잡지 못하고 내용이 난해해지고 복잡해지는 상황으로 가더라고요. 스트레스도 받게 되고, 대학에서 함께 준비하던 초반과 달리, 뒤로 갈수록 혼자 힘으로 스토리와 작화를 해내야 하니 스텝이 꼬인 거죠.
스트레스와 스토리에 쫓기다보니 작화를 하는 시간이 부족해져서 밤을 새기 일쑤였고요. '미시령'이 수요웹툰인데 요일웹툰 중에서는 수요웹툰이 가장 인기가 있는 요일웹툰이거든요. 조회수가 많고 그만큼 작가들의 수익도 늘어나는 요일이다보니 독자들 반응에도 영향을 많이 받게 되더라고요. 아마도 그런 스트레스가 쌓여 제 마음과 육체의 병을 키웠던 게 아닌가 싶어요. 더불어 취미 작가와 프로 작가의 차이를 크게 깨달았던 시간이었어요.
▷3년여 만에 복귀를 했어요. 올해 2월부터 재연재를 시작한 '미시령'의 꼬인 실타래는 어떻게 풀려갈까요?
초기 스토리 전개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주인공인 '강산'을 너무 아껴뒀던 것 같아요. 좀비의 탄생이 결국 생명연장을 위한 실험에 의한 것이라는 줄거리가 나와줬고, 앞으로는 강산의 액션과 활약이 도드라질 예정입니다. 지금 연재중인 '발이부중(發而不中)' 편이 휴재 이전 복잡한 스토리를 정리하는 과정이었다면, 이 다음 편인 '반구저기(反求諸己)'에서는 '미시령'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핵심이 담길 예정이에요.
▷그림체가 다소 바뀌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뇌경색 이후에 원래의 제 선이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후유증이랄까. 그래서 그림체가 달라졌다고 느끼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회복이 빨라지고 있어요. 재연재를 시작하면서 스토리를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지도 생기고 마감도 심리적 영향을 주다보니까 정말 열심히 그리는데, 이게 재활효과를 주더라고요. 안 쓰던 근육을 다시 쓰다보니까 점차 제 그림체로 빠르게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많은 창작자들 사이에서 기대와 우려로 논란이 일고 있는 인공지능(AI)에 대해 모코넛 작가는 어떤 입장인가요?
전혀 상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제 저작물과 그림체가 도둑질처럼 무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가 있지만, AI를 활용해 제 아이덴티티가 있는 그림을 만들 수 있다면 수작업의 노동강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밤새는 것과 같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AI 활용이 순수 창작이냐는 지적도 있지만 100% 완벽한 창작이 있을까요? 챗GPT가 완벽한 결과를 내놓는 것은 아니잖아요. AI도 인간의 유산을 학습해서 만들어내는 거예요. 이것은 창작자나 작가들이 자신의 경험과 농축된 그림체, 사상, 스토리를 짜서 입력하면 AI가 원하는 방향으로 스토리와 그림을 생성하고 완벽하지 않은 것을 작가가 원하는 대로 첨가하고 수정합니다. 이처럼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더해진다고 볼 때 이를 단순히 '쩍어내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일단 네임밸류가 달라지죠. 적어도 대표 웹툰 플랫폼의 작가라는 타이틀이 있다보니 주변에서 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고, 아무래도 수익적인 측면에서도 과거와 달리 만화를 그리면서 어느 정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겠죠. 물론 작가마다 계약 조건이나 환경이 다르니까 평균을 내기는 어렵지만 좋아지고 있다고 봐요.
아쉬운 점이라면, 플랫폼은 아직 웹툰이라는 상품을 잘 유통하고 시장에서 좋은 결과물을 얻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요. 플랫폼에도 웹툰과 작가를 챙기는 편집자들이 있지만 일본 출판만화시장의 편집자들과 달리 작품에 대해 깊게 대화하거나 작가의 작품 활동에 대한 케어는 기대하기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늘 허들을 만날 때마다 대형 플랫폼의 작가여도 스스로 그 허들을 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일본 출판만화 업계는 편집자들이 작가들과 동거동락하다시피 매니지먼트를 하거든요. 그게 기술과 콘텐츠 생산과 유통의 한 축으로서 웹툰 환경이 가진 아쉬움이 아닐까 싶어요.
플랫폼 편집자나 직원분들은 작가들의 창작 활동 외에 자신들의 일로 늘 바빠요. 늦은 시간이나 주말에는 제 스스로 필요한 상황이 있어도 연락을 하지 않게 되고, 서로 작품에 대한 유대감을 키우는 게 쉽지 않거든요. 작가들이 다양한 고민, 즉 자신의 작품에 대한 마케팅이나 홍보, 법적인 문제, 작품의 방향성, 연재와 관련된 여러 사항들을 가지고 함께 풀어가는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시령' 이후의 작품 계획은 무엇인가요?
내년 3월 정도면 '미시령'을 완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재 두 가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데, 첫 번째로 저의 가장 약한 고리인 스토리텔링을 강화하려고 해요. 제가 스토리 작가로 나서 그림 작가와 협업하는 '공포힐링' 장르를 준비하고 있어요. 현재 3화까지 스토리 콘티가 나온 상태입니다.
또 하나는 웹소설을 연재할 예정이에요. '미스터리 판타지' 장르를 준비 중인데 웹소설로 스토리를 탄탄하게 만들고 이를 만화화 하는 노블코믹스 프로젝트에요. 불가의 '7대 지옥'을 뼈대로 한 미스터리 판타지 현대물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웹툰 지망생들에게 응원을 해준다면요?
제가 경험해 보니까 만화를 그리는 입장에서 엉덩이 근육도, 육체도 중요하지만 마음 근육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더라고요. MBTI 중에 부디 'T'이신 분들이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F이신 분들을 보면 댓글에 쉽게 상처받고 어떤 경우엔 같이 연재하는 작가를 한 명도 모르는 경우도 계시더라고요. 진짜 대중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웹툰은 정신적인 면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회복력도 빠르고 덜 스트레스 받는 T이신 분들이 웹툰을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저도 T에요. 복귀 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