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다 어디로"…죽음의 농장, 배짱 사육에 화성시 '골치'

도살 등 동물학대 적발된 화성 농장
출입 제한…곳곳에 도살 흔적 포착
배설물 쌓인 '뜬장' 등 환경적 학대
당초 100여 마리→개체 수 급격히↓
A씨, 수사·송치에도 개 분리조치 거부
동물단체 "즉각 분리·보호, 재발 방지"
화성시, 농장주 소유권 주장에 골머리
A씨 "남의 사유재산까지 침범하느냐"

A씨가 운영하는 경기 화성시 내 사육농장 우리에 개 한 마리가 갇혀 있는 모습이다. 이른바 '뜬장' 아래에는 수북이 쌓인 배설물들이 굳어 있다. 박창주 기자

지난 13일 오전 11시쯤, 경기 화성시 매송면의 한 농가 진입로에는 붉은 글씨로 '개고기'라고 적힌 찌그러진 간판이 내걸려 있었다.
 
마을회관 인근까지 들어서자 대형 드럼통과 플라스틱 상자로 가로막힌 허름한 단층 건물이 눈에 띄었다. 벽면과 지붕에는 개고기 문구와 연락처가 적혀 있고, 사방이 철제 패널로 가려진 철옹성의 모습이다.
 
벽에는 '출입금지', '대한육견협회' 등의 문구가 새겨진 경고문이 붙었고, 지붕 모퉁이와 마당 등 서너 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카메라는 모두 건물 바깥을 향하고 있었다.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 기자가 연달아 "계세요"라고 불렀지만, 개 여러 마리가 짖거나 깨갱거리는 요란한 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농장 입구 쪽에 마련된 밀실에는 개를 도살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장비들이 널브러져 있다. 박창주 기자

담장 틈새로 보이는 두 평 남짓한 밀실에는 골절용 절단기와 거뭇한 아이스박스 서너 개, 도끼와 부엌칼 등이 놓여 있었다. 나무도마에는 얇게 파인 자국이 수두룩했고, 주변 콘크리트 바닥은 군데군데 검붉게 얼룩진 상태였다.
 
개 짖는 소리를 따라 건물 뒤편으로 다가서자 코를 찌르는 쾨쾨한 냄새가 풍겨왔다. 슬레이트로 뒤덮인 대형 사육장이다. 가림막 앞에는 개를 도축해 사체를 걸어두는 성인 키 높이의 쇠고리가 세워져 있었다.
 
까치발을 들고 들여다보니 수십 개의 녹슨 케이지(우리)가 오와 열을 맞추고 있었다. 바닥이 50㎝가량 떠 있는 이른바 '뜬장' 아래에는 수북이 쌓인 배설물이 검게 굳어 있다. 상당수 우리가 텅 비어 있는 가운데, 드문드문 갇혀 있던 개들은 비좁은 우리 안을 쉼 없이 맴돌았다.
 
마을주민 최모(남·60대)씨는 "개를 전기로 죽이고 불로 태우는 모습을 봤었는데, 요샌 개들이 많이 안 보인다"고 했고, 김모(여·80대)씨는 "냄새나고 개들 짖는 소리 때문에 못 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빗장 걸어 잠근 농장주, 그 많던 개들은 어디에

 
A씨의 개 사육농장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된 동물보호단체의 임시 초소. 박창주 기자

화성지역의 한 개 사육농장에서 참혹한 동물학대 행위가 적발되면서, 나머지 개들에 대해서도 도살과 열악한 시설환경으로부터 긴급 구조해야 된다는 지적이다.
 
14일 CBS 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화성시는 지난 7월경 민간 동물보호단체 등의 민원을 접수해 야목리 내 개 사육농장에서 발생한 불법 도살 현장 등을 적발했다.
 
시는 농장주 A씨가 개를 도살하는 등 학대 사실에 대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화성서부경찰서에 고발 조치했다.
 
또 시는 동물학대 등이 적발될 경우 농장주로부터 개를 보호하기 위해 격리할 수 있다는 내용의 경고성 공문을 농장시설에 부착했다.
 
이어 8월에는 정명근 화성시장이 직접 나서 거듭 현장을 점검했다. 당시 시가 잠정 집계한 해당 농장의 사육 개체 수는 100여 마리였다.
 
이후 A씨 사건은 개 한 마리의 사체에 대해서만 경찰 수사를 거쳐 검찰로 넘겨진 상태다.
 
이처럼 수사가 마무리돼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더 큰 문제로 남은 개들에 대한 보호조치 여부가 지목되면서 논란이 새 국면을 맞는 양상이다.
 
A씨가 소유권을 앞세워 분리조치를 거부하고 지자체 공문을 폐기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것.
 
외부인 출입마저 차단해 사육 두수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농장 내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 개들이 어떻게 처분됐는지 행방을 놓고도 의문이 더해지고 있다.
 

동물단체 "남은 개들도 피학대"…'즉각 분리' 촉구

 
개들을 가두는 케이지 아래에 배설물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

이에 동물보호단체 측은 수십 년간 농장주가 개를 사육해오면서 도살을 반복해온 점을 감안해 시를 상대로 나머지 개들에 대한 즉각적인 분리조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동물권혁명 캣치독팀은 12일 보도자료를 내고 "도살 현장을 적발하고도 도살자가 100여 마리 개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시 보호소로 이송하지 않았다"며 이 같이 밝혔다.
 
동물보호법(제34조)상 지방자치단체장은 소유자 등으로부터 학대를 당해 치료와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동물을 격리해야 하는 규정이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취지다.
 
특히 직접적인 폭력이 목격되지 않더라도, 도살의 반복성과 사육시설의 위생·구조·환경적 측면에서의 학대 정황이 확인된 만큼 최초 적발 시 분리조치를 했어야 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나머지 개들에 대해 조속한 보호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지자체장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시를 압박하고 있다.
 
캣치독팀 정성용 총괄팀장은 "학대 피해 동물에 대한 격리 조치는 학대자의 소유권보다 우선하는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의무"라며 "학대를 멈추지 않은 농장주의 문제가 크지만, 개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지자체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화성시, 보호대책 고심…농장주 "재산 침범 말라"

 
지난해 7월 A씨가 농장 내에서 개 한 마리의 사체를 손질하고 있다. 도살 직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독자 제공

화성시는 농장주가 개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강제력을 동원해 격리·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보호소 이송을 권고하고 있지만 A씨가 완강히 거절하고 있다는 것.
 
다만 시는 시흥시 등 개농장 학대 논란이 불거졌던 인근 지자체들의 사례 등을 참고해 적절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화성시 관계자는 "농장주가 시청까지 찾아와 고성을 지르는 등 워낙 강경하게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개들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며 "타 지자체 사례들을 분석하고 현재 농장의 사육 여건 등 학대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들을 종합적으로 확인해 보호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농장주 A씨는 남은 개들에 대한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며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적발된 도살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이후 추가 도살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대부분 개체를 외부에 판매해 남은 개가 몇 마리 되지 않는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사육은 하는데 도살은 하지 않는다"며 "개들을 대부분 팔아 몇 마리 남지 않았고, 계속 다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과거부터 도살해온 것은 사실이냐는 질문에는 "30년 동안 팔아 왔던 것은 맞다. 이런 저런 사항들(불법 사항 등)을 모르고 해왔다"면서도 "내가 팔고 싶으면 파는 것이다. 왜 남의 사유재산까지 침범하려고 하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한편, 최근 화성 내 또 다른 지역(팔탄면)에서는 개 번식장에서 심각한 동물학대 현장이 적발돼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허가 조건보다 1천 마리나 많은 개가 좁은 공간에 방치돼 있었고, 냉동고에는 신문지에 쌓인 개 사체가 100구가량 발견됐다. 갇혀 있던 개들은 긴급 구조됐다.
 
시는 번식장 대표를 동물보호법과 수의사법 위반 혐의로 지난 4일 경찰에 고발하는가 하면, 재발 방지를 위해 '반려동물 영업장 특별점검'을 이어가고 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