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구청에서 생계 문제를 호소하다 난동을 부린 90대 참전용사가 결국 경찰에 붙잡혔다. 근로 능력을 잃은 유공자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법을 어기는 행위까지 저지르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 맞춤형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1일 오전 10시 20분쯤 부산 해운대구청을 찾은 한 노인이 기초생계급여가 들어오지 않았다며 공무원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담당자는 확인 결과 급여 지급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노인은 오히려 소리를 지르며 욕설까지 퍼부었다. 급기야 구청장실을 찾아간 노인은 지팡이를 휘둘러 기물까지 파손했다.
1시간가량 소동이 이어지자 구청은 경찰에 이를 알렸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말렸지만 노인은 계속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출동 여경과 신체 접촉까지 일어나자 경찰은 결국 노인을 강제추행 현행범으로 붙잡았다.
소동을 일으키다 경찰에 붙잡힌 노인은 90대 참전용사 A씨로 확인됐다. 해운대구와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의료비 증가 등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처지에 놓였다. 매주 구청과 주민센터를 방문해 "나라를 지켰던 사람인데 지원금이 제대로 안 들어온다"는 등 생계 문제를 호소하며 소동을 일으키기를 반복해 왔다.
A씨는 경찰에 붙잡힐 당시에도 생계급여가 적게 들어왔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담당자가 확인한 결과 기초연금과 보훈수당이 소득으로 인정돼 급여가 줄어들었고 이를 이해하지 못한 A씨는 계속 급여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따진 것으로 파악됐다.
해운대구청 관계자는 "민원인이 찾아올 때마다 원칙적인 안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니 계속 찾아와 민원을 제기하고 소동을 일으키기를 10년째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계기관은 국가 유공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근로 능력을 상실하고, 이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A씨가 이처럼 악성민원인이 돼 경찰에 붙잡힌 데에도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생활고에 시달리던 국가유공자가 결국 범죄를 저지르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금정구에서는 80대 유공자가 생활고 끝에 마트에서 반찬거리를 훔쳤다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보훈당국은 유공자 가운데 저소득자에게는 생활조정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부산지역 생활조정수당 수급자는 379명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실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유공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공자가 직접 저소득을 증빙하고 지원을 요청해야 하고 수당을 신청하더라도 소득구간 등 내부 기준에 따라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보훈청 관계자는 "보훈급여 등 금전적인 지원은 계속 이뤄지고 있지만 참전유공자 대부분이 고령층으로, 근로 능력을 상실하거나 활동에 제약이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며 "국가유공자에 대한 취업 보호나 교육적인 지원도 있지만 고령의 참전용사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손지현 교수는 "90대 노인이 구청을 직접 찾아간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언제든지 다른 형태로도 등장할 수 있는 사례인 만큼 국가유공자에 대한 단순한 비용 지원뿐만 아니라 맞춤형 관리 등 적절한 돌봄이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