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에 대표적인 이명박(MB)계 인사인 유인촌 대통령실 문화체육특보를 지명했다. 앞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등과 함께 이른바 'MB맨'들의 귀환이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인재풀의 한계와 국정의 과거 회귀를 보여준다는 우려의 시각이 나오는 가운데, 대통령실은 연륜과 전문성, 책임성 등을 인사에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가진 2차 개각 관련 브리핑에서 유 후보자 지명을 발표했다.
김 실장은 인사 배경에 대해 "문화예술 현장에 대한 이해와 식견뿐 아니라 과거 장관직을 수행할 만큼 정책 역량도 갖췄다"며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K-컬쳐의 한 단계 높은 도약과 글로벌 확산을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유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에 임명돼 2008~2011년 약 3년간 재직하는 등 대표적인 MB계 인사로 꼽힌다.
공직에서 내려온 뒤 연극 무대로 복귀했다가 장관 시절 업무 추진력 등을 인정 받아 지난 7월에는 대통령 문화체육특별보좌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유 후보자 지명을 두고 당장 야권에서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유 후보자는 과거 막말과 문화예술계 인사 탄압을 자행한 장본인으로서 후안무치한 재탕후보의 전형"이라며 "정부가 정상인가"라고 반문했다.
반면 여당에서는 연륜과 문화예술계 이해도를 내세웠다.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유 후보자는 오랜 시간 동안 예술인으로 활동하며 문화예술계 환경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며 "과거 2008년에도 같은 부 장관을 역임한 바, 연륜을 바탕으로 K-컬쳐의 번영에 기여할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 후보자 지명으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인사에 이어 MB 정부 고위직 출신을 중용하는 인사가 이번에도 반복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 후보자가 임명된다면 국무위원 중 MB 정부 장관 출신은 두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지난 7월 임명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경우에도 MB 정부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을 지낸 바 있다.
이러한 인사 배경으로는 '인재풀' 부족이 지목된다. 윤 대통령의 정치 경험이 짧은 만큼 믿고 맡길 만한 인재가 많지 않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은 줄곧 검사로 지내다가 2021년 7월 국민의힘에 입당해 지난해 3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치에 입문할 무렵부터 MB정부 인사들이 도왔고 인재를 추천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통령실 고위 인사들도 MB정부 출신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이미 어느 정도 검증이 이뤄졌고 경험과 연륜이 있다는 점과 함께, 상대적으로 박근혜 정부 출신 인사들이 '국정농단' 수사 등으로 다수 형사 처벌을 받아 등용이 어렵다는 점도 배경으로 분석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실제 장관 인재풀이 부족한게 사실이다. 능력있고 신망있는 사람들은 장관직을 고사하는 경우가 많아 청문회를 통과할 만한 후보자를 찾기가 정말 쉽지 않다"고 했다.
여권 내에서는 일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여론의 시각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재탕 인사로는 새로운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며 "이런 인사가 계속되면 감동도 없고 여론만 싸늘해진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도 "총선을 앞두고 정무적인 고려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모양새가 좋지않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이미 인사가 정해진 만큼 여당 입장에서 뒷받침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명박 정부 인사들의 중용이 두드러져 개혁과 거리가 먼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과거 정부의 한번 몸을 담았다, 안 담았다 그건 크게 저희 정부에선 기준이 아니다"라며 "전문성, 책임성을 갖고 현재 그 자리에서 역사적 소명을 다할 수 있느냐를 집중적으로 봤다"라고 설명했다.
유 후보자 임명에 눈길이 쏠리는 만큼 여야는 청문회장에서 격돌할 것으로 보인다. 재탕 인사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논란도 충돌 지점으로 예상된다.
유 후보자는 2008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도중 기자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해 논란을 일으키고, 장관 재직 당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문화예술인을 관리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유 후보자는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그런 리스트는 없었다"고 반박한 바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한 여당 의원은 "이미 문체부 장관 경험이 있고 오랜 기간 문화예술 현장의 경력을 볼 때 누구보다도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며 "개인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민주당이 문체위 위원장인 시절에 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되었기 때문에 야당이 무리한 발목잡기가 아니라면 이번에도 당연히 보고서가 채택되어야 한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유 후보자는 지명 발표 직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가장 중요한 국민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가 하는 데 대해 문화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모든 답이 현장에 있다. AI(인공지능)나 챗봇처럼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는 현장을 빨리 쫓아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개각은 윤 대통령 취임 후 두 번째로, 국방부 장관 후보에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에 김행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각각 지명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