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자켓을 좀 벗고 해도 될까요?"
11일 낮 기자설명회장에 나타난 오세훈 서울시장이 "매우 뜻 깊은 자리이고, 야심찬 준비"라고 운을 띄운 뒤 자켓을 벗고 단상에 올랐다. 와이셔츠 소매는 이미 걷어붙인 상태였다. 무언가 각오를 하고 나온 모습이었다.
이날 오 시장이 '야심차게' 꺼내 든 카드는 '기후동행카드'. 한 달에 6만5천원을 내면 지하철과 시내버스, 마을버스, 공공자전거인 따릉이까지 무제한 이용이 가능한 새로운 개념의 교통카드였다. 나중에 한강 리버버스와 UAM 등 새로운 교통수단을 환승하는 것까지 염두에 뒀다는 설명이 잇따랐다.
표본은 독일의 '도이칠란트 티켓'. 49유로, 우리 돈으로 월 7만원 정도만 내면 전국의 지하철과 버스, 트램 등 모든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하다. 앞서 3개월 짜리 '9유로 티켓' 실험으로 큰 호응을 얻은 독일 정부가 가격을 현실화해서 내놓은 무제한 정액권이다.
오 시장은 "(기후동행카드) 정책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게 해준 것은 (독일에서) 100만 명의 승용차 이용자가 대중교통만 이용하기 시작했다 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기후동행카드가 독일의 사례처럼 승용차 운행 대수를 줄여 온실가스를 저감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이름에 '기후'가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요금 절감효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온실가스 감축 등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유도했다면 가장 아쉬운 부분은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으로의 확장이 아직 불투명하다는 점이었다.
수도권의 교통체계는 환승할인 체계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데.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한 무제한 환승은 서울 안에서만 가능한 개념이라 대중교통 이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 시장 또한 "수도권은 교통에 관한 한 한 묶음이다. 다른 지자체와의 연계가 절실하다"면서 "(시범사업까지 남은) 4개월 동안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거쳐 함께 시작할 수 있다면 더 많은 편익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경기와 인천의 동참을 호소했다.
그는 "(경기도와 인천시 실무자들의) 반응이 부정적이지는 않았다고 보고 받았다"고 말했지만, 기후동행카드 발표 직후 경기도와 인천시는 '서울시가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내년 초 시범사업 시작 전에 수도권 지자체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다.
더구나 정부와 여당이 교통할인 정책인 'K패스'를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고, 지자체들도 여기에 맞춰 교통정책을 짜고 있는 상황과도 겹친다.
K패스 사업은 지하철, 버스를 한 달에 21번 이상 이용한 사람에게 교통비의 20~53%에 해당하는 금액을 환급해주는 정책이다. 원희룡 장관이 이끄는 국토부가 내년 예산에서 516억원을 배정한 핵심사업 중 하나다.
기후동행카드가 시범사업을 거쳐 본격 시행에 들어가는 시기는 내년 7월, K패스가 시행되는 시기와 겹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원희룡의 K패스와 경쟁을 선언한 셈이다.
오 시장은 K패스와의 경쟁을 애써 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오 시장은 "정책간의 선의의 경쟁이 이뤄짐으로서 무엇이 시민들에게 더 편익을 제공할 것이냐로 판가름 날 것"이라며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기후동행카드가 더 많은 편익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토부의 입장이 썩 호의적이지는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경기도와 인천 등 인근 수도권 지자체의 반발은 물론, 국토부 등 정부와의 마찰은 예상됐던 것이고, 이를 감수하기로 하고 발표는 강행된 셈이다. 자켓을 벗어던지고, 소매를 걷어붙인 서울시장 오세훈의 승부수는 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