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대령)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항명 혐의 논란과 관련해 야당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추가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령 측과 더불어민주당, 군인권센터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공수처와 경찰에 관련자들을 고발했지만 어디에도 해병대 사령관 등은 포함되지 않았었다.
박 대령 측은 지난달 23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일 비슷한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하며 대상을 유 관리관과 김 단장 외에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신범철 차관, 대통령실 주요 관계자(성명불상)로까지 넓혔다.
앞서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도 지난달 18일 임성근 해병 1사단장 등 8명을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지만 여기에도 김계환 사령관 등 해병 지휘부는 빠졌다.
이들에 대한 고발 계획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김 사령관과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은 사건의 열쇠를 쥔 핵심 인물이란 점에서 고발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
김 사령관은 이종섭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를 박 대령에게 하달하는 역할을 했고, 정 부사령관은 이 장관의 대면지시를 김 사령관에게 전달했다. '외압'과 '항명'의 실체적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다.
민주당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도 이런 측면을 고려해 고발을 검토했지만 진실 규명의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고심 끝에 제외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김 사령관이 처음에는 박 대령을 나름대로 보호하려 한 흔적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명예를 중시하는 해병대 수장을 처음부터 법적으로 압박할 경우의 역효과도 감안됐다.
하지만 김 사령관의 지시 하에 정 부사령관이 해병대 수사단 간부들에게 정신교육을 한 사실이 알려진 지난 6일 이후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해병대는 "애로 및 건의 사항을 수렴한 것일 뿐 다른 방향이나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지만, 동요하는 수사단 분위기를 다잡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군 내에선 김 사령관이 박 대령의 개인적 일탈로 사건을 축소하고 매듭지으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해병대 주요 참모들도 박 대령이 일방적으로 회의 분위기를 몰아갔다고 공통적으로 진술함으로써 박 대령을 고립시키는 데 협조했다.
실제로 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에 따르면 김 사령관의 진술은 1차 때와 달리 2차, 3차 진술로 갈수록 박 대령에게 불리한 쪽으로 바뀌었다.
예컨대 김 사령관은 1차 진술에서 "피의자에게 이첩 보류 지시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2차 진술에선 "이첩 시기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기억이 명확하지 않아서 오늘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차 진술에선 "장관님으로부터 7.31 기록 송부 보류 지시를 받고 그 이야기를 그 날도 하고, 그 다음날도 하고, 기록 송부 보류에 대해서 명확하게 수차례 지시한 것도 맞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구속영장은 결국 기각됐다. 여기에는 김 사령관이 '이첩 보류' 지시와 관련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 1차 진술이 신빙성 있고 2,3차 진술은 오염된 것으로 보인다는 변호인 측 논지가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은 김 사령관 등의 행보를 좀 더 지켜본 뒤 공수처 수사 상황을 감안해 추가 고발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 초기 단계에서 국방부 간부 2명만 공수처에 고발했던 박 대령 측도 전반적 추이를 보며 전선 확대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