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장사 나간 사이…" 화마에 창문 매달린 일가족 참변

창틀에 1∼2분 버티다가 7층서 추락…사위·장모 숨지고 3살 아들 중상
과일 장사로 생계 이어가던 다문화 가족, 장모는 육아 돕고자 한국 방문
평소 팔다 남은 과일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도…이웃들 "불쌍하고 안타까워"

연합뉴스

"베트남인 엄마가 시장에 과일 장사하러 간 사이에 불이 나고 만 거예요. 산 사람도 돌아가신 사람도 불쌍해서 어떡합니까…."

10일 오전 전날 발생한 화재로 현장 감식이 한창인 부산 부산진구 한 아파트에서 30대 김모씨는 검게 변해버린 화재 현장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화재가 난 집의 아래층에 사는 그는 "(이번에 사망한) A씨와 서로 힘들 때 술 한잔 기울이며 평소 돈독하게 지냈다"며 "A씨는 새벽부터 일해 피곤할 법한데도 항상 성실하게 사셨던 분인데, 이런 일을 당해 너무 황망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전날 오후 4시 18분께 이 아파트 7층에서 불이 나 베란다로 대피한 A(40대)씨와 아들(3세), A씨 장모(베트남·50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A씨와 A씨 장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고, A씨 아들은 크게 다쳐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이 아파트 주민 최모씨는 "펑펑 터지는 소리가 들린 뒤 비명이 들려 내다보니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아빠와 아들로 보이는 이들이 창틀에 매달려 있었다"며 "1~2분 정도 버티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너무 안타깝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주민들은 화마를 피하지 못한 이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정말 열심히 살던 가족"이라고 입을 모았다.

A씨와 베트남 국적의 A씨 아내인 B씨는 인근에 있는 시장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했다.

A씨가 새벽 일찍부터 농산물 시장에 가서 과일을 가져오면 B씨가 가게에서 팔았다.

이 부부는 이후 가게 장사로 바빠 어린 아들에게 소홀해질까 봐 베트남에 있던 A씨 장모를 한국에 모셔와 이곳에서 함께 지냈다.

사고 당일에도 평소처럼 새벽에 일을 마친 A씨가 아들, 장모와 함께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화를 당한 것이다.

김선옥(63) 개금3동 통장은 "이사 온 지 1~2년쯤 됐는데 장모도 그즈음 한국에 들어왔다"며 "어린 아기가 있어 부부가 힘을 합쳐 열심히 살아보려 했는데 이런 일을 당했다. 너무 안타까워서 밤사이 잠도 못 잤다"고 말했다.

70대 주민 정모씨는 이번 사고로 중상을 입은 어린 아들을 떠올리며 "손자가 많아 우리 집에 장난감이 많은데 A씨 아들이 자주 놀러왔다"며 "어린 아기가 인사성도 밝고 성격이 살가워 간식도 내어주고 귀여워했는데, 이런 큰 사고를 당하다니 너무 슬프다"고 눈물을 훔쳤다.

이 가족은 평소 가게에서 팔고 남은 과일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며 선행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져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같은 아파트 동에 산다는 80대 김모씨는 "장사를 마치거나 집으로 돌아올 때 아내인 B씨가 경비실이나 경로당에 꼭 들려 과일을 가져다주고는 했다"며 "베트남에서 낯선 타국으로 와 생활이 힘들 법도 한데 주변에 항상 선행을 베풀었다"고 회상했다.

현재 B씨는 아들이 입원한 병원과 모친, 남편 A씨의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을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합동감식을 진행한 부산소방재난본부와 부산진경찰서는 불이 난 집안 내부 모든 공간에 대해 화재 발생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당시 이들 가족이 불길이 커질 때까지 대피하기 어려웠던 부분에 대해서도 대피시설을 점검하는 등 추가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부산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감식하고 있어 화재가 발생한 이유와 장소를 예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 부산진구는 이번 화재로 피해를 본 아파트 주민 10여명에 대해 인근에 임시 숙소를 마련해 대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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