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말로만 거론되던 '한미일' vs '북중러' 신냉전 구도가 좀더 분명하게 색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미 정부 당국자 등을 인용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타 군사협력을 위해 러시아 방문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의 '전술핵공격잠수함'이 8일 오전 관영매체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세 나라의 연합훈련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지난 몇 년 사이 자주 거론되던 '신냉전'이 정상회담, 그리고 연합훈련이라는 형태로 본격화할지 주목을 받고 있다. 연합훈련까지 현실화된다면 '자주' 노선 하에 냉전 시대에도 중국 소련과 '가깝고도 먼' 관계를 유지해 오던 북한의 대외전략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는 셈이다. 그만큼 우리의 부담도 커진다.
'태평양함대 모항' 블라디보스톡서 북러정상회담 거론…연합훈련까지 논의?
NYT 보도에 이어 7일 일본 NHK 방송은 러시아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북러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조율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정상회담이 실제로 열린다면, 오는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문 일정이 잡혀 있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극동연방대학이 유력하다.
이 곳에선 오는 10-13일 러시아가 주도하는 동방경제포럼(EEF)이 열리며, 지난 2019년 4월에도 북러정상회담이 열린 바 있다. 정상회담 외에도 블라디보스톡에 과거 러시아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있었고, 아직 상당수 함정과 시설이 남아 있는 것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이 이 곳을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 사령부 자체는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 포키노로 이전했지만, 이 곳도 직선거리로 약 40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8일 북한이 공개한 '전술핵공격잠수함' 진수식 등 최근 김 위원장이 '해군무력'을 계속 강조하는 측면에서도 블라디보스톡에서 '추가적인 일정'을 소화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진수식에서 원자로를 사용하는 '핵추진잠수함' 개발을 계속할 것이라고 언급한 점을 생각해 보면, 북한 입장에서는 러시아에서 무기 개발 기술을 이전받을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할 포탄 재고 등이 떨어져, 서로 탄약이 호환되는 북한제를 필요로 한다. 물론 러시아가 북한에 어느 정도까지 기술을 넘겨줄지는 미지수다.
거의 같은 시점에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 3국의 '연합훈련'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4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난 7월 27일 북한의 자칭 '전승절(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 행사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중러 해상연합훈련을 공식적으로 제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정보위 여당 간사 유상범 의원이 밝혔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도 4일(현지시간) 소치에서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와 북한의 연합훈련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왜 안 되겠는가. 우리는 이웃"이라며 연합훈련이 '당연히' 논의되고 있다고 답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2017년까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로 인해 안보리가 제재를 가할 당시 두 나라 모두 동참했었다. 이제는 두 나라가 아예 열병식에 대표단을 보내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용인하는 데 이어, 연합훈련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형국이 된 셈이다.
연합훈련 안 하던 북 외교노선에 변화?…변수 많아 속단 이른 측면도
이러한 신냉전 구도는 오히려 냉전 시기의 북한 대외관계보다도 더 적극적인 측면이 있다. 당시 소련은 공산권 국가들의 '큰형님'이었지만 북중, 북소, 중소관계는 부침을 겪어 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1958년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8월 종파사건)과 1960년대 문화대혁명 등을 두고 갈등을 겪었던 북중관계, 1969년 국경 문제로 무력충돌까지 일어났던 중소관계 등은 동북아 공산권 3국의 이해관계가 냉전 시절에도 각자 달랐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체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북한의 '자주' 노선 또한 군사협력에 영향을 끼쳤다. 북중·북소간의 군사동맹조약인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과 '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은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을 포함하고 있지만, 북한에 중국군이나 소련군이 주둔하지는 않았다. 이는 남한에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것과는 명백히 다른 양태인데다, 북한은 다른 나라와의 연합훈련 자체를 하지 않는다.
때문에 정상회담에 이어 연합훈련이 열린다면 북한 최초의 공식 연합훈련이 되는 셈으로, 중러가 이미 '보스토크(동방)' 등의 이름으로 동서해 등에서 군함과 전투기 등을 동원해 연합훈련을 벌이고 있는 점을 감안해볼 때 결과적으로 3국의 결속 구도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를 필요로 하는 연합훈련이 현실화된다면 북한의 외교정책 측면에서도 일정한 변화가 생기고, 나아가 각 분야에서의 협력이 보다 다양화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다만 회의적 시각도 크다. 외교부 장호진 1차관은 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지금 러·북·중 밀착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워낙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식으로 굴러갈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지금 상황은 미중 경쟁에 따른 중국과 북한의 접근,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러시아와 북한의 교집합이 이런 식으로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본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에 대한 압도적인 영향력을 굳이 러시아와 나눌 이유가 없고, 러시아의 경우에는 북한에 대한 입장이 중국하고 많이 다르다"면서 "단적으로 지금까지 북한을 방문한 소련이나 러시아 국가 원수는 푸틴 대통령이 2000년에 간 것 딱 한 번이고, 보는 시각이 다르다"고 말했다. 북중러의 '삼각 밀착'에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의외로 걸림돌이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통일부 당국자도 7일 기자들과 만나 "중국의 입장에서는 북러간 밀착을 마냥 환영하기 어려운 입장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북러가 밀착하는 만큼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면서 대중 압박을 우려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러시아와 비교하면, 북중간에는 경제협력 분야에 좀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 않나 추정되는 측면이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러시아 대신 동북아의 맹주로 떠오른 중국의 셈법은 복잡하다.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한국을 압박하려던 강경책은 오히려 반중감정 등 반발을 낳았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과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는 방법을 택했고, 중국은 최근에서야 한국이 대중국 전선의 '선봉'이 되는 일을 막기 위해 다소간 유화책을 펼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중러 연합훈련은 한국을 직접적으로 자극할 수밖에 없기에 중국 입장에서는 부담이 적지 않다.
북러 연합훈련 한다면 무대는 동해…신냉전 '최전방' 현실화 우려
물론 북중러 차원은 아니라고 해도 북러 연합훈련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북러간의 협력은 경제보다는 군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우리 입장에서는 특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실제 훈련이 진행된다면, 북한의 형편없는 공군 전력을 감안해볼 때 동해를 무대로 한 해상 연합훈련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위원장이 '전술핵공격잠수함' 진수식 이전에도 최근 해군 동해함대를 방문해 순항미사일 발사를 참관하고, 선박용 디젤 엔진과 부품, 설비 등을 생산하는 북중 기계연합기업소를 방문해 '선박공업 발전'과 '해군무력 강화'를 언급한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순항미사일은 정밀유도가 가능하다는 특성상 대함미사일로도 운용되곤 한다.
서해에서 이미 13년 전 천안함 피격 사건을 겪었으며 최근엔 중국 해군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동해에서 그간 상대해 왔던 북한 해군뿐만 아니라 러시아 해군의 연합훈련까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되는 셈이다. 그만큼 군의 작전 부담은 커지고 정치적 위기도 더해질 수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보미 부연구위원은 '한미연합훈련(UFS) 관련 북한의 대응 특징' 이슈브리프에서 "만약 북한과 러시아가 해상 연합훈련까지 실시하게 된다면 추가적인 군사 능력과 외부의 지원으로 북한은 더욱 대담하게 무력도발을 벌이거나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맹국간의 연합훈련은 단기적인 군사력 균형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해주는 한편 서로의 모험주의적 성향을 억제할 수 있도록 만든다"면서도 "북한과 러시아는 현재 동맹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모험주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며,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공유하면서 관계가 강화되고 있어 어떤 맥락에서 연합훈련이 이뤄지느냐에 따라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에서 추론할 수 있듯, 이러한 대립구도는 양측이 서로간 협력이나 군비증강을 할수록 불안이 심화된다는 '안보 딜레마'를 낳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또한 군사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범위를 그만큼 좁아지게 만든다는 외교적 차원의 문제도 있다.
그만큼 한반도 비핵 평화체제 구축 또한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여기에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으로 대응한다'는 방안은 일정한 한계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인태전략에 참여하는 길을 택한 윤석열 정부가 다른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이상, 동서해가 신냉전의 '최전방'이 되는 일 또한 피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