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순방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중국 리창 총리와 한중회담을 갖고 "북한 문제가 한중 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악화하면 악화할수록 한미일 공조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며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 달라"고 했다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현지 브리핑에서 밝혔다.
지난 3월 임명된 리 총리는 중국의 2인자이자 시진핑 국가주석의 최측근이다.
이번 회담은 지난해 11월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지 10개월 만의 최고위급 지도자와의 만남이다.
자카르타 컨벤션센터(JCC)의 회담장에 먼저 도착한 윤 대통령은 잠시 뒤 리 총리가 입장하자 영어로 "환영합니다, 총리님"이라고 인사를 건넸고, 리 총리는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답했다. 두 사람은 전날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때 처음 만났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한중 정상회담 이후 앞으로 고위급 만남이 좀더 활발한 교류로 이어지길 바란다"며 시진핑 주석에게 안부를 전했다.
시 주석은 "한국과 중국은 가까운 이웃"이라며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같이 협력하고 잘 지낸다면 소중하고 가치있다"고 했다고 리 총리가 전했다.
미국과의 관계를 먼 친척에 비유하며 우리나라에 화해의 손짓을 한 것이다.
리 총리도 "선린우호(善鄰友好: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며 잘 사귐)의 원칙에 따라 양국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자"면서 "그 가운데 한국과 중국이 공동 이익을 증진하고, 상호 관심사를 배려해 나가면서 서로의 원숙한 신뢰 관계를 좀 더 돈독히 하자"고 제안했다.
윤 대통령은 "의장국으로서 한일중 정상회의가 최대한 이른 시일 내 한국에서 개최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고 리 총리는 "적극 호응하겠다"고 답했다.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2019년 이후 중단된 상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회의 분위기는 따뜻하고 솔직한 분위기였다"며 "리 총리는 시종일관 진지하게 경청했고, 중국에 돌아가면 검토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순방 기간 윤 대통령은 연일 국제무대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를 비판했지만 중국은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온 것이다.
윤 대통령과 리창 총리의 한중회담이 성사된 것은 윤 대통령이 내세운 '보편 가치 연대' 기조와 미국의 봉쇄 전략을 타개하려는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로 더욱 공고해진 한미일 밀착도 중국에 더욱 긴장감을 불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할 말은 한다는 윤 대통령의 전략이 최근 중국의 이해 관계와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권 출범 초기부터 대중 관계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다"며 "'저자세'로 일관했던 지난 정권과는 달리 중국에 할 말을 하고 국제사회에서의 규범에 맞는 역할을 주문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