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의 불똥이 구한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던 '고려인'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까지 튀고 있다.
홍 장군의 소련군 가담 전력이 문제라면 소련 영토에 계속 살아야 했던 자신들의 정체성도 부정당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감돈다.
CBS노컷뉴스는 카자흐스탄 거주 고려인 동포 4세이자 1920년대 연해주 무장독립운동에 참여했던 한창걸 선생의 외손자 박드미트리(54)씨를 화상으로 인터뷰 했다.
다음은 박드미트리씨와의 일문일답.
-카자흐스탄 현지에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홍범도 장군은 어떤 의미인가.
= 민족의 영웅이죠.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끄려면 무기가 필요하지 않았겠습니까. 당시 교민들이 모금을 해서 무기를 사서 몸으로 운송을 했죠.
-항일 무장독립을 했던 독립운동가는 여럿 있었는데.
= 임시정부가 생긴 뒤 청나라나 미국, 러시아에 기대기만 해서는 통일을 얻을 수 없으니 무장투장도 해야 한다는 결정을 했어요. 그리고 나서 맨 먼저 승리를 이뤘던 분이 홍범도 장군입니다. 봉오동 전투였죠. 완벽한 승리를 우리 모두한테 보여줬잖아요. 가능하다. 해도 된다. 이걸로 인해 무장투쟁이 엄청나게 확대되는데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까. 단순히 승리만 했던 건 아니고 우리 한겨레에 희망을 주셨잖아요.
-그랬던 홍범도 장군이 최근 우리 대한민국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어요.
= 홍범도 장군님을 체제, 이념 싸움으로 만드는 건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될까요. 제가 인생의 반을 소련 체제 속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자신을 뒤돌아보면 그때 살았던 나와 지금 사는 나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홍범도 장군님은 불의와 싸웠던 것입니다. 조국과 민족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최근 논란을 어떻게 보셨나요.
=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랑 대화해 보시면 제가 괴물 같이 생겼습니까? 아니잖아요. 그건 그냥 프로파간다. 아까 얘기했듯 이념, 체제, 이런 식으로 싸움을 붙이면서 지금 우리 민족이 그 결과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한반도가 분간 국가가 되고 민족이 완전 갈라져 있고. 그리고 중국 동포나 이쪽 구 소련 동포, 카자흐스탄 동포… 저는 동포라고 불렸던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재미동포, 재일동포만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민족처럼 조선족, 고려인 이런 식으로 불리는 아주 슬픈 상황이잖아요.
-이념으로 동포를 구분하는 게 이번 논란 전에도 한국 사회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고 인식하셨군요.
= 인식보다는 몸으로 느꼈습니다. 제가 맨 처음 서울에 갔던 1993년에 어떻게 느꼈냐면, 고려인이라고 그때는 부르지도 않았어요. 4등급, 5등급, 이런 계급 시야에서 보는… 그런데 이제 시간이 흘러 역사를 바로세우자 해서 우리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아시고, 저희들도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는 거잖아요. 서로를 자랑스럽게 보면서 그런 등급이 없어진 거예요. 최근에. 그런데 지금 이렇게 또 정말 제가 싫어하는 이념, 체제 싸움을 부추겨서… 다섯 분 흉상 중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만 제거한다는 말을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죠. 아직도 우리 민족은 이렇게 어리석고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란이 제기된 뒤 카자흐스탄 거주 다른 고려인 독립운동가 후손들과도 얘기를 나눠보셨나.
= 대부분 (지금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동포도 그렇지만 여기 계시는 카자흐스탄 국민들도 잘 이해를 못 해요. '한국은 왜 저러지 '한국인들은 저 수준 밖에 안 되나' 이런 반응입니다. 제가 좀 더 풀어드리면,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했을 때 파묘할 때부터 비행기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현장에 제가 있었습니다. 그 특별기가 영공을 떠서 3바퀴 돌고 우리 조국 쪽으로 향했잖아요. 비행기가 완전 작은 점으로 보였을 때 제가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리웠던 그렇게 서러웠던 시간은 다 끝났습니다. 장군님, 아름다운 조국의 품에 안겨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딱 돌아섰는데 카자흐스탄 분들이 일렬로 쫙 서 있는 겁니다. 그분들이 비행기에 손을 흔들면서 '잘 가십시오' 세리머니를 했어요. 그런데 비행기 탄 사람들한테 보이지도 않을 때에도 서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아세요? 카자흐스탄 국민들한테도 홍범도 장군님이 민족의 영웅으로 인식이 돼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행기가 아예 가버렸지만 1열 2열로 딱 서서 끝까지 잘 가시라고 마음을 표했던 겁니다. 그러면 지금 이 상황에… 우리가 무슨 면목으로 이 사람들 눈을 마주치겠습니까? 좀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는 '흉상을 철거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위치만 옮길 뿐이다. 뭐가 문제냐'라고 주장하거든요.
= 다섯 분의 흉상은 다 뜻이 있어서 세운 거잖아요.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같이 싸웠고 신흥무관학교도… 뗄레야 뗄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홍범도 장군님 흉상만 다른 데로 옮긴다. 그건 이 다섯 분 중 홍범도 장군만 불량 독립운동가라는 식이잖아요. 그러면 우리 같이 옛 소련 땅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한민족인데도 좀 불량한 사람들로 바로 인식이 되겠죠.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은.
= 독일에 살았던 마르틴 뉘밀러 목사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내게 왔을 때…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